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산업의 메카인 거제도의 지도가 바뀌는 대역사(役事)가 벌어졌다. 한 청년 사업가가 10년 동안 피땀으로 일궈낸 해양복합도시가 2023년 선보인다.
무대는 10여 년 전 거제도와 부산을 잇는 거제대교가 개통되면서 용도가 불투명해진 거제도의 주요 항구인 고현항. 1952년부터 부산과 거제를 연결하는 관문으로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하루 24회나 여객선이 오가던 곳이었다. 지금 고현항은 20여만 평의 바다가 매립돼 땅으로 바뀌었다. 그 위에선 아파트와 리조트, 유통센터, 3개의 아름다운 공원 등의 건설이 한창이다. 매립 면적만 축구장 90개에 달한다.
거제 고현항만 재개발 사업을 주도한 사람은 빅아일랜드 대표를 맡고 있는 박병준 사장(49). 1980년대 도시처럼 우중충한 거제를 바르셀로나 요코하마 시드니 같은 해양도시로 거듭나게 해보겠다고 거제에 둥지를 튼 지 어느덧 10년이 흘렀다. 3단계 공사 중 2단계는 준공됐고, 막바지 크루즈 선착장 등 여객터미널을 만드는 항만 주변 공사를 눈앞에 두고 있다.
박 사장은 7일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거제도를 세계 어디에 내놔도 손색없는 도시로 탈바꿈시키고 싶었다”면서 삼성중공업이 3년간의 고민 끝에 사업성이 없다며 2010년 사업을 포기한 항만 개발 사업에 뛰어든 이유를 밝혔다.
미국 일리노이공대를 졸업한 박 사장은 “조선 산업에서 중요한 것은 외국사인 발주회사의 감독관”이라면서 “가족까지 포함하면 1만 명가량 거제에 정주하고 있는데, 이들이 일하면서 편하게 쉴 수 있는 아름다운 공간을 창조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바다 위 멋진 해양도시를 만들겠다는 야무진 포부였지만 금융기관은 담보를 요구했다. 미래 신도시를 어떻게 할지 숱한 그림과 계획을 고친 끝에 대림산업과 롯데그룹으로부터 토지 완공 후 매각계약서와 쇼핑몰 부지계약서를 체결할 수 있었다.
주변에선 ‘맨땅에 헤딩’ 하는 무모한 일이라며 고개를 저었지만 박 사장은 2008년부터 2년 반 동안 울산 온산국가산업단지에 23만 평의 바다를 매립해 공장부지를 조성한 사업을 벌인 노하우를 갖고 있던 터. 은행들은 이런 사업 경험과 계약서 2장을 담보로 프로젝트파이낸싱(PF)으로 돈을 빌려줬다.
“2015년 9월 공사에 착공하기까지 5년 동안 인허가 도장을 받는 데 세월을 보냈습니다. 나중에 세어보니 800개 정도 받았더군요. 주무 부처인 해양수산부는 물론이고 거제 관할도청인 경남도, 국토교통부, 환경부, 기획재정부까지 인허가권을 쥐고 있는 부처들은 모두 우리 사업을 모니터링하게 됐습니다.”
가까스로 첫 삽을 뜰 무렵 이번엔 조선업이 서서히 무너지기 시작했다. 근로자들이 떠나면서 거제 경제는 쑥대밭이 됐고, 금융회사는 한순간에 얼음장같이 차가운 얼굴로 변했다.
“공사를 1단계, 2단계, 3단계로 진행하기로 방향을 수정했습니다. 1단계 부지를 완공해 대림과 롯데에 매각한 대금으로 PF 대출 1850억 원을 상환했죠. 2016년 9월 2단계 공사에 착공할 때는 조선 업황이 최악으로 치닫던 때였죠.”
밤새워 조선업의 밝은 미래를 연구한 끝에 공사가 진행되는 2∼3년 동안 금융회사를 설득해 2단계 공사에서 PF 대출을 2000억 원, 3단계 공사에선 1800억 원의 대출을 받아낼 수 있었다.
이번엔 시민단체에서 ‘어깃장’을 놓기 시작했다. 박 사장은 12개 거제지역 시민단체가 주관하는 토론회에 참석해 고함 소리가 뒤섞인 가운데서도 제대로 된 명품 도시를 만들겠다는 마스터플랜을 제시하며 설득을 거듭했다. 총 7500억 원의 사업비가 투입된 이번 사업으로 거제에는 3만 개의 고용이 창출되고, 토목공사까지 3조5000억 원 규모의 투자가 이뤄진다. 거제시가 거둬들이는 세수(稅收)만 5000억 원으로 추정된다. 10년 전 한 청년 사업가의 불타는 기업가 정신이 일궈낸 눈부신 성과다.
“정도(正道)로 비즈니스를 하는 원칙을 저버리지 않았기에 숱한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었습니다. 3면이 바다인 한반도 곳곳을 여행하다가 바다만 보면 어떤 도시가 좋을까 늘 고민하게 됩니다.” 외국의 멋진 해양도시를 보면 꿈에 부푼다는 박 사장은 이번에는 동해안에 멋진 해양도시 건설을 꿈꾸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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