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품 지분 나눠 공동구매 인기
“좋아하는 작품 소유” 만족도 높고 평균 수익률 17%… 세금 부담 낮아
소액 투자자 중 2030 절반 넘기도…“투자자 보호 안돼 주의해야” 지적도
지난달 29일 오전 10시, 직장인 이모 씨(28)는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앱)을 터치했다. 평소 관심이 많았던 사석원 화가의 동물 그림에 투자하기 위해서였다. ‘미술품 공동구매 플랫폼’으로 유명한 이 앱에서는 세계적인 예술가의 작품을 수천 개 지분(조각)으로 쪼개 팔기 때문에 적은 돈으로 미술품에 투자할 수 있다. 오전 10시 시작된 공동구매는 단 1분 만에 마감됐다. 이 씨는 “친구들 사이에서 미술품 투자가 뜬다는 얘기를 들었지만 이렇게 경쟁이 치열할 줄 몰랐다”고 말했다.
최근 MZ세대(밀레니얼+Z세대) 사이에서 ‘아트테크(아트+재테크)’가 인기를 끌고 있다. 그림을 여러 조각으로 나눠 1000∼1만 원 단위 소액으로 ‘조각 투자’할 수 있도록 한 온라인 플랫폼이 등장한 덕분이다. 고액 자산가들의 전유물이던 미술품 투자의 진입 장벽이 허물어진 것이다.
○ “멋진 그림에 투자해 36% 수익까지”
“코인 시세창을 들여다보며 밤잠을 설치느니 멋진 그림에 투자하고 싶었어요. 은행 예·적금보다 훨씬 높은 수익도 낼 수 있고요.”
회사원 김모 씨(32)는 올봄 ‘물방울 화가’로 유명한 김창열 화백의 그림에 투자했다. 서울옥션블루가 운영하는 아트테크 플랫폼 ‘소투’를 통해서다. 소투는 여러 사람이 투자할 수 있도록 그림을 수백, 수천 개 조각으로 쪼개 내놓는다. 향후 경매 등을 통해 해당 그림이 실제로 팔리면 판매 수익을 조각대로 나눠 준다.
김 씨는 40만 원을 들여 200조각을 사들였다. 2주 후 그림이 비싼 가격에 팔리면서 김 씨는 약 54만 원을 손에 쥐었다. 14일 만에 36%의 수익률을 올린 것이다. 지난해 11월 플랫폼 개시 이후 7개월간 소투에서 조각 판매된 작품의 평균 수익률은 17%를 웃돈다. 최고 수익률(211.5%)을 올린 그림은 천경자 화가의 ‘여인의 시’였다.
‘아트투게더’ ‘테사’ 등 다른 아트테크 플랫폼에서는 미술품에 조각 투자한 투자자들이 주식 거래처럼 서로 조각을 사고팔 수도 있다. 투자자들이 공동구매한 그림을 갤러리에 대여해주는 방식으로 수익을 올리는 플랫폼도 있다.
아트테크 인기가 뜨거워지면서 금융회사도 뛰어들고 있다. 신한카드는 지난달 10일부터 열흘간 서울 용산구 블루스퀘어에서 아트페어 ‘더 프리뷰 한남’을 열었다. 동시에 아트테크 플랫폼 ‘마이 아트 플렉스’도 내놨다. 온·오프라인에서 거래된 미술품은 500건이 넘는다. 신한카드 관계자는 “작품 가격을 10만 원대부터 시작했더니 20, 30대의 관심이 컸다”고 했다. 신한 우리 하나은행 등은 제휴한 아트테크 플랫폼을 모바일뱅킹 앱에 탑재하는 식으로 미술품에 관심 많은 MZ세대 잡기에 나섰다.
○ ‘가심비’ 추구 MZ세대 사로잡아
최신 아트테크 트렌드는 적은 돈으로 고가의 미술품을 소유한다는 만족감이 크다는 점에서 MZ세대가 추구하는 ‘가심비’(가격 대비 마음의 만족)에 부합한다. 실제로 아트테크 플랫폼 ‘아트앤가이드’에서 1만 원 단위로 공동구매에 참여한 투자자 중 20, 30대가 절반(52%)을 넘었다.
최근 앤디 워홀 작품의 지분을 사들인 홍유선 씨(28)는 “좋아하는 작가의 그림을 일부라도 가질 수 있어 행복하다”며 “주식, 코인은 실물이 없지만 그림은 갤러리에 직접 찾아가 볼 수도 있어 만족도가 더 높다”고 했다. 미술품뿐 아니라 부동산, 명품 스니커즈 등도 조각 투자로 투자하는 MZ세대가 많다.
상대적으로 아트테크의 세금 부담이 적다는 점도 장점으로 꼽힌다. 미술품은 부동산 등 다른 자산과 달리 취득, 보유 때 세금이 발생하지 않는다. 양도차익에 대해서도 일반 양도세율보다 낮은 20%의 세율이 적용되고 6000만 원 미만인 작품은 양도세가 부과되지 않는다.
다만 미술품은 위작이나 도난의 위험이 있고 실제로 사가는 사람이 등장하지 않을 경우 현금화가 어려워 투자할 때 주의해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강조한다. 또 아트테크 플랫폼 사업자들이 통신판매업자로 분류돼 있어 투자자 보호도 받을 수 없다. 함윤철 제이슨함 갤러리 대표는 “미술품을 공동구매할 때 구매, 보관, 재판매 등에 대비한 명확한 계약이나 보호 제도가 필요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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