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녀 도움받아 쇼핑앱 깐 5060, 눈뜨자마자 하는 일은…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6월 22일 03시 00분


[코로나發 소비혁명, 뉴커머스가 온다]〈1〉온라인쇼핑 주도하는 베이비부머 쇼퍼

김은희 씨(63)가 스마트폰으로 쇼핑 애플리케이션을 보고 있다. 코로나19 이후 김 씨 같은 5060 ‘부머쇼퍼’가 온라인시장을 주도하고 있다. 이들의 소비파워를 업고 기존의 이커머스가 기술과 물류 혁신을 특징으로 하는 ‘뉴커머스’로 진화하고 있다. 김재명 기자 base@donga.com
김은희 씨(63)가 스마트폰으로 쇼핑 애플리케이션을 보고 있다. 코로나19 이후 김 씨 같은 5060 ‘부머쇼퍼’가 온라인시장을 주도하고 있다. 이들의 소비파워를 업고 기존의 이커머스가 기술과 물류 혁신을 특징으로 하는 ‘뉴커머스’로 진화하고 있다. 김재명 기자 base@donga.com
《최명자 씨(60·경기 구리시)는 최근 부동산중개업소를 개업한 남편 사무실에 필요한 A4용지, 쓰레기통, 종이컵 등을 모두 쿠팡으로 주문했다. 그가 온라인 쇼핑에 처음 입문한 건 지난해 4월. 코로나19의 전염력이 세다는 우려가 커지던 무렵 최 씨의 아들이 앱을 깔고 간편결제를 등록해줬다. 최 씨는 “무거운 물건 팔 빠지게 들고 다니던 게 옛날 일이 됐다”고 말했다. 코로나19로 베이비부머 세대를 가로막던 ‘온라인 허들’이 무너졌다. 다른 세대보다 자금 여유가 많은 편인 부머쇼퍼의 이동으로 대형마트, 백화점 등 오프라인 매장의 위기가 빠르게 진행된 반면 온라인 신선식품과 패션 분야의 매출이 급증하는 등 소비의 지형도가 바뀌고 있다.》




경기 성남시 분당구에 사는 주부 김미숙 씨(55)는 아침마다 현관 앞 새벽배송 물품을 집 안에 들이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1, 2년 전만 해도 백화점이나 마트에서 반찬거리를 샀지만 요즘은 매일 밤 모바일로 장을 본다. 김 씨는 “고향인 남해에 내려가 살고 싶다가도 ‘새벽배송이 안 되면 어쩌나’ 하는 생각이 들어 귀향이 꺼려질 정도”라고 말했다.

50, 60대 베이비붐 세대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이후 덩치가 커진 온라인 시장의 핵심 소비층으로 떠올랐다. 이들의 소비파워가 커지면서 이커머스가 기술과 물류 혁신, 온라인과 오프라인 간 융합을 특징으로 하는 ‘뉴커머스(New commerce)’로 진화하고 있다.

이는 동아일보 특별취재팀이 KT, 바이브컴퍼니, SSG닷컴, 신한카드와 공동으로 코로나19 전후 시기인 2018년부터 2020년까지의 빅데이터를 분석한 결과다. 이에 따르면 코로나19 이후 온라인 시장을 주도한 연령층은 20, 30대 MZ세대(밀레니얼+Z세대)가 아니라 베이비붐 세대 소비자, 즉 ‘부머쇼퍼’들이었다. 이들 부머쇼퍼가 지난해 온라인에서 결제한 금액은 전년보다 29.6% 늘었다. 같은 기간 MZ세대의 온라인 지출 증가율(15.4%)의 2배에 이르는 규모다. 지난해 쿠팡과 G마켓 앱 접속자 가운데 50대 이상 비중은 2019년보다 각각 43%, 36% 늘었다. 이런 증가율은 전체 연령대 가운데 가장 높은 것이다.

부머쇼퍼의 등장은 한국의 높은 인터넷, 모바일 보급률에다 젊은 세대가 고령 세대에게 디지털 기술을 기꺼이 가르쳐주는 사회 분위기가 더해졌기 때문이라고 전문가들은 분석했다. 서용구 숙명여대 경영학부 교수는 “한국은 주거 밀집도가 높고 가족 간 유대가 강해 코로나가 극심하던 시기 가족 내에서 디지털 소비 관련 ‘리버스 멘토링’이 활발히 이뤄졌다”고 진단했다.

