쫓겨난 세입자 확정일자 열람신청
주민센터 “현 거주자만 해당” 거부
다른 곳선 “요청서 작성하면 가능”
전문가 “국토부가 세부지침 내려야”
서울 광진구 아파트에서 보증금 4억 원에 전세살이를 했던 김모 씨(36)는 계약 종료 두 달을 앞두고 쫓겨났다. 계약갱신요구권을 써서 계약을 2년 연장하려 했지만 집주인이 들어와 살겠다며 거절하면서다. 하지만 최근 집주인이 전세금을 2억 원 넘게 올려 세입자를 새로 받았다는 말을 동네 공인중개업소에서 들었다. 자신이 계약 갱신을 했다면 2000만 원까지만 올릴 수 있는 전세금을 대폭 인상하려고 집주인이 자신을 내보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바로 동 주민센터에 갔다. 집주인이 거짓말을 했다면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집주인 거주 여부를 확인하려고 아파트 확정일자 열람을 요구했더니 담당 공무원은 “집주인이나 현 거주자가 아니라면 안 된다”는 말만 반복했다.
집주인이 실거주한다는 이유로 임대차 계약 갱신에 실패하고 집을 비워준 세입자들이 집주인의 실제 거주 여부를 확인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 것으로 나타났다. 일선 행정 현장에 세부지침이 제대로 전달되지 않아 세입자 보호장치가 무용지물이 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21일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정부는 지난해 7월 말 임대차 3법을 시행하면서 세입자 보호를 위해 집주인이 실거주를 이유로 세입자를 내보냈을 경우 세입자가 기존에 살던 집의 확정일자 열람할 수 있게 했다. 집주인이 실거주하지 않는다면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할 수 있다.
문제는 주민센터별로 확정일자 열람에 관한 답변이 제각각이라는 점이다. 강동구 천호동에 거주하는 이모 씨(32)는 최근 집주인이 실거주하겠다고 해 2년 살던 전셋집을 나왔다. 집주인 거주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주민센터를 찾았지만 “현 세입자가 아니어서 확정일자 열람이 어렵다”는 답변을 들었다. 임대차 3법 시행으로 이전 세입자에게도 확정일자 열람권이 생겼다는 기사까지 보여줬지만 “국토부에서 세부지침을 담은 공문이 오지 않았다”고 했다. 이 씨는 “잠복해서 집주인 실거주 여부를 알아내라는 것이냐”고 분통을 터뜨렸다.
반면 송파구 가락동에 사는 김모 씨(34)는 비슷한 이유로 주민센터를 찾았다가 다른 답을 들었다. 주민센터 담당자는 “임대차정보제공 요청서를 작성하면 확정일자를 열람할 수 있다”며 준비 서류(신분증, 계약서 사본 등)와 비용(건당 600원)까지 알려줬다.
결국 주민센터 담당자가 시행령 개정안을 얼마나 숙지하고 있는지에 따라 세입자들의 확정일자 열람 가능 여부가 달라질 수 있다는 의미다. 이에 대해 국토부 관계자는 “시행령 개정 때 ‘보도자료를 통해 시행령의 자세한 내용을 확인하라’는 공문을 지자체에 보냈다”고 해명했다.
전문가들은 행정편의주의로 집주인으로부터 쫓겨나는 세입자만 피해를 보고 있다고 지적한다. 이현성 법무법인 자연수 변호사는 “급하게 법을 시행하다 보니 시장 혼선이 이어지고 있다”며 “개정된 시행령을 일선 현장에서 모르고 있다면 담당 부처인 국토부가 하루 빨리 세부지침을 내려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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