움직일 때 ‘부르릉’ 소리를 내지 않는 차가 늘어나고 있습니다. 전기차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대도시의 큰 빌딩이나 신축 아파트 주차장에 전기차 충전기가 줄지어 서 있는 모습도 이제는 그다지 새로운 풍경이 아닙니다.
전기차 보급에 가속도가 붙게 된 일등공신은 각종 지원 제도입니다. 전기차를 새로 사면 지자체와 차량 종류별로 다르지만 최대 1200만 원까지 보조금을 받을 수 있습니다. 이 덕분에 해외 유명 수입브랜드 고급 전기차가 국산 내연기관 자동차보다 싸지는 현상까지 생겨나기도 했습니다. 그 외에도 전기차를 사면 지역에 따라 취득세를 비롯한 각종 세금 감면, 구매비용 저금리 대출, 통행료 주차료 감면, 충전비용 할인 등의 혜택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같은 각종 혜택들이 곧 사라질 듯한 움직임이 보이고 있습니다. 우선 충전요금부터 오릅니다. 전기차 보급을 위해 시행되던 급속충전기 이용요금은 2021년 7월 11일까지 기본요금 50%, 전력량요금 30%의 할인이 적용됐습니다. 12일을 기점으로 할인율은 기본요금 25%, 전력양요금 10%로 줄어들었고 내년 7월이 되면 이 할인혜택은 완전히 폐지됩니다. 전기차는 아직 전체 자동차 대수에 비해 미미한 수준인데 왜 혜택은 이렇게 빨리 없어질까요. 물론 가장 큰 이유는 한전의 누적된 적자 때문이겠지만 그 이유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이번 ‘날飛’에서는 전기차 혜택 축소의 배경과 환경적 측면에서의 당위성을 살펴보겠습니다.
●전기차, 전기 얼마나 쓰나
우선 전기차가 전기를 얼마나 쓰는지부터 알아보겠습니다. 국내에서 판매하는 전기차 중 현대 아이오닉5 롱레인지 모델은 배터리 용량이 72.6kWh, KIA EV6 롱레인지 차량은 77.4kWh입니다. 이 배터리를 완전히 충전하면 약 420km를 달릴 수 있다고 차량 제원표에 나와 있습니다. 서울에서 부산 정도 가는 거리입니다.
70kWh라는 배터리 용량을 가정에서 쓰는 전력량과 비교해보겠습니다. 한국전력 빅데이터센터 자료를 보면 2020년 8월 우리나라 한 가구당 월 전기사용량이 265.50kWh였습니다. 그러니까 가장 최신 기술이 적용된 전기차조차 한 가정이 가장 전기를 많이 쓰는 기간에 1주일 넘게 쓸 수 있는 양을 서울에서 부산 한 번 가는데 태워버린다는 의미입니다.
전기차 보급 속도도 갈수록 빨라지고 있습니다. 2016년 전국에 1만 대 수준이던 전기차 대수는 올해 8월 말 현재 19만 대로 5년 만에 17.6배로 증가했습니다. 정부는 당초 2030년까지 전기차를 300만 대로 늘리겠다는 계획을 세웠습니다. 지금의 증가세가 유지되면 목표 달성은 무난해 보이고 얼마나 빨리 ‘전기차 300만 대 시대’가 되느냐가 관건이 될 듯합니다.
●‘탄소 제로’는 아니다
문제는 이처럼 늘어나는 전기차가 ‘탄소 제로’ 차는 아니라는 겁니다. 2019년 우리나라 총 발전량은 563TWh였습니다. 이 중 석탄발전이 40%, LNG발전이 26%였습니다. 전체 발전량의 절반 이상이 온실가스를 뿜어내는 발전이라는 의미입니다. 내연기관은 가솔린 디젤 등을 선택할 수 있지만 전기는 발전 방식을 선택할 수 없습니다.
그러니까 모든 전기차는 달릴 때 소비하는 전기에너지의 약 56% 정도 온실가스 배출 지분이 있다는 의미입니다. 게다가 사용하는 전기에너지량도 한 가정이 쓰는 양과 비슷합니다. 이쯤 되면 온실가스 배출이 적은 수준은 아닐 수도 있습니다. 연구 결과도 있습니다. 한국환경정책평가연구원이 2017년 발표한 ‘전기자동차 보급에 따른 지역간 오염물질 및 온실가스 배출 영향 분석’ 연구보고서를 보면 1세대 전기자동차의 경우 일부 전기차는 같은 모델의 휘발유 차량보다 더 온실가스를 많이 배출한다고 추정한 내용도 있습니다.
