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 보호와 사회적 약자에게 도움을 주기 위해 창업에 나선 20, 30대 청년들이 있다. 사회적 문제를 ‘기업가 정신’으로 해결하려는 이들이다. 사회적 가치와 수익을 동시에 추구하며 의미 있는 발걸음을 내딛고 있는 청년 창업자들의 꿈과 도전을 일기 형식으로 전한다. 이들을 돕는 투자사 대표가 전하는 ‘조언’도 함께 소개한다. 동아일보는 청년 창업자들을 응원하며 그들이 세상에 알리고 싶은 이야기를 앞으로도 지면을 통해 계속 전할 예정이다.》
장진혁 이노버스 대표(26)… “플라스틱 쓰레기, 자원 될수 있어”
“일단 다 버려.”
아직도 당시의 기억이 생생하다. 창업 아이템을 고민하다가 한 재활용 선별장에 갔을 때였다. 쓰레기가 쉴 새 없이 쏟아지는 현장에선 버려진 플라스틱의 소재를 확인하고 재활용 가능 여부를 판단할 겨를이 없어 보였다. 자세히 살펴보니 재활용이 가능한 투명 플라스틱 컵도 상당수 그냥 폐기 처분됐다. 땅에 묻혀 자연스럽게 생분해되려면 100년도 넘게 걸리는 것들인데…. 한국에서만 연간 33억 개가 발생한다는 플라스틱 컵이 이렇듯 무심하게 땅에 묻히는구나 싶었다.
그때 마음을 먹었다. 사람들이 흔히 쓰는 플라스틱 컵을 쓰레기가 아니라 자원으로 바꿀 수 있도록 창업에 나서기로.
다행히 대학이나 대기업이 주최한 창업대회 등에서 선정돼 지원금을 받아 사업 초기 자금을 마련할 수 있었다. 사업계획서가 외부에서 인정을 받으니 자신감도 붙었다.
2019년 11월 사업자 등록을 마친 뒤 더 속도를 냈다. 하루에 12시간 넘게 일을 해도 신이 났다. 다짐한 계획을 하나씩 이뤄 나가는 것이 즐거웠다.
그렇게 사람들이 카페 등에서 흔히 쓰는 플라스틱 컵을 한곳에서 한번에 세척한 후 바로 수거할 수 있는 기기를 개발했다. 이 기기에 모인 플라스틱 컵은 솜으로 재탄생된다. 대학, 터미널, 대기업 등에 이미 수십 대가 설치돼 쓰이고 있다.
직장 생활 등 별다른 경험도 없는 우리 팀이 여기까지 온 건 정말 운이 따라준 덕분이다. 다른 창업자들의 이야기를 들어봐도 흔치 않은 사례다. 또래 청년이 창업에 대해 묻는다면 “당장은 하지 말라”고 말하고 싶다. 진짜 하지 말라는 게 아니다. 스타트업에 대한 경험과 공부를 한 뒤 시작해도 늦지 않다는 이야기다.
윤지현 소보로 대표(25)… “청각장애인용 음성인식 자막”
371개.
2017년 11월 ‘소보로’ 법인 설립 등기를 마친 뒤 전자 문서로 쓰기 시작한 창업 일기가 어느덧 이렇게 쌓였다. 사업을 진행하면서 겪은 경험과 감정, 스스로 냉정한(?) 평가 점수도 고스란히 담겨 있는 일기다.
가끔 검색해 ‘과거의 나’를 찾아본다. 일이 손에 안 잡히고 슬럼프에 빠진 날엔 어떻게 극복했는지를 톺아보면 해결책을 찾을 때도 있다. 과거엔 잘했어도 지금은 못하고 있는 것을 곱씹으며, 하루하루 조금씩이라도 성장하려 노력한다.
창업의 계기는 생각보다 우연한 기회로 찾아왔다. 대학에서 정보기술(IT) 설계 수업을 들으며 어떤 서비스를 만들어볼까 고민하다가 강의실에서 불편을 겪는 청각장애 학생들을 떠올렸다. 한창 인공지능(AI) 기반 음성인식 기술이 화제에 오르던 때였다. 이 기술로 사람의 말을 ‘자막’으로 표시하는 서비스를 개발하면 청각장애인들에게 큰 도움이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술’에서 출발한 사업 아이템이었지만 종착점은 ‘사람’이었다. 청각장애를 가진 학생과 이들을 가르치는 선생님 등을 만나며 사람과 사회가 필요로 하는 기술, 서비스로 다듬어 나갔다. 돌이켜보면 어린 시절부터 책을 가까이 하며 사람에 대한 호기심을 키웠던 점이 사업 아이템을 정할 때 알게 모르게 영항을 준 것 같다.
창업 후 많은 게 바뀌었지만 하나 변하지 않은 것이 있다. 이용자의 진심이 담긴 피드백을 읽는 일은 언제나 즐겁다. 장애를 겪는 분들에게 우리 서비스가 도움이 된다는 것을 직접 확인할 수 있어서다. ‘미래의 나’도 변함없이 이 기쁨을 즐겼으면 하는 바람이다.
권기성 쉐코 대표(30)… “해양오염 청소로봇 지켜보라”
줄곧 맨땅에 헤딩하듯이 사업을 이어왔다.
해양 기름 유출 사고가 났을 때 회수 작업을 하는 무인 로봇을 만들어보겠다고 창업에 뛰어들었다. 수요가 있는지 파악하려 선주(船主) 회사 등에 무작정 연락을 하고 찾아가 보면 거절당하기 일쑤. 어렵게 시제품을 개발한 뒤에는 시험할 곳이 없어 건물 옥상 위에 작은 수조를 설치해 시운전하며 마음을 졸였다. 참고할 만한 제품이 없어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걸 시험해보며 지내기를 몇 년. 쪽잠을 자는 날들이 이어졌다.
무작정 찾아가 처음 만난 해양경찰청 관계자는 “20여 년간 근무하면서 새로운 사업 아이템을 들고 직접 찾아온 민간인은 처음”이라며 놀란 눈으로 우리를 맞이해줬다. 지금은 해경, 항만공사 등과 함께 실제 사고 현장에서 기름 회수를 내용으로 하는 실증사업을 8월 시작 목표로 준비 중이다.
국내에서 해양 기름 유출 사고는 연평균 270건 발생한다. 1.5일에 한 번꼴로 사고가 난다. 수습하는 것은 모두 사람의 몫이다. 유출 지역으로 가서 사람이 직접 흡착포로 기름을 걷어내야 한다. 이 과정에서 바다뿐만 아니라 기름과 직접 맞닿는 사람도 피해를 본다. 2차 피해나 산업재해가 발생하는 일도 잦다.
창업 후 많은 것이 바뀌었어도 사람을 살리는 ‘착한 사업으로 돈을 벌자’는 처음의 다짐은 변하지 않았다. 주변에서 성공하지 못할 거라고, 말도 안 되는 꿈이라는 이야기도 많이 들었다. 말도 안 되는 꿈이 현실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11번째 로봇 시제품을 만들고 지금까지 버텨왔다. 실패하더라도 후회는 없다. 행동하는 것과 그러지 않는 것은 하늘과 땅 차이니까.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