이들 부머쇼퍼의 영향으로 한국은 전체 소비자 중 온라인 시장을 한 번 이상 이용해 본 사람의 비율(온라인 침투율)이 2019년 29%에서 지난해 36%로 급증했다. 이강욱 보스턴컨설팅그룹 소비재유통부문 파트너는 “한국에서 전자상거래가 시작된 1990년대 후반 이후 20년 동안 일어난 변화가 지난해 부머쇼퍼의 유입으로 1년 만에 나타난 셈”이라고 말했다.

자녀들 도움받아 ‘쇼핑 앱’ 깐 5060, 온라인시장 ‘큰손’ 됐다



○ 자녀 도움 받아 ‘뉴커머스’ 진입
인천에서 소규모 부품 공장을 운영 중인 박병철 씨(53)는 2019년까지만 해도 작업에 필요한 장갑과 매트, 세정제 등을 대량 구매할 때 교외 전문점에 갔다. 하지만 지난해부터는 온라인으로 구매한다. 박 씨는 “구매 과정이 간단한 데다 배송도 하루 만에 돼 굉장히 편리하다”고 말했다.

박 씨와 같은 베이비붐 세대의 온라인 시장 진입은 신용카드 데이터, KT 빅데이터, SSG닷컴 매출 자료에서도 확인된다. KT 빅데이터에 따르면 코로나19 이전 쿠팡과 G마켓에 접속하는 소비자의 비중은 MZ 세대와 부머쇼퍼가 8 대 2 정도였지만 지난해에는 7 대 3 정도로 격차가 줄었다. 특히 쿠팡 이용 고객 가운데 60대 이상 비중은 코로나19 이전인 2019년 3.75%에서 지난해 6.20%로 높아졌다. 이는 전체 연령대 가운데 가장 크게 높아진 것이다.

부머쇼퍼가 빠르게 온라인으로 유입된 데는 가족 간 ‘리버스 멘토링’의 영향이 컸다. 지난해 가족 구성원이 집에 함께 머무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젊은층이 고령층에게 신문물을 전해주는 과정이 자연스럽게 이뤄졌다. 이정희 중앙대 경제학부 교수는 “한국은 인터넷, 모바일 보급률이 높은 데다 가족 간 친밀도가 높아서 자녀가 ‘모바일 선생님’ 역할을 할 수 있는 지리적, 문화적 여건을 모두 갖췄다”고 말했다.

김정애 씨(63·서울 서대문구) 역시 자녀의 도움으로 지난해부터 새벽배송으로 신선식품을 주문하고, 의류도 온라인으로 산다. 김 씨는 “원터치 결제 등록까지 좀 헤맸지만 한번 하고 나니 너무 편해서 세상이 이렇게 좋구나 느낀다”고 말했다. 주거 밀집도가 높아 당일배송, 새벽배송이 다른 나라보다 발달한 점도 부머쇼퍼의 이커머스 만족도를 높이는 데 큰 영향을 미쳤다.

○ 자금력으로 소비 지형도를 바꾸다
부머쇼퍼는 원래 오프라인 시장의 핵심 고객이었다. 이들은 온라인으로 넘어온 뒤에도 영향력을 유지했다. 특히 최근 온라인 신선식품 시장이 이례적으로 성장한 것은 부머쇼퍼 덕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국민연금연구원에 따르면 2019년 기준 베이비붐 세대의 지출 항목 중 식료품 비중은 30%로 전체 지출품목 중 가장 높았다. 예전에는 ‘먹는 건 보고 사야 한다’는 통념 때문에 신선식품의 온라인 매출 비중은 낮은 편이었다. 부머쇼퍼가 온라인시장에 대거 진입하면서 신선식품의 온라인 침투율(한 번 이상 온라인 쇼핑을 이용한 소비자 비율)은 2019년 12%에서 지난해 29%로 늘었다.

