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운, 물류, 유통, 금융 기업들 이스타항공에 입찰 참여할 듯
물밑에선 이스타항공 몸값 높이기
파산이냐 기사회생이냐 기로에 섰던 저비용항공사(LCC) 이스타항공이 드디어 새로운 주인을 찾을 것으로 보입니다. 이스타항공을 인수하겠다는 기업이 나타난 겁니다. 이스타항공은 현재 법정 관리를 받고 있어서, 인수 희망 기업은 법원에 의해 우선매수권자 지위를 받게 됩니다. 스토킹호스 방식이라 불리는데요. 스토킹호스는 사전에 우선매수권자를 정해놓고서, 한 번 더 입찰공고를 낸 뒤에 우선매수권자보다 높은 가격을 제시한 입찰 참여자가 없으면 우선매수권자에게 이스타항공 인수 권한을 주는 겁니다.
예를 들어 우선매수권자(스토킹호스 방식)가 된 A기업이 인수가격으로 1000억 원을 써냈다고 해보겠습니다. 이후 법원은 입찰 공고를 내서 공개 매각을 진행합니다. 다수의 이스타항공 인수 희망자들이 입찰에 참여합니다. 그런데 입찰에 참여한 B라는 기업이 A기업 보다 높은 1200억 원을 제시했습니다. 그러면 통상의 입찰에서는 B기업이 낙찰을 받지요. 하지만 A기업에게 우선매수권을 줬기 때문에, 법원이 A기업에게 한 번 더 묻습니다. “B라는 기업이 1200억을 써냈는데, 1200억 원 이상으로 금액을 맞출 수 있겠느냐”고 말이죠. A기업에게 생각할 시간을 일주일 정도 준다고 합니다. 이어 A기업이 1200억 원을 맞추겠다고 하면 A기업이 인수를 하게 되는 것이고, A기업이 포기를 하면 B기업이 이스타항공을 인수하게 됩니다.
● 이스타항공에 관심 갖는 기업은?
이스타항공 매수우선권을 쥔 A업체가 어떤 곳인지는 베일에 싸여 있습니다. 법원에서도 이스타항공 매각 주관사와 이스타항공 공동관리인 등에게 “우선매수권자가 된 A기업의 이름과 매각가를 절대 공개돼서는 안 된다”라고 못을 박았다고 합니다. 그 이유는 기업 이름과 매각 가격이 공개가 되면 입찰에 참여할 업체들이 A기업에 찾아가 가격 등을 협상할 수 있기 때문이죠.
업계의 관심은 이스타항공을 품에 안을 기업이 과연 누가 될지겠지요. 이스타항공 매각주관사는 이달 말 까지 인수희망자들을 대상으로 인수의향서(LOI)를 접수받습니다. 이후 이스타항공 실사를 거쳐서 6월 14일까지 본입찰에 들어갑니다. 단순히 돈을 많이 써냈다고 인수를 할 수 있는 건 아닙니다. △입찰금액 규모 △자금 투자 방식 및 조달 방법 증명 △인수 후 경영능력 및 근로자 고용 승계 △매각절차진행의 용이성 등 총 6가지 항목을 평가합니다. 이르면 6월 안에 인수자가 결정될 것으로 보입니다.
그렇다면 스토킹호스 방식으로 우선매수권 지위를 획득한 A기업 말고 또 누가 이스타항공에 관심을 가질까요? IB업계에 따르면 현재 이스타항공에 참여를 희망하는 곳은 10여 곳이 넘는 걸로 알려집니다. 해운 및 물류 회사를 계열사로 두고 있는 H와 S사, 금융업을 하고 있는 O사, 종합물류업체 K사 등이 거론되고 있습니다. 이밖에도 식료 및 골프 사업 등을 하고 있는 기업과 사모펀드 등이 이스타항공 인수를 위한 티저(일종의 인수제안서) 등을 받아갔다는 말도 들립니다.
● 이스타항공 몸값을 높여라!
입찰만 기다리면 되는 상황이지만 ‘이스타항공의 몸값 높이기 작전’도 벌어지고 있습니다. 잠재적 인수 후보자들에게 이스타항공의 잠재력을 설명하고, 최대한 많은 기업이 많은 금액으로 입찰에 참여하게 하는 거죠. 입찰을 흥행하게 해서 이스타항공의 최종 인수가격을 높이려는 겁니다.
