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포천시 영중면에 있는 ‘포천딸기힐링팜’에 가면 6644m² 규모의 거대한 스마트팜 시설이 맞아준다. 스마트팜 앞쪽에는 ‘청년농업인 대상 수상’이라는 긴 현수막이 걸려 있다. 주인공은 ‘힐링팜’을 경영하는 안해성 농부(38). 조만간 현수막을 몇 개 더 설치해야 할 것 같다. 안 씨는 24일 환경부 주최 에코디지털 탄소중립 공모전에서 환경부장관상도 받았다. 도시농업박람회 농업영상 공모전 최우수상, 농산업 창업아이디어 경영대회 우수상, 대통령 농특위 공모전 입상 등 농업에 뛰어든 지 2년도 안 된 그의 수상 경력은 화려하다.
안 씨의 배경은 독특하다. 서울대 지질학과 대학원 졸업에 현대건설 인공지능 빅데이터 연구원. “이렇게 똑똑한 젊은이가 농사를 짓겠다고?” 2019년 가을 그가 딸기 농사를 짓겠다고 인사하러 왔을 때 마을 주민들은 이해하기 어렵다는 반응을 보였다. 안 씨는 25일 ‘힐링팜’을 찾아간 기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이 동네는 풍광은 수려하지만 대규모 돈사(豚舍)가 많아 악취가 심한 편입니다. 모두 떠나려는 곳에 정착하겠다고 하니 놀라는 것도 당연합니다.”
지금은 현수막이 내걸릴 정도로 ‘동네 자랑’이 됐다. 아버지가 카센터를 접고 2000년대 초 귀농했기 때문에 “농업은 앞으로 내가 할 일”이라는 결심은 언제나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었다.
안 씨는 지금 포천에서 가장 큰 규모의 딸기 농사를 짓고 있다. 직접 시공에 참여한 스마트팜에서 모두 생산된다. 정보통신기술(ICT) 기반으로 설계돼 온도, 습도부터 일조량까지 원격제어가 가능하다. 농장 안팎에 부착된 센서를 통해 수집된 기후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컴퓨터에 전송해 딸기 재배에 최적의 환경을 찾는다. 스마트팜을 구경하러 오는 예비 농업인, 단체 연수생들이 늘면서 관광 체험학습 기회도 제공하게 됐다.
안 씨는 스마트팜을 최고 자랑거리로 여긴다. 직접 설계한 데다 지난해 1월부터 토목공사, 골조 양액 시설 등 10개 업체를 분리 발주시켜 8월에 완공했다. 설치 비용은 총 4억여 원. 만약 시공업자에게 설계부터 사후 관리까지 모든 과정을 맡기는 턴키 계약 방식을 택했다면 비용이 5억 원 이상 들었을 것이라고 한다.
“10억∼20억 원이 들어가는 최첨단 유리온실만이 스마트팜이라고 여겨 엄두를 못 내는 분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ICT 복합 환경제어 시설만 설치하면 2억 원 정도로 한국형 스마트팜을 구현할 수 있습니다.”
안 씨는 초기 정착 과정에서 농림축산식품부의 ‘청년후계농 영농 정착 지원사업’을 연구해 활용했다.
“농사는 매달 들어가는 고정 비용이 만만치 않습니다. 매달 최대 100만 원씩 받는 정착지원금은 생활비, 유류비, 농기자재 수리비 등으로 썼습니다. 창업 자금도 3억 원을 저리로 융자받아 토지를 구입했죠. 농업진흥청과 농림수산식품교육문화정보원 등이 제공하는 6개월 이상 코스의 청년귀농 장기 교육을 이수한 것도 큰 도움이 됐습니다.”
연구실을 떠나 농사꾼으로 변신한 안 씨는 다른 사업도 준비하고 있다. 자신이 터득한 비법을 전수하는 농업 교육 및 컨설팅 사업이다. 기자와 만나는 중에도 각종 기관과 학교들로부터 스마트팜 및 창농 강연 요청 전화가 걸려왔다. 이달에만 600여만 원의 강연 수입을 올렸다고 한다.
소통하는 것을 좋아하는 그는 ‘안스팜티비’라는 유튜브 채널도 지난해부터 운영 중이다. 젊은 농업인들 사이에서 유튜브 스타인 그는 사업계획서 작성법부터 창업 과정에서 겪은 시행착오와 스마트팜 시공 정보를 공개하고 있다.