베이비붐 세대의 진격은 고가 브랜드 의류, 리빙용품 등 분야의 성장세로 이어졌다. 백화점을 주로 다니며 의류 쇼핑을 즐겼던 김정희 씨(63·서울 동작구)는 최근 홈쇼핑 앱을 모두 깔았다. 그는 “온라인에 세일 제품이 많다는 걸 알게 되면서 옷, 화장품, 명품가방도 인터넷으로 산다”고 말했다. 김 씨처럼 베이비붐 세대는 검증된 브랜드 제품을 선호한다. 이들이 사는 제품의 단가가 높은 이유다. G마켓에서 60대 이상이 지난해 전년보다 많이 구매한 제품은 의료용품(233%) 건강식품(46%) 골프제품(26%) 브랜드 의류(18.1%) 등이었다.

전문가들은 이들이 소비 내구재와 명품 시장 등에서 상당한 파워를 가지며 영향력을 행사할 것으로 전망했다. 실제 부머쇼퍼는 금융과 실물자산이 가장 많은 세대다. 50대 가구의 순자산 보유액(4억987만 원)은 전 세대 중 가장 높다. 이병훈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베이비붐 세대는 다른 연령대에 비해 지갑이 두껍고 인구수도 많아 소비 시장에 미치는 영향이 클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모바일로 상품 구경하며 댓글 소통까지… 라이브커머스, 부머쇼퍼 입성에 급성장

작년 4000억 시장, 올핸 2조8000억
5060들 홈쇼핑과 유사채널 인식… 업체도 고령층 선호 품목 늘려



“정말 많이 신경을 쓰는 건 샴푸가 아니고 흰머리입니다.”

“중년엔 뿌리볼륨 너무 중요하죠.”

최근 한 생활용품업체에서 진행한 탈모완화 기능성 샴푸 라이브커머스 채팅창에는 부머쇼퍼들의 댓글이 쏟아졌다. 50대 남성 진행자가 “친구들이 샴푸 하나 고를 때도 탈모 때문에 정말 신경 많이 쓴다”고 말한 직후 나온 공감의 댓글들이었다. 라이브커머스는 실시간 동영상으로 상품을 판매하는 서비스다. 유튜브 ‘라방’(라이브방송) 보듯이 모바일로 구경하며 물건도 사고 수다도 떨 수 있다.

지난해 코로나19 이후 오프라인 매장에서의 쇼핑이 힘들어짐에 따라 국내 라이브커머스 시장이 폭발적으로 성장하고 있다. 교보증권에 따르면 지난해 4000억 원대였던 라이브커머스 시장 규모는 올해 2조8000억 원으로 커졌다.

라이브커머스 시장이 이렇게 급성장할 수 있는 요인 중 하나는 ‘TV와 결별한 부머쇼퍼’가 이 시장에 들어온 점이다. 50대 이상 고객들이 라이브커머스를 TV홈쇼핑과 유사한 채널로 보고 있는 것이다. CJ온스타일에 따르면 올해 1∼5월 전화 주문에서 모바일 주문으로 전환한 50대 이상 고객은 전년 같은 기간보다 90% 늘었다. 임운택 계명대 사회학과 교수는 “국내 고령자는 미국이나 유럽 등에 비해 디지털 기기 보급률이 높고 활용 능력도 높은 편”이라며 “우리나라에선 ‘얼리어답터’가 꼭 젊은층이라고 보기 어렵다”고 말했다.

애초 MZ세대(밀레니얼+Z세대)를 겨냥해 라이브커머스에 뛰어들었던 업체들도 고령층이 선호하는 제품군으로 영역을 넓히고 있다. 현대백화점은 2030세대를 겨냥한 영패션 위주로 판매하다가 식료품, 전기밥솥, 명품 등으로 품목을 늘렸다. 롯데백화점도 자체 라이브커머스 채널에서 4050 여성 고객을 염두에 두고 프리미엄 식기와 뷰티 브랜드를 집중 편성했다.

특별취재팀
▽ 팀장 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 취재 황태호 사지원 이지윤 기자
▽ 사진 김재명 기자
▽ 그래픽 김수진 기자
▽ 편집 양충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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