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시장 안정을 꾀한다며 공공주도의 공급대책을 밀어붙이고, 각종 정책을 쏟아내던 정부와 여당이 ‘사면초가(四面楚歌)’에 빠졌다.
정부가 4일 정부과천청사 유휴용지를 활용한 주택공급 계획을 주민반발에 막혀 취소하면서, 그동안 제기돼온 공급대책 차질 우려가 현실화되고 있다. ‘4·7 보궐선거’ 참패 이후 대선을 염두에 두고 규제 일변도의 부동산 정책수정에 나섰지만, 일부 여당 의원과 시민단체 등의 반발에 부딪혀 두 달 넘게 제자리걸음만 하고 있다.
이런 와중에 집값과 전세금은 고공행진을 거듭하면서, 내 집 마련 실수요자와 세입자들의 생활고를 더욱 가중시키고 있다.
전문가들은 “정부 입장에서 최근의 상황은 ‘백약이 무효’인 것처럼 여겨질 텐데, 이는 정부가 일방통행으로 정책을 추진하면서 예견됐던 일”이라며 “더 늦기 전에 민간과 협력하며 시장을 정상화시킬 수 있는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 현실화되고 있는 공급 차질 우려
과천청사 유효용지 활용 방안 철회는 정부가 일방적으로 주택공급을 추진하면서 ‘예고된 사고’였다는 게 일반적인 평가다. 지역주민의 의견과 수요 등을 고려해 지방자치단체가 세워둔 계획 등은 무시한 채 정부가 필요한 공급량을 정하고, 이를 지역별로 무리하게 할당하다가 발생했다는 것이다.
문제는 이런 사고가 이번만으로 끝나지 않을 가능성이 대단히 높다는 점이다. 서울 노원구 태릉 골프장과 서초구 서울지방조달청·국립외교원, 용산구 정비창, 마포구 서부면허시험장 및 상암디지털미디어시티(DMC), 강남구 서울의료원 터 등이 특히 우려스러운 지역들이다. 과천 이상으로 지역 주민들의 반발이 거센 곳들로 알려져 있다.
정부가 올해 발표한 ‘2·4 대책’에 따라 추진되는 공공주도의 도심 고밀개발 사업 등도 우려스럽기는 마찬가지다. 정부는 이를 통해 30만6000채를 공급한다는 계획을 세우고, 지자체 등을 독려해 후보지를 찾고 있다.
하지만 주민동의가 이뤄지지 않는다면 사업자체가 이뤄지기 어려운 구조다. 여기에 ‘4·7보궐선거’에 승리한 뒤 취임한 오세훈 서울시장이 민간 주도의 재개발·재건축 활성화를 강력히 추진하는 점도 국토부 입장에서는 큰 악재다.
● 제자리걸음에 머문 정책 손질
더불어민주당은 ‘4·7 보궐선거’ 패배 이유의 주요 요인 가운데 하나로 부동산 정책 실패를 꼽은 뒤 정책 보완을 선언했다. 하지만 2개월이 지난 7일 현재 다음달부터 시행에 들어가는 주택담보대출비율(LTV) 일부 완화와 재산세 경감세율 적용대상 확대(공시가격 6억 원→9억 원) 이외에는 뚜렷한 성과가 없다. 그나마 재산세 대상 확대는 이달 중 지방세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해야만 한다.
여당은 송영길 당 대표를 중심으로 종합부동산세 대상을 축소하고, 양도소득세 중과 기준도 완화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하지만 일부 여당 의원들과 시민단체들이 “세금 완화를 하면 기존 정책 기조에 혼선이 있을 수 있고, 당의 가치도 흔들린다”며 강력 반발하고 있어, 진전을 보지 못하고 있다.
다주택자가 대부분인 민간 임대사업자를 압박하는 카드로 사용하려던 ‘임대사업자 등록제 폐지’도 출범 직후 민간사업자 등록을 부추겼던 현 정부의 정책 신뢰도만 떨어뜨리고, 부동산시장 안정에 기여하는 바가 낮다는 반대에 직면하자 여당은 한발 물러선 상태다.
여당의 이런 행보가 지속되자 정부는 시장의 불확실성이 커질 것을 우려하고 있다.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3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23차 부동산시장 점검 관계장관회의’에서 “부동산정책 보완책과 관련해 가능한 한 신속히 후속 조치를 실행하고 추가 협의가 필요한 사안도 최대한 조기 결론 내 시장 불확실성을 걷어낼 것”이라고 말했을 정도다.
● 고공 행진하는 집값 전세금
이처럼 정부와 여당의 헛발질이 이어지면서 시장 불안을 부추기자 집값과 전세금은 고공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특히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수도권 아파트 가격을 올해 들어 5월까지 매월 1% 넘게 오르는 급등세를 보이고 있다. 부동산원이 2003년 관련 통계를 집계한 이래 수도권 아파트 가격이 5개월 연속 1% 넘게 오른 건 18년 만에 처음이다. 또 1월부터 5월까지 누적 상승률(6.95%)도 역대 가장 높은 수준이다.
전세금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특히 상승세가 100주 이상 이어지고 있는 서울은 올해 4월 이후 잠시 주춤했다가 최근 3주간 상승폭을 다시 키우며 시장 불안감을 키우고 있다.
이미 전세금은 현 정부 출범 이후 크게 오른 상태다. KB주택가격동향에 따르면 서울아파트 평균 전세금은 2017년 5월 4억2619만 원에서 지난달 6억1451만 원으로 1억8832만 원(44.2%)이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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