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민 소비여력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집값이 정작 물가지표엔 배제된 것으로 나타났다. 집값상승률을 반영해 물가가 최대 2% 가까이 오르면 이를 관리하는 한국은행과 기획재정부의 보다 적극적인 책임감독을 끌어낼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집값상승률 연일 역대최고치…물가엔 임대료만 반영돼 ‘괴리’ 뚜렷
12일 국회와 부동산업계 관계자 등에 따르면 서영수 키움증원 연구원은 올해 초 ‘가계부채 완화를 위한 주택금융 정책방향’이란 주제발표 보고서를 통해 “정부의 부동산 실책 중 큰 하나는 소비자물가지수(물가지수, CPI)에 집값을 전혀 반영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라고 지적했다.
통계청이 매달 발표하는 물가지수는 일반 국민들의 살림살이에 가장 크게 영향을 미치는 품목과 서비스의 가치를 중요도에 따라 평균한 종합적인 가격수준이다.
특히 기획재정부는 물가통계 추이를 보고 수급을 조절하며, 한국은행은 통화량 조절을 통해 물가를 관리할 책임을 진다.
만약 물가관리가 실패해 국민의 소비여력에 비해 재화가치가 높아지는 인플레이션이 발생한다면 그만큼 ‘삶의 질’이 떨어질 뿐만 아니라 재화생산, 고용, 소비로 이어지는 선순환 경제고리가 끊어지기 때문이다.
서영수 연구원은 “미국의 중앙은행격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는 주택을 재화로 인정해 물가지수에 20%의 가중치를 적용해 반영하고 있지만, 우리는 자산으로 보고 물가에 전혀 반영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4% 물가 인식했다면 기준금리·가계대출 관리 조기단행 했을 것”
이런 물가지수 관리로 발생된 문제점은 다양하다. 당장 국민들의 소비여력 파악이 불가능하다. 집값 외에 물가지수에서 반영하는 전세와 월세 등 주거비를 예로 들면, 전세금이 4억원이고 이에 대한 은행 금리(일종의 기회비용)가 당시 연 2%였다면 연간 비용 800만원, 매월 67만원의 비용이 발생하는 것으로 계산해서 지수화시킨다.
이렇게 산출된 전세와 월세는 각 4.9%, 4.5% 합해서 총 9.4%의 비중을 적용할 수 있다. 소비자의 월간 소비부담 중 주거비 비중이 약 10% 수준에서 반영되는 셈이다.
하지만 여기엔 과중한 집값으로 국민들이 부담하는 금융부담 등은 전혀 반영돼 있지 않다. 부동산업계 관계자는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음) 주택대출자라면 이미 소비여력이 마이너스 수준”이라며 “집값을 반영한다면 주택구입을 희망하는 실수요자나, 대출을 통해 주택을 산 소비자 모두 현재로선 물가의 최우선 비중을 차지할 것”이라고 전했다.
서영수 연구원도 “미국과 같이 물가지수에 주택가격 상승률을 반영할 경우 한국의 물가지수는 평균 1~2%p 높아진다”고 지적했다.
물가지수에 집값상승분을 애써 외면하며 기획재정부와 한은이 ‘집값관리’란 중책을 등한시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기획재정부 산하의 금융당국이 그동안 부동산대출에서 발생한 가계대출 관리를 등한시했던 것도, ‘집값급등’을 ‘물가관리’와 별개로 판단하고 우선과제인 ‘경기부양’과 세수확보에만 신경 써온 재정당국의 시각이 담겼다는 비판이다.
2%대 물가에 지난 8월 1차례 기준금리 인상을 단행한 한은도 만약 4%대 물가상승률을 인지했다면 기준금리 인상을 조기 단행해 시중의 유동성을 흡수했을 것으로 보고 있다.
국회 관계자는 “8월 소비자물가가 2.6%를 기록하며 이미 5개월 연속 2% 상승폭을 기록했는데, 집값으로 3.6~4.6%의 물가가 실제값이라면 미국의 긴축재정 여부와 관계없이 재정당국과 한은은 발등에 불이 떨어진 것”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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