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원생 박모 씨(28)는 지난해 2월 증권사에서 대출을 받아 주식 투자를 시작했다. 박 씨가 증권사에서 빌린 신용거래융자는 벌써 4000만 원에 이른다. 13일에도 400만 원을 빌려 코스닥 ‘동전주’에 투자했다. 박 씨는 “증권사 대출 금리가 은행보다 높지만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며 “대출이 늘어도 크게 ‘한방’ 수익을 올려 갚으면 된다”고 말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이후 20대 청년들이 주식 투자를 위해 증권사에서 빌린 돈이 4배 가까이 급증한 것으로 나타났다. 60대의 ‘주식 빚투’(빚내서 투자)도 180% 불어났다. 한국은행이 기준금리 인상에 본격 시동을 건데 이어 미국의 긴축 움직임이 본격화되면 상환 능력이 떨어지는 20대와 은퇴족들의 빚 부담이 크게 늘어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 20대의 증권사 ‘빚투’ 288% 급증
13일 윤두현 국민의힘 의원이 금융감독원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증권사 6곳(미래에셋, 한국투자, NH투자, 삼성, KB, 키움)의 신용거래융자 잔액은 지난달 20일 현재 17조8536억 원으로 집계됐다. 코로나19 확산 전인 2019년 말(6조6633억 원)에 비해 128% 늘었다.
신용융자 규모 자체는 50대(6조1571억 원)와 40대(5조4818억 원) 순으로 많았지만 ‘빚투’ 증가 속도는 20대가 가장 가팔랐다. 6개 증권사에서 20대가 빌린 신용융자는 4591억 원으로 2019년 말(1159억 원)보다 288% 폭증했다. 이어 60대의 신용융자(2조4031억 원)가 180% 급증했다. 30대(178%), 40대(159%) 증가율을 크게 웃돈다.
신용융자를 받은 20대 투자자는 같은 기간 5548명에서 1만2894명으로 132% 급증했다. 60대 역시 1만4935명에서 2만3276명으로 56% 늘었다.
20대와 60대의 증가세가 두드러지는 것은 코로나19 사태 이후 이어진 증시 활황세를 타고 이 연령층에서 주식시장에 새로 유입된 ‘주린이’(주식+어린이)가 많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이효섭 자본시장연구원 금융산업실장은 “20대는 주식 투자를 게임처럼 인식해 과감하게 빚을 내 공격적으로 투자하는 성향이 짙다”며 “과거 예·적금 등 안전자산에 투자하던 60대도 새로 유입되면서 빚을 냈다”고 했다.
● “금리 인상기 뇌관 될 수도”
신용융자는 은행 대출과 달리 별도의 심사 없이 간편하게 돈을 빌릴 수 있어 20대와 60대의 ‘빚투’ 창구로 이용된다는 분석도 나온다. 은행 신용대출을 한도까지 끌어 쓴 뒤 증권사 신용융자를 받는 사례가 적지 않다.
소득이 상대적으로 적은 20대와 은퇴자금으로 생활하는 60대의 빚투가 금리 인상기의 ‘뇌관’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많다. 증권사 대출은 은행보다 금리가 높고 상환 기한도 짧아 금리가 조금만 올라도 이자 부담이 커지기 쉽기 때문이다. 증권사 대출 금리 산정의 기준이 되는 양도성예금증서(CD) 금리는 13일 현재 1.00%로 한은의 기준금리 인상 이후 0.23%포인트 뛰었다.
20대 투자자들이 신용융자를 갚지 못해 증권사가 주식을 강제 처분한 반대매매 규모는 1월 25억 원대에서 지난달 39억 원대로 급증했다. 전성인 홍익대 경제학부 교수는 “연내 추가 기준금리 인상이 예상돼 소득 수준이 낮은 청년과 고령층의 이자 부담이 더 커질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13일 대신증권에 이어 15일 NH투자증권이 신용융자 신규 거래를 중단하는 등 대출을 중단하는 증권사도 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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