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바일뱅킹 같은 고객서비스는 디지털 전환이 눈에 띄게 이뤄지고 있습니다. 생존과 직결된 문제니까요. 하지만 디지털 역량의 기반이 되는 내부 조직이나 업무 환경은 여전히 20년 전 구시대에 머물러 있습니다.”
네이버, KT, 삼성SDS 등 국내 굴지의 기술 기업에서 최근 은행으로 자리를 옮긴 ‘디지털 전문가’ 3명이 9일 서울 종로구 동아미디어센터에 모였다. 박기은 KB국민은행 테크기술본부 전무(51), 김혜주 신한은행 마이데이터유닛 상무(51), 이상래 NH농협은행 디지털금융부문 부행장(56)이다. 세 사람은 금융권이 디지털 중심으로 재편하고 빅테크(대형 기술기업), 핀테크(금융 기술기업)들과 성공적으로 협쟁(Co-opetition·협력과 경쟁)하려면 “새로운 충격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 고객 접점만 ‘디지털’, 내부는 ‘구시대’
네이버클라우드 최고기술책임자(CTO)였던 박기은 전무는 올 4월, 삼성전자와 KT를 거친 김혜주 상무는 지난해 12월, 삼성SDS 출신인 이상래 부행장은 지난해 7월부터 각 은행에서 디지털 전환을 이끌고 있다.
세 사람은 은행 조직의 관성과 부족한 인력을 디지털 전환의 걸림돌로 꼽았다. 은행권은 순혈주의와 보수적 색채가 강해 새로운 흐름을 받아들이고 발 빠르게 변화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김=고객과 맞닿은 뱅킹 서비스는 빠른 속도의 디지털 전환을 이루고 있다. 하지만 은행 내부 전산망과 시스템의 효율성은 매우 떨어진다.
▽박=은행 시스템이 총체적으로 바뀌지 못하다 보니 개발 환경도 자연스럽게 악화됐다. 얼마 전 금융권 전반에서 쓰고 있는 표준 인터페이스(API)를 받아봤는데 최신 수준에 비해 한참 뒤떨어진 상태였다.
▽이=빅테크와 같은 플랫폼을 구축하는 게 화두지만 아직도 ‘온라인 판매 채널의 추가’ 정도로 생각하는 직원이 많다.
▽김=변화는 무언가 불편하다고 느낄 때 일어나는데 은행엔 외부를 경험한 사람이 거의 없기 때문에 내부 시스템이 낙후됐어도 그걸 불편하다고 인식하지 못하는 것이다.
▽박=은행이 다른 은행 외에는 비교 대상이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 빅테크가 등장하면서 상황은 완전히 달라졌다.
○ 고객 머무는 ‘생활금융 플랫폼’ 돼야
세 사람은 “나와 같은 경계인이 더 많아져야 디지털 혁신도 빨라질 수 있다”고 입을 모았다.
▽김=신한은행에 올 때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이 “경계인으로 살아 달라”는 것이었다. 나처럼 ‘싸가지 없는’ 역할을 맡아가며 새로운 충격과 자극을 줄 사람이 더 필요하다.
▽이=농협은행이 내게 요구한 것도 “우리랑 다른 생각을 하라”는 주문이었다. 신중하게 생각하는 사람은 이미 은행에 충분하니 새롭게 생각하는 사람이 늘어야 한다.
▽박=디지털 인재 중에서도 실제 서비스나 시스템을 개발하는 개발자가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대부분 외주를 줘 개발해 오던 환경을 바꾸려면 해당 인력부터 보강해야 한다.
이들은 은행권이 집중해야 할 디지털 사업으로 플랫폼을 꼽았다. 각 은행의 핵심 가치를 내세우면서도 많은 사람을 붙잡아 둘 수 있는 ‘생활금융 플랫폼’으로 도약해야 한다는 것이다.
▽박=금융은 디지털을 만나며 생활이 됐다. 특히 MZ세대는 금융 거래를 목적으로 은행을 찾는 게 아니라 자기가 생활하는 플랫폼 속에 금융이 있길 바란다.
▽이=플랫폼을 만들 기술도 중요하지만 ‘우리 은행이 가진 것’은 무엇일까 항상 고민해야 한다. 예를 들어 농협은행은 농협이 가진 전국 거점과 유통, 물류 분야의 시너지를 통해 ‘생활금융 플랫폼’으로 도약해야 한다.
▽김=미래엔 ‘금융회사’라는 실체는 사라지고 ‘금융’이라는 서비스만 남을 거다. 은행이 서비스 제공자가 될지, 그 서비스를 담아내는 플랫폼 사업자가 될지 기로에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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