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정부는 (글로벌 법인세) 배분 비율을 20%로 제안했다. 30%가 넘어야 한다는 나라도 있고 25%로 얘기한 곳도 있다. 배분 비율 논의가 관전 포인트다.”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10일(현지 시간) 이탈리아 베네치아의 한 호텔에서 한국 기자들과 만나 주요 20개국(G20) 재무장관회의 결과를 이렇게 설명했다. 이번 회의에선 글로벌 디지털 기업이 매출을 올리면 통상이익(10%)을 넘어서는 초과이익의 20∼30%에 대한 세금을 해당 국가들에 내는 방안(필라1)과 다국적 법인에 대한 법인세율을 15% 이상으로 정하는 ‘글로벌 최저세율’ 도입 방안(필라2)이 큰 틀에서 합의됐다. 최종 합의안은 10월 30, 31일 로마에서 열리는 G20 정상회의에서 결정돼 2023년 시행될 계획이다.
○ 20% 제안한 홍남기, “한국 한두 곳 과세 대상”
이날까지 이틀간 베네치아에서 진행된 G20 재무장관회의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발생한 이후 사실상 처음 열린 대면 방식의 다자국제회의다. 이번 회의에서 100년 만에 글로벌 조세 체계를 바꾸는 글로벌 법인세 개편이 핵심 안건으로 논의됐다.
G20 재무장관들은 우선 연결매출액이 200억 유로(약 27조 원)이고 이익률이 10% 이상인 다국적 기업 100여 곳에 글로벌 법인세를 적용하기로 했다. 이 기업들은 본국뿐 아니라 매출을 낸 국가에도 이익률 10%를 넘어서는 초과이익의 20∼30%에 대한 세금을 매출 발생국들에 내야 한다. 대상 기업과 초과이익의 얼마까지 과세할 것이냐가 쟁점이다.
한국 정부는 초과이익 배분 비율(20∼30%)을 가장 낮은 수준인 20%로 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한국 기업들이 해외에서 세금을 내는 ‘세수 유출액’이 구글 등 해외 기업으로부터 거둬들이는 ‘세수 유입액’보다 클 수 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프랑스는 20∼30%의 중간 수준인 25%를 주장한 반면 논의를 주도한 미국은 눈치를 보며 마지막 패를 감추고 있다. 홍 부총리는 “(배분 비율은 국가재정 등) 국가 이해관계와 국익에 따라 달라진다. 과세 대상인 100대 기업이 없는 국가는 높으면 좋고 많은 국가는 낮으면 좋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우리는 (과세 대상에) 한두 개 기업이 들어간다. 규모가 큰 기업”이라고 덧붙였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이 과세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 美 옐런 장관 “한국 입장 이해”
홍 부총리는 전날 재닛 옐런 미국 재무장관과 양자회담을 가진 뒤 기자들에게 “미국은 구체적인 (배분 비율) 기준을 말하지 않았다. 한국이 20%면 좋겠다고 제안하니 ‘한국 입장을 이해하겠다’ 정도만 말했다”고 전했다.
최종 합의 전까지 주요국 간 치열한 물밑 외교전이 펼쳐질 것으로 보인다. 법무법인 율촌 이경근 박사는 “큰 틀이 마련됐지만 디테일을 합의하는 과정에서 우리 기업에 생각지도 못한 독소 조항이 포함될 수도 있다. 남은 기간 협상에 철저히 대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글로벌 법인세는 디지털 기업이 대상이었지만 논의 과정에서 반도체 등 중간재 기업까지 범위가 넓어졌다.
속도가 나고 있는 글로벌 법인세 최저세율 제한 논의에 대한 대비도 시급하다는 분석이 나온다. 주요국이 세금 인하 대신 기업규제 완화, 외국인 인력 지원 등 다른 무기를 앞세워 해외 기업 유치에 나설 것으로 예상된다. 옐런 장관은 이번 세제 개혁안에 대해 “누가 가장 낮은 세율을 제시할 수 있는지 묻는 대신 모든 국가가 경제 펀더멘털을 바탕으로 경쟁할 수 있도록 할 것”이라고 했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은 9일 ‘최근 디지털세 논의 동향과 시사점’ 보고서에서 “한국이 기존 세제 혜택 효과와 영향을 면밀히 검토하고 제도를 개선해 외국인 투자 유치의 효과성을 높이는 선제적 대응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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