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고양시에서 카페를 운영하는 A 씨는 폐업을 고민하고 있다. 카페는 여름이 연중 최대 성수기이지만 최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방역 강화로 영업시간 등에 제약이 생겨 겨우 적자만 면하고 있다.
문제는 임대차 계약 기간이 아직 1년 이상 남아있다는 점이다. 권리금을 종전의 3분의 1 수준으로 내리고 새 임차인을 구하고 있지만 장사하겠다는 사람이 없다. 새 임차인을 구하지 않고 폐업하면 남은 계약 기간만큼 매달 700만 원씩 월세를 내야 한다. 그는 “폐업하면 대출을 바로 상환해야 하는데 남은 월세까지 감당하기는 벅차다”고 말했다.
앞으로 새 임차인을 구하지 못하고 폐업하는 자영업자의 월세 부담이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17일 국무회의를 통과한 ‘상가건물 임대차보호법’ 개정안은 코로나19 여파로 폐업하는 경우 임대차 계약을 중도 해지할 수 있도록 했다.
○ 폐업 망설이는 자영업자에 퇴로 마련
현재 상가 임차인이 새 임차인을 구하지 못한 채 계약 기간을 채우지 않고 폐업하면 상가를 비워놔도 남은 기간 월세를 모두 내야 한다. 다만 기존 계약 기간을 채우고 묵시적으로 계약을 갱신한 상태라면 월세를 내지 않고 바로 폐업할 수 있다.
이번 개정안은 계약의 종류를 구분하지 않고 코로나19 방역지침상 영업 제한을 3개월 이상 받았고, 이 때문에 매출이 줄었다는 점만 입증하면 새 임차인을 구하지 않고도 계약을 해지할 수 있도록 했다. 해지 시점은 임차인이 임대인에게 해지 통보한 날로부터 3개월 이후다.
정부가 법 개정에 나선 건 코로나19 장기화로 매출 피해가 극심한 자영업자에게 퇴로를 열어 주려는 것이다. 전국 자영업자 80만여 명의 매출 데이터를 보유한 ‘한국신용데이터’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마지막 주 매출 규모는 코로나19가 유행하기 전인 2019년 같은 기간의 44%에 불과했다. 반면 한국부동산원이 집계한 지난해 4분기(10∼12월) 임대료 수준은 1년 전보다 13.8% 내리는 데 그쳤다. 매출이 대폭 감소한 데 비해 임대료 감소폭은 크지 않아 자영업자의 실질적 부담이 커진 셈이다.
○ “임대인-임차인 분쟁 생길 수도”
상가업계에서는 정부가 임대인들에게 일방적인 희생을 강요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 상가전문 중개업체 관계자는 “대출이 많거나 월세 수입에 의존하는 생계형 임대인들은 더 힘들어질 것”이라며 “정부가 임대인과 임차인 편 가르기를 한다”고 했다. 박대원 상가정보연구소장은 “정부가 임차인과 임대인을 갑을 관계로만 보는 것 같아 아쉽다”고 했다.
개정안이 임차인에게 당장 도움이 되지만 장기적으로 임차인에게 불리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임대인들이 중도 계약 해지를 염두에 두고 임대료를 미리 높이거나 각종 특약을 임차인에게 요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엄정숙 법도종합법률사무소 변호사는 “코로나19로 인한 경제 사정의 중대한 변동이 구체적으로 어떤 것인지 명확하게 해야 한다”며 “판례가 쌓일 때까지 임대인과 임차인 간 분쟁이 발생하는 등 혼란이 불가피할 것”이라고 말했다.
법무부는 이날 임대인들의 불만을 의식해 “이번 개정안으로 임대인에게 손해가 생길 수 있는 만큼 제도를 실행하며 보완책을 검토할 것”이라고 밝혔다. 정부는 개정안을 이번주 중 국회에 제출할 예정이다. 한 여권 관계자는 “사회적 논란과 야당 반대 등을 감안할 때 이달 임시국회에서 밀어붙이긴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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