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배회사와 택배노조를 위한 타협점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6월 1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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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이슈 & 뷰]

택배 노동자 과로사 방지를 위한 사회적 합의가 결렬됨에 따라 택배노조가 무기한 총파업을 선언하고 배송업무를 중단했다. 택배 노동자들은 과로사 방지라는 지극히 당연한 기치를 내걸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들의 파업을 보는 시선은 크게 엇갈린다. 택배업계가 끊임없는 갈등에 시달리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택배 산업은 전국적인 배송망을 전제로 한다. 막대한 초기 투자비용을 최소화하기 위해 택배회사들은 트럭을 가진 화물 운송업자들에게 운송 건당 얼마씩 지급하는 도급계약 형태로 배송망을 구축했다. 특히 타 택배회사의 물량을 취급하지 않는 대신 특정 지역으로 가는 물량에 대한 독점권을 보장해주는 방식의 상호 배타적 계약을 적극 활용했다.

이 같은 상호 배타적 도급계약이 초래한 문제점 중 하나가 택배기사들 간의 불평등이다. 대형 택배회사에서 대규모 고층아파트 단지로 가는 물량을 독점하는 기사들에게는 상대적으로 쉽게 고소득을 보장하는 반면 소형 택배회사와 계약하고 저층 다가구 주택들로 가득 찬 좁은 주택가를 담당하는 기사들에게는 충분한 보상은커녕 지속 불가능한 노동만 강요한다.

배송 시스템의 경직성도 문제다. 예를 들어 하루 최대 배달 가능 물량이 250상자인 택배기사에게 300상자가 한꺼번에 들어왔다고 하자. 택배기사 입장에서는 추가 소득을 위해 과로를 해서라도 당일에 250상자를 소화하고 50상자는 다음 날로 넘겨 본인이 직접 배달하고자 할 것이다. 만약 다음 날도 초과 물량이 들어온다면 과로와 배송 지연 물량이 함께 누적된다. 결국 배타적 도급계약이 야기하는 경직성은 기사들의 근로조건을 악화시킬 뿐이다.

택배 산업의 발전적 롤모델로서 쿠팡의 직접 고용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쿠팡에 직접 고용된 배송전담 직원들은 정해진 근로시간 동안 회사의 직무명령에 따라 배송에 나선다. 해당 배송지역의 난이도에 따라 유연하게 가구 수를 배정하기 때문에 특정 직원에게 업무 강도가 집중되지 않는다.

직접 고용은 근로조건에 대한 책임도 수반한다. 쿠팡은 4월부터 배송직원을 대상으로 하는 건강관리 프로그램 ‘쿠팡케어’를 실시하고 있다. 혈압 혈당 고지혈 등 주요 건강 지표에서 위험 신호가 보이는 배송직원들을 대상으로 한 달간 유급으로 업무에서 완전히 손을 떼고 건강관리에만 집중하도록 한다. 이는 주 5일 52시간 근무 준수와 연차휴가 15일 이상 보장과 함께 쿠팡이 직접 고용한 배송직원들의 복지 중 하나다.

사실 막대한 자금력이 뒷받침된 쿠팡 모델을 당장 택배업계에 적용하는 것은 쉽지 않다. 실제 쿠팡은 약 5만4000명을 직접 고용한 국내에서 세 번째로 큰 고용주다. 직접 고용 중인 배송직원 수만 약 1만5000명에 달한다. 또 일부 고소득 택배기사들의 경우 연봉 4000만∼5000만 원 수준의 직원으로 전환된다는 것에 반발할 수도 있다. 이는 정부가 정치력, 중재력을 발휘해야 하는 부분이다. 특히 택배회사들에게는 한층 업그레이드된 배송망을 갖출 수 있다는 점을, 택배노조에는 한층 강화된 노동자 보호 프로그램을 유도하겠다는 점을 어필하고 양자 간 타협점을 찾아야 한다.

심승규 일본 아오야마가쿠인대 국제정치경제학부 교수


#택배 노동자#택배 산업#직접 고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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