●싸니까 더 많이 탄다
물론 전기차의 효율은 내연기관차보다 우수합니다. 환경 관리 측면에서도 내연기관보다 전기차가 훨씬 유리합니다. 발전소 차원에서만 대책을 세우면 되니까요. 문제는 전기차의 운행거리가 내연기관차보다 길다보니 이 같은 장점이 상쇄되고 있다는 겁니다. 2019년 기준 승용차 기준으로 전기차보다 내연기관차 주행거리가 더 긴 차종은 LPG차뿐입니다. 승용차 중 LPG 차량은 택시 비중이 높다는 점을 감안해야 합니다.
에너지 관련 업계와 기관에서는 전기차의 주행거리가 긴 원인으로 낮은 유지비를 꼽습니다. 내연기관차에 비해 연료비(충전비용)도 싼데 통행료나 주차비 할인 혜택까지 받습니다. 친환경차라지만 많이 타면 전기도 더 쓰고 그만큼 온실가스 배출에도 빚을 지게 됩니다. 타이어나 브레이크 등에서 나오는 미세먼지는 내연기관차와 다를 게 없습니다. 주행거리를 내연기관차 수준으로 떨어뜨릴 수 있다면 친환경차의 진짜 취지는 더욱 부각될 겁니다. 가장 일차적이고 쉬운 조치는 바로 ‘혜택 축소’입니다.
●친환경 발전은 비싼 발전
전기차 요금이 오를 수밖에 없는 이유는 또 있습니다. 온실가스 배출이 적은 친환경 발전 비중을 늘리려는 정부 정책 때문입니다. 정부는 제9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서 2034년까지 신재생에너지 비중을 40.3%로 늘리겠다고 밝혔습니다. 2020년 기준 20.1GW 수준인 신재생에너지 발전설비를 2034년에는 77.8GW까지 늘리겠다는 계획입니다.
친환경 발전은 분명 가야 할 방향입니다. 문제는 효율입니다. 정부가 밝힌 40.3%(77.8GW) 신재생에너지 비중은 신재생에너지 발전시설이 낼 수 있는 이론상의 최대 발전용량입니다. 하지만 신재생에너지는 사람이 통제할 수 없는 변수가 너무 많다는 단점이 있습니다. 대표적 신재생에너지인 태양광 발전의 경우 시간과 날씨에 따라 발전 효율이 크게 달라집니다. 실제 발전용량(실효용량, 피크기여도 반영)을 기준으로 보면 신재생에너지 비중은 8.6%(10.8GW)로 크게 줄어듭니다. 설비용량과 실효용량이 대부분 일치하는 다른 발전방식과 차이가 큽니다.
실제 생산할 수 있는 전력량이 설비량에 비해 낮다 보니, LNG 발전은 2034년에 2020년보다 오히려 비중이 늘어납니다. 발전 단가가 다른 발전방식에 비해 비싼 방식입니다. 친환경 발전의 발전 단가가 계속해서 떨어지고 있다고는 하지만 이처럼 비싼 수입 연료에 의존해야 하는 발전 비중이 높게 유지되는 한 전기요금 인상 요인은 계속 존재할 수밖에 없습니다.
●인프라 모자라 비쌀 때 충전
미국 등 넓은 땅을 가진 나라와 다른 우리나라의 자동차 환경도 충전요금 인상 요인으로 꼽힙니다. 전용 주차장이 있는 가정이 많고 여기에 충전기를 설치하면 전기를 덜 쓰는 심야시간대 주로 충전할 수 있는 미국과 달리 우리나라는 아파트 같은 공동주택 비중이 높고, 충전기 보급도 아직 부족한 수준이기 때문에 충전소를 이용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충전소는 대부분 도심 큰 빌딩 주차장이나 전용 충전시설 등에 있고, 자연히 전기를 많이 쓰는, 즉 전기요금이 비싼 낮 시간대 충전이 많을 수밖에 없습니다.
전기차의 주행거리는 짧고, 충전소는 없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지금은 서울-부산을 한 번에 갈 수 있고 충전소는 많아지고 충전시간은 짧아졌습니다. 무엇보다 세계 유수의 자동차업체들이 내연기관 생산 중단을 선언할 만큼 대세는 이미 전기차로 흘러가고 있습니다. 전기차 혜택이 줄어드는 것은 어찌 보면 자연스러운 수순입니다.
받던 혜택이 줄어들면 아깝고, 손해 보는 기분이 들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환경을 생각하는 행동은 언제나 조금 비용이 들고 조금 번거로웠습니다. 비싼 돈을 주고 친환경 상품을 사고, 분리수거를 하고, 개인 컵으로 커피를 마시고. 전기차는 조금 불편하지만 내연기관차보다 더 새롭고, 더 환경을 생각하는 차임이 분명합니다. ‘싼 비용’으로 채웠던 전기차의 매력을 이제는 ‘자부심’으로 채워야 할 때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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