“처음에는 반대하시던 부모님이 이제 고개를 끄덕이십니다. ‘네가 이래서 농사를 짓겠다는 거구나’ 하고 말씀하세요. 재래식 농법에서 벗어나 모든 것을 연구하고 비즈니스 모델로 접근하는 아들을 신뢰하는 거죠.”
月 100만원 정착금 - 3억 융자에 컨설팅까지… ‘영농 집중’ 도우미
청년후계농 영농정착지원사업…정부, 창농 초기 소득 불안정 보전 올해는 1800명까지 지원 확대…심리안정-자신감 향상에도 도움
A 씨는 3년 전 30세의 나이에 회사원 생활을 접고 농사에 뛰어들었다. 그러나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초기 창농 과정은 고난의 연속이었다. 이 기간 동안 수입이 불안하다는 게 가장 마음에 걸렸다. 가정을 꾸리고 식구가 늘어난 때였기 때문에 창농 실패는 곧 생존의 문제와 직결됐다.
청년농업인이라면 누구나 겪게 되는 이런 고민에 답해주는 프로그램이 있다. 농림축산식품부의 ‘청년후계농 영농정착 지원사업’이다. 청년층의 농업 분야 창업 활성화와 조기 경영안정화를 위해 월 최대 100만 원의 생활안정자금을 3년간 지원한다. 청년농업인을 돕는 사업은 중앙 정부와 지자체 차원에서 꽤 많이 있다. 대부분은 농기자재, 온실 설치 등을 현물 지원하거나 농업실습 및 교육을 제공하는 방식이다. 영농정착 지원사업은 유일하게 ‘생활비’를 대주는 프로그램이다. 이 돈으로 마트에 갈 수 있고, 분유 값도 충당할 수 있다. 물론 농기계를 수리할 수도 있고 유류비로도 사용할 수 있다.
영농정착 지원사업은 생활비와 함께 융자 및 교육 컨설팅도 병행한다. 토지 농기계 영농시설 등을 마련할 수 있도록 고정 금리 2%대로 최대 3억 원의 창업자금을 융자해준다. 농지은행을 통해 비축 농지도 우선적으로 임차할 수 있다. 이 밖에 영농기술 교육 및 영농 경영 투자 컨설팅도 받을 수 있다.
생활비 지원의 경우 (농협) 바우처 카드를 발급받게 된다. 이 카드에 월 최대 100만 원씩 꼬박꼬박 적립돼 편의점, 마트, 대형 할인점, 식당 등에서 사용할 수 있다. 원래 사용 용도가 아닌 유흥비로는 쓸 수 없다. 생활비는 3년 동안 연차별로 차등 지급된다. 1년 차는 100만 원, 2년 차는 90만 원, 3년 차는 80만 원이다. 3년 차까지 100만 원 일률 지급, 5년으로 혜택 기간 연장 방안 등의 개선안이 논의되고 있다.
영농정착 지원사업은 2018년 시작돼 매년 1600명씩 선발해오다가 올해는 1800명으로 늘렸다. 올해까지 총 6600명의 청년농이 혜택을 받았다. 지자체 산하 농업기술센터 등에서 관련 정보를 얻을 수 있다. 이 프로그램에 대해 아직 모르는 이들이 많다고 농식품부 관계자는 귀띔했다. 올해 선발자를 보면 지역은 경북(304명), 전북(294명), 전남(282명) 등의 순이었으며, 생산 품목은 채소류(26.1%)가 가장 많고 과수류(15.5%), 축산(13.3%) 등이 뒤를 이었다.
신청 자격은 만 18세 이상 40세 미만이며 농산물품질관리원이 인증하는 농업경영체로 등록된 상태여야 한다. 본인 명의의 독립적인 영농 기반을 갖추고 있고 본인이나 배우자의 직계존속으로부터 임차 형태의 농업에 종사한다면 혜택을 받기 힘들다. 김정희 농식품부 농업정책국장은 “영농 초기 소득이 불안정한 청년농의 소득을 직접적으로 보전해준다는 데 의의가 있다”며 “농외소득 활동을 줄이고 영농에 집중할 수 있고 심리적 안정감 및 자신감 향상에 도움을 줄 수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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