“원자재 값이 천정부지로 인상되는데 대기업은 납품단가를 올려주지 않고 있다. 단가 조정을 요청했지만 이미 납품한 건은 어쩔 수 없고, 신규 오더만 반영해 준다고 한다.”
요즘 중소기업인들에게 많이 듣는 하소연이다. 원자재 가격이 오르면 납품가도 올리면 되지 않느냐고 한다. 하지만 중소 제조업체의 42.1%가 수급 기업이고, 위탁 기업 매출 의존도는 83.3%에 달하는 상황이다. 중소기업이 제값을 달라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지금 중소기업이 처한 어려움은 10년 전 리먼브러더스 사태로 촉발된 금융위기 때와 비슷하다. 중소기업들은 납품단가에 원자재 가격 상승분을 반영하지 못해 수익성이 악화되는 고충을 겪고 있었다. 참다못해 공장을 멈추고, 머리띠를 두르고 거리로 나와 시위를 벌였다. 당시 정부 고위 관계자가 필자를 불러 노조처럼 데모하냐며 질책을 하기에 납품단가연동제 도입을 건의했다.
2011년 당시 거래의 불공정, 시장의 불균형, 제도의 불합리라는 ‘경제3불(不)’은 중소기업을 힘들게 하는 구조적 문제였다. 이후 이를 해결하기 위한 해법은 경제민주화라는 이름으로 법과 제도를 만드는 단초가 됐다. 하지만 변화에 대한 기대감도 잠시, 경제3불은 10년이 지난 지금까지 해결되지 않고 있다. 오히려 코로나19 사태가 가져온 급격한 변화와 함께 신(新)경제3불로 그 양상이 더 복잡해졌다.
우선 원·하청 기업 간 거래구조에서 발생하는 ‘거래의 불공정’이다. 중기중앙회 조사에 따르면 중소 제조업체의 59.7%가 공급원가 상승분을 납품단가에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 납품할수록 손해가 커지고 있는 것이다. 정당한 대가를 받지 못하는 중소기업은 기술개발 여력이 부족하고, 직원의 급여도 인상하기 어렵다. 납품단가 연동제를 시급히 도입해야 하는 이유다.
두 번째는 급격한 디지털 경제로의 전환과 함께 온라인 시장으로 전이된 ‘시장의 불균형’이다. 최근 3년간 국내 온라인 시장 규모는 78조 원에서 161조 원으로 커졌다. 하지만 이를 규율할 법과 제도가 없다. 온라인 입점 중소상공인이 과도한 수수료와 왜곡된 수익배분 구조에 방치돼 있는 동안 거대 플랫폼 사업자의 이익 독점은 심화되고 있다. 불균형을 완화할 수 있는 ‘온라인 플랫폼 공정화법’을 조속히 제정할 필요가 있다.
세 번째는 조달시장에서의 최저가 유도 관행 등 납품할수록 손해를 보는 ‘제도의 불합리’다. 중소기업은 내수 침체가 장기화되면서 145조 원에 달하는 조달시장에 대한 의존도가 커졌다. 하지만 저가계약으로 조달시장 납품 중소기업의 연평균 손해가 9조5000억 원이라는 연구결과가 나오고 있다. 국가계약법상 최저가를 유도하는 조항을 삭제하고 낙찰 하한율을 상향시키는 등 조달시장의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
코로나19가 불러온 대전환의 시대, 중소기업은 혁신과 경쟁력 향상이 절실하다. 한국 경제 재도약을 위한 신(新)경제3불 해소가 필수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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