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요금이 약 8년 만에 오른다. 정부는 국제유가 상승세가 이어지자 올해 4분기(10∼12월)에 전기요금을 올리기로 했다. 유가 인상이 계속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해 추가 인상 가능성도 점쳐진다. 공공요금 인상에 따른 물가 상승 압력도 커질 것으로 보인다.
23일 산업통상자원부와 한국전력공사에 따르면 정부는 4분기 전기요금 연료비 조정단가를 직전 분기 대비 kWh(킬로와트시)당 3원 올리는 방안을 승인했다. 이에 따라 다음 달부터 주택용 전기를 350kWh(도시가구 월평균 사용량)씩 쓰는 4인 가구의 경우 매달 최대 1050원을 더 내야 한다. 전기요금이 오른 것은 2013년 11월 이후 약 8년 만이다.
연료비 조정단가는 석탄, 석유, 액화천연가스(LNG) 등 연료 가격에 따라 요금을 결정하는 ‘연료비 연동제’로 정해진다. 한전에 따르면 인상 요인을 감안하면 4분기엔 전분기보다 kWh당 13.8원의 요금 인상 요인이 발생했다. 하지만 정부는 연동제를 도입하며 정한 상한 폭(kWh당 3원)에 따라 3원만 올리기로 했다.
정부가 연료비 연동제를 처음 적용한 올 1분기(1∼3월)에는 국제유가가 하락해 kWh당 전기요금을 지난해보다 3원 내렸다. 2, 3분기에는 국제유가 급등으로 전기요금 인상 요인이 발생했지만 정부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장기화로 인한 서민 부담과 물가 상승을 고려해 요금 인상을 유보했다.
하지만 한전의 경영실적이 악화하자 결국 전기요금 인상을 단행했다. 산업부 관계자는 “2, 3분기에는 물가 상승 우려가 강조돼 전기요금을 동결했지만 이번에는 유가가 계속 올라 한전의 부담이 커진 점이 우선순위로 고려됐다”고 했다. 최근 기획재정부가 국회에 제출한 2021∼2025년 공공기관 중장기 재무관리계획에 따르면 올해 한전의 당기순손실은 3조2677억 원으로 추산된다.
정부가 이번까지 동결하면 연료비 연동제가 유명무실화돼 신뢰를 잃을 수 있다는 점도 요금 인상 결정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풀이된다. 전기요금을 올려 에너지 절약을 유도하면 정부의 핵심 정책인 탄소중립 달성에 도움이 된다는 의견도 관계부처 협의 과정에서 거론된 것으로 알려졌다.
전기요금 인상이 상승세를 타고 있는 물가를 자극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기재부에 따르면 4분기 전기요금 인상이 올해 물가상승률에 미치는 영향은 0.0075%포인트다. 기재부 관계자는 “이번 전기요금 인상 자체가 물가상승률에 미치는 효과는 미미한 수준”이라며 “그 대신 10월 가스요금을 동결하기로 결정해 물가 상승 압력을 최대한 낮출 수 있도록 조치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국제유가가 계속 오를 수 있다는 전망이 우세해 전기요금이 추가 인상될 것이란 관측이 제기된다. 한전이 적자를 만회하려면 추가 인상이 불가피하다는 분석도 있다. 이날 유가증권시장에서 한전 주가는 1.22% 내린 2만4200원에 마감됐다. 손양훈 인천대 경제학과 교수는 “여러 분야에서 전기가 사용돼 전기요금 인상은 물가 전반을 끌어올릴 수 있다”고 했다. 최근 LNG 가격이 급등해 정부가 15개월째 동결한 도시가스 요금이 11월에는 오를 가능성이 있다.
산업계는 전기요금 인상 결정에 일제히 반발했다. 중소기업중앙회는 이날 입장문을 내고 “제조원가에서 전기료가 차지하는 비중이 15%에 달하는 뿌리 중소기업의 어려움은 더욱 가중되고 현장의 충격은 불가피할 것”이라고 밝혔다. 소상공인연합회도 “소상공인들은 물가 상승분을 소비자가격에 반영하기도 힘든 처지여서 이번 인상안은 더 큰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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