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 소비자들이 모든 금융권의 대출상품을 한눈에 비교해 갈아탈 수 있도록 10월 출범을 목표로 추진되던 ‘대환대출 플랫폼’이 표류하고 있다. 이해관계가 엇갈린 시중은행과 인터넷전문은행, 제2금융권 등이 각자 행동에 나서면서 본래의 취지가 퇴색된 ‘반쪽짜리’ 갈아타기 플랫폼으로 전락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 시중은행, 독자 플랫폼 이어 ‘중금리 제한’ 건의
17일 금융권에 따르면 금융위원회는 대환대출 플랫폼 관련 의견을 듣기 위해 이달 중 은행권, 제2금융권, 빅테크(대형 기술기업) 등과 각각 개별 간담회를 열 방침이다. 한 달 남짓 동안 은행권과 세 차례, 나머지 업권과도 두 차례 이상 간담회를 여는 셈이다.
당국은 당초 금융결제원이 은행, 카드사, 저축은행 등 모든 금융사의 대출 정보를 한데 모아 인프라를 만들고 이를 빅테크·핀테크가 운영하는 플랫폼에 연결하는 방식을 구상했다.
하지만 빅테크 플랫폼에 종속될 것을 우려한 시중은행들은 이에 반발해 은행권의 독자적인 갈아타기 플랫폼을 구축하기로 했다.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KB, 신한, 하나, 우리, NH농협 등 5대 금융지주 회장들은 10일 은성수 금융위원장을 만나 “대환대출 플랫폼의 서비스 대상을 중금리 대출로 제한하자”고 건의했다.
대환대출 플랫폼이 활성화되면 대출 경쟁이 본격화하고, 고신용 대출자들이 더 저렴한 금리로 갈아타기를 하면서 가계대출이 더 불어날 위험이 있다는 게 은행들의 주장이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대출 총량을 관리해야 하는 은행으로선 금리 경쟁이 붙어 가계대출이 증가하는 건 곤란하다”며 “플랫폼에선 중금리 대출만 제공하는 방안을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와 달리 인터넷전문은행인 카카오뱅크와 토스뱅크는 은행권 독자 플랫폼에 참여하지 않고 토스, 뱅크샐러드 등 빅테크·핀테크 플랫폼에 들어갈 계획이다. 이미 핀테크 등의 대출 비교 서비스에 참여하는 지방은행들은 어떤 플랫폼이든 큰 상관이 없다는 입장이다.
○ 제2금융권도 눈치 보기… “소비자 뒷전” 우려도
플랫폼 출범으로 금리 경쟁이 심해질 것을 우려하는 제2금융권은 은행권과 당국의 움직임을 주시하고 있다. 카드업계 관계자는 “카드사는 중도 상환 수수료가 없는 단기 대출이 많아 플랫폼을 통한 고객 이탈이 가속화될 수 있다”며 “각 플랫폼의 수수료 등 구체적인 내용을 파악한 뒤 어디에 참여할지 결정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저축은행들도 일부만 빅테크 플랫폼 참여를 결정했으며 신협 등 상호금융은 당분간 플랫폼에 참여하지 않겠다는 뜻을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플랫폼을 둘러싼 진통이 이어지면서 정작 ‘금융 소비자의 편익 증진’이라는 본래의 취지는 뒷전이 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당국은 당초 모든 금융권의 대출상품을 한눈에 비교하고 손쉽게 갈아탈 수 있는 플랫폼을 만들어 소비자 편의성을 높이고 자연스러운 대출 금리 인하를 유도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플랫폼별로 참여하는 금융사가 제각각이 되면 소비자들이 실질적인 혜택을 보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서지용 상명대 경영학부 교수는 “각 금융사가 자사의 득실을 따지면서 플랫폼이 당초 취지에 부응하지 못할 가능성이 커졌다”며 “금융사 간 의견을 조율하고 참여에 따른 인센티브를 제공해 소비자에게 이익이 돌아갈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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