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래 절벽에도 서울 아파트값 1년7개월 만에 최고 상승
집값 상승→규제→주춤→재상승→추가 규제 '학습효과'
정부 정책 신뢰 無·공급 물량 감소…수급불균형 장기화
“집값이 더 오를 수 있다는 기대감 때문인지 매물을 거둬들인 집주인들이 많아요.”
지난 26일 서울 동작구 흑석동의 한 공인중개업소 대표는 “투기지역으로 지정된 후에도 사겠다는 대기자들이 여전히 많은데 매물이 없다”며 이같이 말했다.
이 대표는 “아파트를 팔겠다는 집주인이 손에 꼽을 정도로 줄어서 말 그대로 부르는 게 값”이라며 “매물 구하기가 하늘의 별따기나 다름없다”고 전했다.
서울 아파트값은 고공행진을 거듭하고 있다. 매물은 갈수록 줄고, 매맷값은 치솟고 있다. 한동안 안정세를 보이던 서울 아파트값이 최근 오름폭을 점차 확대하며 1년 7개월 만에 가장 큰 폭으로 뛰었다.
거래절벽 상황에도 매수 심리는 다시 강해지고 있다. 홍남기 경제부총리와 노형욱 국토부 장관의 잇단 집값 고점 경고에도, 부동산시장은 아랑곳하지 않는 분위기다. 특히 주택 공급 부족에 따른 수급불균형이 심해지고 있으나, 정부가 추가로 내놓을 만한 대책이 없다 보니 부동산시장의 혼란이 커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서울 주간 아파트 매맷값이 1년 7개월 만에 가장 높은 상승률을 기록했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이달 셋째 주(19일 기준) 서울은 지난주 0.15%에서 이번 주 0.19%로 상승 폭을 키우며 2019년 12월 셋째 주(0.20%) 이후 1년 7개월 만에 가장 큰 폭으로 올랐다.
서울에서는 중저가 아파트가 몰려있는 이른바 노도강(노원·도봉·강북구) 지역의 상승세가 뚜렷했다. 노원구가 이번 주 0.35% 올라 15주 연속 가장 높은 상승률을 나타냈다. 도봉구는 0.18%에서 0.27%로, 강북구는 0.12%에서 0.18%로 각각 상승 폭을 키웠다.
강남권에서는 강남구(0.20%)는 일원·자곡동 등 외곽 지역 위주로, 서초구(0.18%)는 내곡동이나 반포·잠원동 위주로, 송파구(0.18%)는 오금·방이·가락동 위주로, 강동구(0.16%)는 길·상일·암사동 위주로 상승했다.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집값이 급등하면서 서울 중소형 아파트값이 평균 10억원을 넘은 것으로 나타났다. 중소형 아파트는 전용면적 60㎡ 초과~85㎡ 이하(공급면적 24~34평형)로 신혼부부부터 3~4인 가구까지 실수요자 선호도가 가장 높은 주택형이다.
KB국민은행에 따르면 지난달 서울의 중소형 아파트 평균 매맷값은 10억1262만원으로, 사상 처음으로 10억원을 넘겼다. 현 정부가 출범한 지난 2017년 5월(5억4464만원) 대비 5억원(상승률 85%) 가까이 상승했다.
강남권(한강 이남 11구) 중소형 아파트 평균 매맷값이 11억7628만원, 강북권(한강 이북 14구)이 8억8140만원으로 나타났다. 강남권 중소형 아파트값은 2018년 8월 8억원을 넘긴 뒤 1년 5개월 만인 지난해 1월 9억원을 넘었다. 이후 7개월 만에 10억원을 넘기더니, 5개월 만에 11억원을 넘어선 것이다. 강북권은 2019년 8월 평균 6억원대에 진입한 뒤 11개월 후 7억원을 넘어섰고, 이후 6개월 만에 8억원을 넘겼다.
사실상 모든 부동산 거래를 규제할 수 있는 토지거래허가구역 확대에도 신고가를 경신하는 단지들이 잇따르고 있다. 국토교통부의 실거래가 공개 시스템에 따르면, 강남구 압구정동 현대아파트4차(전용면적 117.9㎡)는 지난 5월13일 41억7500만원에 거래됐다. 두 달 전 최고가인 40억3000만원보다 1억4500만원이 상승했다. 또 현대아파트1차(전용면적 196.21㎡)는 지난 4월 15일 63억원에 거래됐다. 한 달 전 실거래가 51억5000만원보다 10억원 이상 올랐다.
서울 아파트 매수 심리도 다시 강해지고 있다. 한국부동산원이 발표한 이번 주(19일 기준) 서울의 아파트 매매수급 지수는 107.7로, 전주(105.1) 대비 2.6p 상승했다. 이 지수가 기준치인 100이면 수요와 공급이 같은 수준이고, 200에 가까우면 공급보다 수요가 많다는 것을 의미한다.
부동산시장에서는 수급불균형에 따른 집값 상승이 이어질 것이라는 전망에 무게가 실린다. 주택 수급에 대한 불확실성이 커지고, 정부 정책 신뢰도가 하락하면서 부동산시장에 불안 심리가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책 발표될 때마다 집값이 일시적인 안정세를 보이다 다시 급등하는 현상이 반복되면서 규제에 내성이 생겼고, 규제가 강할수록 집값이 급등했다는 ‘학습효과’가 작용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또 정부가 주택시장 안정을 위해 무리하게 주택 공급 정책을 강행하면서 공급 계획이 차질을 빚고 있다. 정부가 최근 과천청사 유휴부지에 주택 4000가구를 공급하겠다는 계획을 주민들의 반발이 거세지자 철회했다. 이와 함께 서울 서울의료원과 태릉골프장 내 공급 계획도 주민 반발에 부딪혀 별다른 진척이 없다.
여기에 하반기에 신규 공급 물량이 줄어든다. 부동산114에 따르면 올해 하반기 입주 예정인 서울 아파트는 1만3023가구다. 이는 2019년 하반기(2만3989가구), 2020년 하반기(2만2786가구)와 비교하면 1만 가구 이상 감소한 물량이다.
전문가들은 서울 집값 상승세가 이어질 것으로 내다봤다.
권대중 명지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수급불균형의 장기화가 집값 상승의 가장 큰 원인”이라며 “집값 안정을 위해 공급을 늘려야 하는데, 단기간에 공급을 늘릴 방안 대책이 보이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권 교수는 “재건축 기대감과 공공주택 공급 불확실성 등 집값 상승 요인이 여전한 상태에서 하반기 입주 물량이 많지 않기 때문에 상승세가 이어질 것”이라며 “매물 부족에 따른 거래 절벽이 이어지는 상황에서 내년 대선을 앞두고 규제 완화에 대한 기대감이 겹치면서 집값이 강세를 보일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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