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려한 조명을 받는 ‘유니콘’ 기업들이 스타트업의 전부는 아니다. 주목받지 못해도 묵묵히 꿈을 향해 뛰고 있는 20, 30대 청년 창업자들이 훨씬 많다. 이들에게 창업은 돈을 벌기 위한 수단만은 아니다. 혁신적인 아이디어로 더 나은 사회를 만들 수 있다고 믿으며 오늘도 한 걸음 내딛는다. 2030세대 창업자들의 꿈과 도전을 편지글 형식으로 소개한다. 동아일보는 청년 창업자들을 응원하며 그들이 세상에 알리고 싶은 이야기를 지면을 통해 계속 전할 예정이다.》
이채진 코끼리공장 대표(36)… “치열하게 부딪치니 새 길 열려”
2014년 창업에 뛰어든 뒤 5년 동안 회사 장부엔 ‘마이너스’만 가득했습니다. 어느덧 30대 중반, ‘이 길이 맞나’ 수백 번도 넘게 의심이 들었죠. 그때마다 처음 마음가짐을 떠올렸습니다.
“창업은 더 나은 사회를 만들 수 있는 최고의 수단이다. 세상을 바꿀 최고의 일을 해보자.”
‘아동복지기관 등에서 버리는 장난감을 받아 수리하거나 재활용해 취약 계층에 기부하겠다. 그 과정에서 수익도 내보겠다.’ 제 결심을 듣고 주변에선 걱정부터 하셨죠. 아무도 성공하지 못한 일이었거든요. 2019년에야 마침내 연간 기준으로 흑자를 냈습니다. 그때의 쾌감을 지금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네요.
첫 흑자를 낸 돈으로 지난해엔 아이들이 망가진 장난감을 기부하면 어떻게 수리, 재활용되는지를 체험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었어요. 부모님 손을 잡고 와서 장난감을 기부하고 떠나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면 어찌나 뿌듯한지.
이제는 외부에서 투자 제안을 받을 정도로 회사가 많이 성장했다는 것을 느껴요. 그래도 여전히 고민이 많습니다. 우리가 사회에 좋은 영향을 주는 것인지, 혹시 해를 끼치는 것은 아닌지. 치열한 고민 끝엔 늘 새로운 길이 열렸던 것 같아요. 지금 이 순간도 그렇고요.
문찬영 95도씨(℃) 대표(26)… “힘들어도 한번 도전해봐야”
‘신발 커스텀(제품을 자신의 스타일로 변형)’이 무슨 돈이 되냐고 주변에선 뜯어말렸습니다. 은행에선 대출은커녕 카드도 안 만들어주더라고요. 그래도 포기할 수 없었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답은 창업뿐이었습니다.
‘나만의 제품’을 찾는 사람이 늘어날 것이라 확신했습니다. 3년 전, 기존 브랜드 신발에 자수를 넣거나 그림을 그려 상품을 재탄생시키는 사업을 시작한 이유입니다. 버려지는 신발을 수거한 뒤 2차 디자인을 거쳐 판매하는 작업도 함께 하고 있습니다.
사업 초기 잠을 줄여 가며 하루 10시간 이상씩 신발을 만들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특색 있는 신발, 리사이클 디자인 제품으로 입소문이 나면서 이제는 규모가 제법 됩니다. ‘형처럼 되고 싶다’는 중·고등학생들의 메시지도 받습니다. 꿈을 좇다 보니 이젠 제가 누군가의 꿈이 된 듯해 책임감도 느낍니다.
창업하겠다는 청년들에게 ‘왜 굳이 힘든 길을 가려 하냐’ ‘사회생활 좀 해보고 시작하는 게 좋다’고 조언하는 분이 많습니다. 제 생각은 다릅니다. 청년의 하루는 중장년의 일주일만큼의 가치를 하는 ‘인생역전의 골든타임’이라고 들었습니다. 아이디어가 있으면 고민하지 말고 뛰어들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그게 진정한 청춘 아닐까요.
윤슬기 언어발전소 대표(37)… “봉사-육아 등 경험이 큰 자산”
2019년 여름. 스위스 유학을 마치고 남편과 갓 두 돌이 지난 아이와 함께 입국했을 때는 막막했어요. 사회에 보탬이 되는 일을 하겠다는 생각은 있었지만 구체적으로 뭘 할지는 갈피를 잡지 못했죠.
그때 서울의 한 대형 병원에서 언어재활사로 일하던 친동생(32)의 고민을 듣고 “이거다” 싶었어요. 뇌 손상 후유증 등으로 의사소통에 어려움을 겪는 환자들이 재활치료를 위해 먼 곳의 큰 병원까지 어렵게 오가는 모습이 안타깝다는 얘기였죠.
“언제 어디서든 합리적 비용으로 언어재활을 받을 수 있는 비대면 시스템을 도입해 보면 어떨까.”
대학에선 생물학을 전공했고 정보기술(IT)이나 언어재활은 전혀 알지 못했죠. 게다가 어린 아이를 키워야 하는 현실. 어떻게 보면 무모한 선택이었죠.
모르는 만큼 치열하게 공부하고 도전했어요. 동생과 함께 유튜브로 비대면 언어재활 관련 콘텐츠를 제작해 올리면서 가능성을 확인한 뒤 지난해 2월 법인을 설립했죠.
창업자로서 제가 ‘특별한 장점’이 있는지는 잘 모르겠어요. 대신 직장생활부터 해외 봉사, 유학, 육아 등 다양한 경험이 큰 자양분이 된 것 같아요. 창업은 ‘특별한 사람’만 하는 게 아니라는 걸 저를 통해 알아주셨으면 해요.
박기범 인바이러스테크 대표(31)… “책상 앞보다 현장에 답 있어”
연간 200여 명의 농촌 주민이 진드기에 물려 세상을 떠납니다. 이른바 ‘살인 진드기병’으로 불리는 중증열성혈소판감소증후군(SFTS) 바이러스 탓이죠. 모기를 매개로 전염되는 지카바이러스 등의 질병도 농촌 지역에는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대학원에서 관련 연구를 하면서 ‘저렴하고 안전하면서도 신속하게 감염 여부를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고민했어요. 연구자로서 일부 기술을 개발했지만 한계를 느꼈어요. 결국 ‘제품’을 만들어야 많은 사람들이 혜택을 볼 거라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2019년 11월 창업의 길을 선택한 뒤 연구실과 사무실, 현장을 오가는 밤낮 없는 생활이 이어졌습니다. 하루 2, 3시간 쪽잠으로 버틴 끝에 저비용으로 정확하게 질병 검사가 가능한 키트를 만드는 데 성공했어요. 과학자로서 사회에 이바지하겠다는 꿈을 창업자로서도 이루게 된 셈이었어요.
돌이켜보면 수년간 정말 부지런히 현장을 다녔어요. 제가 가진 아이디어와 기술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은 누구인지 농촌 등을 다니며 듣고 또 들었죠. 혹시 아직도 책상 앞에서 아이디어를 떠올리는 예비 창업자가 있다면 지금 당장 현장으로 나가 보는 것은 어떨까요. 그곳에는 분명히 답이 있을 겁니다.
창업으로 일구는 나의 꿈을 세상에 전하고 싶은 20, 30대 청년 창업가들의 목소리를 기다립니다. 카카오톡 오픈채팅에서 ‘스타트업talk’ 또는 ‘스타트업톡’을 검색해 ‘동아일보 스타트업talk 채팅방’으로 들어오시면 참여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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