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이 ‘중앙은행 디지털화폐(CBDC)’에서 앞서 나가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중국의 디지털 위안화가 미국 달러화를 대체하기는 어렵다. 그건 검색 시장에서 구글을 몰아내는 일과 마찬가지다.”
지난해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폴 밀그럼 미국 스탠퍼드대 교수는 27일 열린 ‘2021 동아국제금융포럼’에서 기조강연을 통해 “왜 달러화가 지금과 같은 역할을 하고 있는지 생각해봐야 한다”며 이같이 밝혔다. CBDC는 비트코인 등 가상화폐와 달리 중앙은행이 가치를 보증해 전자적 형태로 발행하는 화폐를 뜻한다.
○ “가상화폐, ‘화폐’는 안 되지만 ‘자산’ 기능 있어”
밀그럼 교수는 중국의 디지털 위안화가 미국 달러화 패권에 도전하기 쉽지 않다고 내다봤다. 그는 “현재 수많은 글로벌 기업들이 환율 변동에 따른 위험을 분산하기 위해 대부분의 수출입 계약을 달러화로 한다. 사람들은 하나의 통화로 물건을 사고팔기를 원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개인정보 수집에 민감하지 않은 중국 정부와 달리 서구에서는 CBDC를 통해 거래 당사자들의 정보를 수집하는 것에 대해 우려가 많다”며 “두 지역 간의 문화적 차이가 뚜렷하기 때문에 중국의 CBDC가 성공할지, 서구의 CBDC가 성공할지는 완전히 다른 문제”라고 덧붙였다.
투자 과열 속에 가격 변동성을 키우고 있는 가상화폐에 대해서는 “이름이 잘못됐다”며 지불 수단인 ‘화폐’로 자리 잡을 가능성은 적다고 내다봤다. 밀그럼 교수는 “가상화폐로 커피 등 물건을 구매할 때마다 분산 원장에 이 거래를 포함시키려면 20달러의 비용이 들어간다”며 “일반적인 거래에선 가상화폐를 사용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하지만 인플레이션 헤지(위험 회피) 수단인 ‘디지털 금’으로서는 투자 매력이 있기 때문에 수요는 계속 이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는 “가상화폐는 금처럼 쉽게 가치를 저장하고 거래할 수 있는 데다 보관비용도 들지 않는다. 통화정책 변동에 따른 위험을 회피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가상화폐에 투자하려고 할 것”이라고 했다. 그는 “투기 수요가 걷히면 가상화폐 가격은 하락할 것”이라면서도 “하지만 공급은 제한돼 있는데 ‘자산’으로서의 수요가 계속 늘면 가치는 유지할 것”이라고 했다.
○ “물 부족도 가격 매겨 해결 가능”
경매이론으로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밀그럼 교수는 물 부족, 탄소 배출 등 환경 문제를 경매를 통해 해결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미국 서부에 물이 부족하다고 하는데 실제로는 물이 필요한 곳에 있지 않아 문제”라며 “경매를 활용해 물에 대해 적절한 가격을 설정하면 더 효율적으로 자원을 배분할 수 있다”고 말했다. 경매를 통해 적정 가격을 찾게 되면 해당 물건을 사거나 투자할 가치가 있는지 파악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그는 “시장이 새로운 영역으로 확장되면서 인류의 이익이 점점 더 커질 수 있다”고 강조했다.
전 세계적으로 ‘뉴 노멀(New Normal·새로운 기준)’로 자리 잡은 ESG(환경, 사회, 지배구조)에 대해서는 “각자 처한 상황에 따라 그 모습이 달라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ESG 경영이 확산되면서 국내외 기업의 ESG 수준을 종합적으로 평가해 등급을 매기고 있는데 나라마다 ESG 관련 목표를 달성하는 방법이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이다. 밀그럼 교수는 “스웨덴 대기업은 가족이 소유하고 있는 경우가 많은데 이때 사회적 목표를 내부적으로 설정할 수도 있다”고 했다. ESG 적용이 지속가능한 성장에 도움은 되겠지만 전반적으로 시장의 역할을 대체할 수는 없다는 점도 덧붙였다.
밀그럼 교수는 미국뿐 아니라 한국에서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이후 확대된 경제적 불평등과 양극화 문제에 더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코로나19가 저숙련, 젊은 노동자들에게 더 큰 영향을 미치며 임금 불평등 등 사회적 양극화가 더욱 커졌다고 우려했다. 그러면서 “정부는 경제적 양극화를 해소하기 위한 정책에 더 많은 관심과 역량을 쏟아부어야 한다”며 “한국도 경제의 지속 가능성을 높이기 위해선 이 부분에 더욱 신경을 써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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