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당이 전국민과 선별 재난지원금을 동시 지급하기 위한 2차 추가경정예산(추경) 편성 움직임을 보이면서 올초 ‘직을 걸고’ 이 같은 방침에 반대를 관철해낸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또다시 정치권 기류를 뒤집을 수 있을지 주목된다.
4일 정부와 여당에 따르면 국가 재정을 관리하는 중앙정부 부처인 기재부는 현재 선별 지원에 무게를 두고 5차 재난지원금을 포함한 추경을 검토하고 있다.
홍 부총리는 이날 연구기관장·투자은행 전문가 간담회에서 “정부는 올해 2차 추경 편성을 검토할 것”이라며 “이번 추경 검토는 코로나19 위기에 따른 취약·피해계층 지원대책 등이 중심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취약·피해계층이 검토의 중심축임을 못박으면서 여당의 전국민 지원 논의에 선을 그은 발언으로 해석된다.
기재부는 작년 코로나19 확산 이후 정치권에서 ‘전국민 지원’ 움직임이 있을 때마다 반대를 지속해 왔다. 이들이 선별 지원을 고수하는 데에는 지난 2018년 말부터 재정 당국을 이끌어 온 ‘역대 최장수 경제 사령관’ 홍 부총리의 의중이 강하게 반영됐다.
홍 부총리의 전국민 지원금 반대 역사는 작년 3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국내 코로나 확산이 본격화하면서 정치권을 중심으로 ‘보편소득’ 지급 주장이 고개를 들었다. 피해 계층을 가려내 지원하는 방식은 시간이 들어 재난 시기에 적절치 않으므로 국민 대다수에게 지원금을 주자는 취지였다.
그러자 홍 부총리는 같은 해 3월20일 외신 기자단 간담회에서 “(재난지원금을) 모든 국민에게 주는 것은 선뜻 동의하기 어렵다”라고 말했다. 나라 살림을 살피는 경제부총리의 전국민 지원금 첫 반대였다.
결국 정부는 재난지원금을 소득하위 70% 가구에 한정해 지급하는 방안을 그로부터 한 달 뒤인 4월16일 발표했다. 물론 지급 기준에 관한 대대적 반발과 여당 측 압박에 백기를 들고 1주 만에 전국민 지급으로 선회하긴 했다.
이후 홍 부총리는 1차 재난지원금 소비가 한창이던 6월에 ‘전국민 빵값’ 비유를 들기도 했다.
당시 한 포럼 강연에 초대받은 홍 부총리는 “기본소득을 도입하면 전국민에게 30만원씩만 나눠줘도 200조원이 필요하다”라며 “여러분 정말 그럴 의사가 있으신가. 200조원을 나눠줘서 우리 아이들이 부담하도록 하는 것이 맞나”라고 호소했다.
이어 “그 돈(기존 복지)을 다 없애고 전국민 빵값으로 일정 금액을 주는 게 맞을지 모르겠다”라면서 “저는 동의하기 어렵다”고 거듭 반대 의사를 내비쳤다.
작년 여름에도 전국민 재난지원금 지급에 관한 논의가 있었다. 이때는 여권의 두 대선주자인 이낙연 전 민주당 대표와 이재명 경기도지사 간 ‘선별 대 보편’ 논쟁이 국민적 관심을 살 때였다.
이때도 홍 부총리는 국회 예결위에 출석해 “2차 재난지원금은 1차 재난지원금(전국민)과 같은 형태로 이뤄지기 어렵다”는 생각을 드러냈다. 향후 재난지원은 전액 국채에 의해 의존할 수밖에 없기에 반드시 맞춤형 선별로 가야 한다는 의지 표명이었다.
3차 유행이 있었던 지난 연말에는 여당이 이낙연 전 대표를 중심으로 선별 지원에 힘을 실으면서 입을 아꼈다. 이에 이재명 도지사를 비롯한 보편 지급론자로부터 ‘나라 곳간만 지키려 하고 국민은 어찌됐든 상관않는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반면 홍 부총리는 올초 민주당이 4차 재난지원금으로 전국민·선별 병행 방침을 밝히자 반발하면서 전국민 지급 자체를 무산시켰다. 맡은 바 소임을 충실히 수행하는 성격으로 ‘예스맨’ 별명을 지닌 홍 부총리로서는 이례적인 경우였다.
홍 부총리는 지난 2월 이낙연 당 대표의 연설 직후 자신의 페이스북에 “추가 재난지원금 지원이 불가피하다 하더라도 전국민 보편지원과 선별지원을 한꺼번에 모두 하겠다는 것은 정부로서는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밝혔다.
이어 “저부터 늘 가슴에 지지지지(知止止止)의 심정을 담고 하루하루 걸어갈 것”이라며 “우리 직원들의 사투 의지를 믿고 응원한다”고 썼다.
지지지지는 ‘그침을 알아 그칠 곳에서 그친다’는 뜻으로, 전국민·선별 병행 추진과 관련해 자신의 거취까지 고민한다는 의미로 해석됐다. 즉, 직책을 걸고 전국민 지급을 최대한 막아내겠다는 것이다.
이미 작년 11월 대주주 양도세 논란에 따라 한 차례 사표를 던진 홍 부총리에게 직을 건다는 것은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다. 그 결과로 홍 부총리는 4차 재난지원금의 선별 지원을 관철해냈다는 평가를 받는다.
문제는 코로나 백신 접종이 시작돼 경기 반등에 주력해야 하는 지금이다.
홍 부총리가 전국민 지급을 막아선 올초 여당은 “대신 코로나 확산이 진정될 경우 하반기 전국민 지원도 검토할 수 있다”는 일종의 사전동의를 구한 바 있다. 지금 여당은 그때의 약속을 지키겠다며 2차 추경을 들고 일어선 셈이다.
그러나 홍 부총리는 이번에도 선별 지원을 소신으로 내세우며 정치권과 대치할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지난 번처럼 직을 걸고 사투 의지를 벼릴 것으로 보인다.
여당이 전국민 지원을 지속 추진하는 가운데 “2차 추경은 취약계층 지원이 중심이다”라고 못박은 이날 발언이 이런 관측을 뒷받침한다.
같은 날 여당은 오히려 전국민 지원 동력을 한껏 높인 모습이다. 송영길 당 대표는 오전 최고위에서 “전국민 재난지원금 지급, 실질적 손실보상제 마련 등 시급한 추진 과제가 많다”고 말했다. 강병원 최고위원은 “올 추석엔 (국민들이) 양손에 선물 가득 들고 고향에 갈 수 있게 하자”고 북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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