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국 “대출 잔액 여유” 진화에도 실수요자들 패닉… 상담 2배 증가
규제 이후 ‘마통’ 개설 1.5배 껑충… “대출총량 관리로는 역부족” 지적
《“언제 대출이 막힐지 몰라 아직 이사 갈 집도 못 정했는데 신용대출부터 받았어요. 다른 은행에도 가서 더 빌릴 수 있는지 알아보려고요.” 25일 직장인 조모 씨(35)는 아내와 함께 서울 중구의 A은행을 찾아 부부 연봉의 1.5배 정도를 대출 받았다. 그는 “금융당국이 가계대출을 계속 조인다고 하니 불안해서 내년 이사 갈 때 쓸 돈을 미리 마련했다”며 “전셋집이나 내 집 마련을 계획한 젊은 부부들 사이에선 대출을 못 받을 수 있다는 생각이 팽배하다”고 말했다.》
금융당국의 전방위 ‘대출 조이기’에 은행권 대출 중단 사태가 벌어지면서 실수요자들을 중심으로 ‘패닉 대출’이 이어지고 있다. 당국은 확산 가능성이 낮다고 진화에 나섰지만 미리 대출을 당겨 받으려는 이들이 늘면서 마이너스통장 신규 개설도 급증하고 있다.
○ 영업점 밖까지 대출 상담 대기 줄
이날 낮 12시경 종로구 B은행 지점에는 대출 상담을 받으러 온 고객이 몰리면서 영업점 바깥으로까지 대기 줄이 이어졌다. 은행 직원이 “1시간 정도 기다려야 한다”며 양해를 구했지만 줄은 사라지지 않았다. 이 직원은 “이번 주부터 대출 상담 고객이 2배가량 늘었다”고 했다.
점심시간에 짬을 내 은행을 찾은 최모 씨(31)는 “주거래 은행이 전세자금대출을 중단한다고 해서 다른 은행들을 돌아다니며 알아보고 있다”면서 “11월에 오피스텔로 이사해야 하는데 돈을 어떻게 마련해야 할지 걱정”이라고 했다. C은행의 영업점 직원은 “특히 신용대출 한도를 연소득 이내로 줄인다고 하니 20, 30대 직장인들의 문의가 많다”고 전했다.
앞서 금융당국은 NH농협은행, 우리은행 등 일부 은행과 지역 농·축협의 대출 중단에 실수요자들의 불만이 거세지자 “대다수 금융사는 가계대출 취급 목표치까지 아직 여유가 많이 남아 있다”며 진화에 나섰다. 하지만 예고 없는 대출 중단에 놀란 사람들이 일단 대출을 받아두기 위해 은행을 찾고 있는 모습이다.
○ “마통 미리 만들자” 엿새간 1만2000개 개설
여기에 신용대출 한도가 줄어들기 전에 미리 대출을 받아두려는 수요까지 몰리면서 하루에 개설되는 마이너스통장은 당국의 규제 강화 이전보다 크게 늘었다. KB국민, 신한, 하나, 우리, NH농협 등 5대 시중은행에서 24일 하루에 개설된 마이너스통장은 2089개였다. 이달 2일(1374개)의 1.5배 수준이다.
신용대출 한도 축소 방침이 알려진 17일부터 24일까지 엿새간 5개 은행에서 만들어진 마이너스통장은 총 1만1895개로 이달 첫째 주(2∼6일) 6363개의 2배 가까이로 불어났다. 금융당국은 은행권에 이어 저축은행과 카드사, 캐피털사 등 제2금융권에도 신용대출 한도를 대출자의 연소득 이내로 제한하라고 주문해 이 같은 움직임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전문가들은 지금과 같은 가계대출 총량 관리는 미봉책에 불과하다고 지적한다. 전성인 홍익대 경제학부 교수는 “이미 대출받은 사람은 영향이 없고 이사를 앞두거나 자금 사정이 급한 사람에게만 대출을 틀어막는 원시적인 정책”이라며 “근본 원인인 부동산 시장을 바로잡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안동현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강압적으로 총량을 줄이는 지금의 방식보다 기준금리를 인상하는 게 더 효과적”이라며 “금융당국이 금융권과 협의해 일종의 모범 규준을 만들어 운영하는 방법도 생각해 볼 수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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