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만 명이 가입한 ‘머지포인트’ 판매 중단 사태로 소비자와 가맹점의 혼란이 커지고 있는 가운데 머지포인트와 같은 선불전자지급 서비스에 물린 선불충전금이 2조 원으로 불어나 향후 비슷한 피해가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선불전자지급 업체들은 금융당국의 ‘규제 사각지대’에 방치돼 있어 도산할 경우 이용자들이 충전금을 날릴 수 있다.
선불충전금을 보호하는 법 개정안은 금융위원회와 한국은행의 권한 다툼 속에 9개월째 국회에 계류 중이어서 ‘부처 간 갈등 탓에 소비자 보호 기회를 놓쳤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15일 국회와 금융당국에 따르면 머지포인트 운영사인 머지플러스와 같은 선불전자지급 업체가 보관하고 있는 선불충전금 잔액은 2014년 말 7800억 원에서 2020년 9월 말 1조9900억 원으로 늘었다. 올해 들어 2조 원을 훌쩍 넘었을 것으로 추산된다. 금융위에 따르면 선불충전금을 받는 선불전자지급수단 발행업자는 이달 9일 현재 67곳이다.
선불충전금은 카카오페이, 쿠팡페이 등 간편결제 서비스를 비롯한 선불전자지급 업체에 대금 결제나 포인트 사용을 위해 미리 송금해 보관하는 돈이다. 미리 돈을 맡겨두면 급할 때 쉽고 빠르게 결제할 수 있어 잔액이 늘고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비대면 거래가 증가해 잔액이 뛰고 있다.
선불충전금은 갈수록 불어나고 있지만 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고 있다. 당국은 이를 우려해 지난해 9월 ‘전자금융업자의 이용자 자금 보호 가이드라인’을 내놨다. 가이드라인은 전자금융업체들에 충전금을 은행 등 외부 기관에 신탁하고 파산에 대비해 지급보증보험에 가입하라고 권하고 있다.
하지만 업체들이 이를 어겨도 처벌을 받지 않다 보니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이용우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 따르면 지난해 9월 현재 선불충전금을 운영 중인 전자금융업자 47곳 중 가입자가 1000만 명을 넘어선 쿠팡페이는 물론이고 이베이코리아, SK커뮤니케이션, 티머니 등 11곳은 가이드라인을 준수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쿠팡페이 등 일부 업체는 그 후 가이드라인을 준수하고 있지만 여전히 준수하지 않는 곳들이 있다.
국회에선 선불충전금 보호를 위해 전자금융거래법(전금법) 개정안이 지난해 11월 발의됐다. 가이드라인 주요 내용을 전자금융업체들에 의무화한 내용이다. 하지만 지급결제 권한을 두고 금융위와 한은이 ‘기싸움’을 벌이는 바람에 법안이 9개월째 국회에 계류돼 있다. 개정안에 따르면 지급결제 업무를 맡는 금융결제원을 금융위가 감독하게 되는데 한은이 “지급결제 제도는 중앙은행의 고유 권한이니 금결원에 대한 권한을 넘기지 못한다”며 반대한 것이다.
개정안은 당초 6월 통과될 것으로 예상됐지만 무산될 위기에 처했다. 김상봉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는 “개정안이 예정대로 통과됐다면 선불충전금 운영 업자를 당국에 등록시켜 사전에 관리, 감독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했다.
한편 머지플러스는 17일부터 홈페이지로 신청한 가입자에게 미사용 금액의 90%를 환불해주기로 했다. 당국에 전자금융업자로 등록하고 올 4분기(10∼12월) 머지포인트를 다시 판매할 예정이다. 하지만 환불에 시간이 걸릴 것으로 예상되는 데다 머지플러스가 매각까지 검토하고 있어 혼란이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가입자들은 머지포인트와 판촉행사를 벌인 이커머스나 금융사, 프랜차이즈 회사도 책임을 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들이 검증 없이 섣불리 판촉행사를 벌여 소비자들이 머지포인트를 신뢰하게 만들었다는 얘기다. 이에 머지플러스 제휴사인 한 업체 관계자는 “머지플러스가 법적 요건을 준수하지 않아 영업을 중단할지 예견하지 못했다”고 해명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