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봉 크리스틴컴퍼니 대표(36)는 대기업에 다니던 시절 ‘나만의 신발 브랜드’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품어왔다. 아버지가 신발 공장을 운영해 어린 시절부터 부산의 신발 공장들을 제집 드나들 듯했던 그였다. 1997년 외환위기 때 부모님 사업이 망하며 어려움을 겪고 대학 졸업 후 대기업에 취업해 안정적 생활을 했지만 ‘언젠가 대를 이어 신발 사업에 도전해 보겠다’는 꿈을 놓지 않았다.
이 대표는 “당시 아버지에게 공장마다 똑같은 신발을 만드는 건지 여쭤봤던 기억이 있다”며 “해외 브랜드 대신 우리만의 다양한 제품을 만들 순 없을까 생각했다”고 했다. 학창 시절에도 공책에 신발 디자인을 취미로 그릴 정도로 신발에 대한 꿈이 컸다.
창업에 도전하겠다고 결심했지만 벽은 높았다. 특히 수십 년째 이어져 온 신발 산업의 보수적인 산업 구조가 장애물이었다. 신발 제작은 끈부터 밑창 등 120여 가지 공정으로 나뉘는데 공장이 모두 제각각이다. 공정 몇 가지씩을 몇몇 에이전트가 차지해 대기업 수주를 따는 구조로 굳어져 있었다.
이 대표는 “대기업도 새 디자인 제품 제조에 1년이 걸리고 자사 신발이 어디서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정확히 모르더라. 신발업계에 패스트패션이 자리 잡지 못한 이유였다”고 했다. 그는 이 구조를 깨고자 했다. 주말마다 서울과 부산을 오가길 4년. 각 공정을 맡고 있는 공장 183곳을 일일이 설득했다. 모든 공정을 직접 섭외한 곳에 맡기면서 1년이 걸리던 새 디자인 제품 제조 기간이 한 달로 줄었다. 자신감을 얻은 이 대표는 2019년 신발 디자인·제조·플랫폼 회사 크리스틴컴퍼니를 차렸다.
이 대표는 회사와 각 공장들이 쓸 수 있는 애플리케이션 플랫폼을 만들어 고객 수요와 각 공장의 생산 진행 상황, 재고 등을 공유했다. 지난달에는 사람들의 상품평과 사진, 신발 유행 등을 인공지능(AI)으로 분석해 신발 디자인에 적용하기도 했다.
백화점에 매장을 낸 크리스틴컴퍼니는 올해 매출 20억 원을 기대한다. 직원 수는 8명까지 늘었다. 올해 4월 네이버 등에서 5억5000만 원의 투자도 이끌어냈다.
경상대 경영학과를 나온 이 대표는 대학 때 두부 사업, 청바지 납품 사업 등에 도전한 경험이 있는 ‘프로 창업러’다. 이 대표는 “창업 전에 대기업 11곳을 지원했는데 창업과 실패 경험 덕분인지 전부 합격했다”고 했다. 그는 “지방대생이 수도권 명문대 출신을 이기는 방법은 현장밖에 없다. 창업을 어려워하는 것 같은데, 막상 해보면 이만큼 신나는 것이 없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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