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에 다니는 김모 씨(33)는 갑작스런 ‘대출 보릿고개’를 겪고 있다. 1년 전 A은행에서 1억 원 한도로 만든 ‘마이너스통장’의 한도가 갑자기 2000만 원이나 줄었기 때문이다. 은행 측은 연장을 요구하는 김 씨에게 “당국 규제로 대출 한도를 연소득 이내로 줄여야 한다”고 설명했다. 김 씨는 “당장 전세보증금을 빼줘야 하는데 마이너스통장 한도까지 줄어 속이 타들어간다”며 “남편이 다른 은행들을 알아보기로 했다”고 말했다.
KB국민 신한 우리 하나 NH농협 등 주요 시중은행들이 모두 신용대출 한도를 연소득 이내로 줄인다. 금융당국의 주도로 일부 은행에서 시작된 대출 제한 조치가 시중은행과 제2금융권까지 전방위로 확산되고 있다. 지난달 주택담보대출 금리도 2년 2개월 만에 최고치로 오른 데다 한국은행이 기준금리까지 올려 목돈이 필요한 사람들은 더 높은 이자를 물어가며 ‘대출 보릿고개’를 넘어야 할 판이다.
27일 금융권에 따르면 우리은행은 9월 중 신용대출 한도를 연소득 이내로 제한한다. 이 은행 관계자는 “정확한 시기나 상품은 검토 중”이라며 “이미 신용대출을 받았다가 증액을 하는 경우에도 줄어든 한도가 적용된다. 재약정의 경우 제외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신한은행 역시 다음달부터 이 같은 대출 제한 조치를 할 계획이다. KB국민은행도 이런 방향을 내부 검토 중이다. 이미 NH농협은행과 하나은행은 신용대출 한도를 줄였다. KB국민, 하나 등은 신용대출 증액, 재약정에 대해서도 신규에 준해서 한도를 줄인다.
인터넷전문은행도 예외가 아니다. 카카오뱅크는 다음달 중 연봉 수준으로 신용대출 한도를 축소하기로 했다. 케이뱅크도 신용대출 한도 축소를 검토 중이다. 앞서 NH농협은 11월말까지 주택담보대출을 중단했고 우리은행은 9월까지 전세자금 대출을 하지 않기로 했다. 지역농협과 축협은 조합원 자격이 없는 사람에겐 신규 주택담보대출, 전세자금대출을 해주지 않는다.
대출을 받기도 어렵지만 빌려도 고민이 크다. 금리가 오르기 있기 때문이다. 이날 한국은행에 따르면 7월 은행권의 전체 가계대출(신규 취급액 기준) 금리는 연 2.99%로 전달보다 0.07%포인트 상승했다. 1년 9개월 만에 가장 높다. 특히 주택담보대출 금리가 2년 2개월 만에 최고치인 2.81%로 한 달 새 0.07%포인트 올랐다. 일반 신용대출 금리도 전달보다 0.14%포인트 오른 3.89%로 4%에 육박하고 있다. 여기에다 한국은행이 26일 기준금리를 0.75%포인트로 올리고 연내 추가 인상을 시사하면서 빚을 내 투자한 사람들의 이자 상환 부담은 더욱 커질 것으로 보인다.
금융당국은 취약계층 지원을 위해 9월 끝나는 소상공인에 대한 대출 만기 연장과 이자 상환 유예 조치를 연장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지만 가계대출 규제 고삐는 더 조일 것으로 예상된다. 고승범 금융위원장 후보자는 이날 열린 국회 정무위원회 인사청문회에서 “필요하면 (가계부채) 추가대책도 마련해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연말까지 금리 인상 가능성에 대해서는 사견을 전제로 “한 번의 인상으로 되지는 않을 것 같다”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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