이스타항공의 공동관리인인 정재섭 관리인은 24일 “매각우선권자가 결정되고 이스타항공 인수에 관심을 보이는 기업 4곳 정도를 만났다. 인수 흥행을 통해서 매각가를 올리기 위함”이라며 “매각 가격이 높아야 이스타항공에 대한 채권자들이 최대한 많은 채무를 변제 받을 수 있게 된다”고 말했습니다.
이게 어떤 의미일까요? 이스타항공 매각대금은 크게 3곳에 쓰이게 됩니다. 첫째는 공익 채권입니다. 체불임금 및 퇴직금 등인데요. 이 공익 채권을 갚는데 가장 먼저 쓰입니다. 두 번째는 회생담보권입니다. 공익채권 다음으로 갚아야 하는 돈인데, 회사가 건물이나 부동산 등을 담보로 빌린 돈을 말합니다. 그런데 이스타항공은 사옥이나 땅이 없어서 담보로 빌린 회생담보권이 없습니다. 세 번째는 회생채권입니다. 항공기 리스료와 공항사용료, 항공 유류비, 카드회사들이 받아야 하는 채무 등입니다. 인수 대금 중 공익채권과 회생담보권 등에 쓰인 뒤 남은 돈은 이 회생채권을 갚는데 쓰입니다. 정 관리인이 매각가격을 높이려고 하는 배경에는 채권자들의 채무를 최대한 많이 갚아주려는 의도도 깔려 있습니다. 그는 “받아야 하는 돈을 다 못받게 되는 상황에서 채권자들을 설득하는 것이 쉽진 않겠지만, 이스타항공 관리인으로서 채권자들로부터 변제와 관련한 동의를 100% 받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입찰에 참여하려는 기업들에게 가장 큰 걱정거리는 신종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입니다. 언제 끝날지 모르는 코로나 국면이 투자를 주저하게 하는 큰 걸림돌입니다. 이에 대해 정재섭 관리인은 “잠재적 인수 후보자에게 이스타항공의 잠재성에 대해서 많이 설명을 하고 있다”며 “화주 및 물류 네트워크 확보를 도울 테니, 인수를 한 뒤 항공기 2~3대를 더 들여와서 항공 물류사업을 하면 코로나 상황을 버티는데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조언도 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항공사를 운영하고 싶지만 코로나19로 인한 불확실성 때문에 주저하는 기업들에게 코로나19를 조금이나마 버틸 수 있는 아이디어를 제공해주고 있는 겁니다.
● 노하우, 인재 갖춘 매력적인 매물
이스타항공의 잠재성은 많습니다. 선제적인 구조조정과 법정관리에 따른 채무 변제 가능성이 우선 장점입니다. 지난해 9월 보유 항공기 16대 중 10대를 반납했고 직원 600여 명을 정리해고 했습니다. 근로자들에게는 가슴 아픈 일이었지만, 역설적으로 뼈를 깎는 구조조정이 이스타항공 인수 희망자들에게는 장점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습니다. 이스타항공은 완전 자본잠식 상태, 담보 부족 등을 이유로 기간산업안정기금 지원 요건에 해당하지 않아 정부 및 금융권에서 자금 지원을 받지 못했습니다. 인수비용 외에 추가로 갚아야하는 자금이 크지 않다는 의미입니다. 또한 10년 가까이 항공업계에서 활약한 기업입니다. 알짜 노선 및 운수권, 슬롯(공항에서 뜨고 내릴 수 있는 권리)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승무원과 정비사 등 숙련된 인력도 갖추고 있습니다. 창업주였던 이상직 의원에 대한 수사가 이뤄지고 있지만, 법원에 의해 투명하게 매각이 진행되고 있어 잡음이 날 가능성이 많이 줄었다는 점도 고무적입니다.
물론, 이스타항공의 악화된 경영 상태를 다시금 회복 시키기 위해서는 많은 노력이 필요할 겁니다. 운항을 시작하더라도 당분간은 재무 상태가 급격하게 좋아지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매각이 순조롭게 진행되는 상황에서 어떤 기업이 이스타항공을 차지할 지는 6월 14일 이후에 윤곽이 드러날 겁니다. 지금 이스타항공 직원들은 인수 이후 다시 비행을 하기 위한 운항증명(AOC) 준비 작업에 한창입니다. AOC는 항공사가 인력과 시설, 장비, 운항 능력 등 안전운항체계를 갖췄는지 점검하는 과정입니다. 지난해 3월부터 운항을 전면 중단했기에 AOC 자격을 다시 받아야만 재운항을 할 수 있습니다. 이스타항공은 최근 AOC 발급을 위한 태스크포스(TF)를 구성했습니다. 하루 빨리 이스타항공 비행기가 하늘로 다시 떠오를 수 있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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