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급망 불안 쇼크’ 산업계 덮쳤다…글로벌 기업 생산 차질 현실화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10월 3일 20시 53분


뉴시스
세계 산업계에 덮친 ‘공급망 불안 쇼크’가 한국 기업들에게도 악영향을 미치기 시작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에 따른 불확실성이 여전한 상황에서 동남아시아 코로나19 봉쇄조치로 인한 부품 및 완제품 생산 차질, 미중 무역갈등에 따른 보호무역주의 확산 등이 국내 기업들의 위협 요소가 되고 있다. 동시다발적으로 터져 나오는 불안 변수가 올 하반기(7~12월) 산업계는 물론 한국 경제 전체에 불안 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현대자동차와 기아는 차량용 반도체 공급 부족 등으로 9월 판매실적이 전년 동기 대비 14~22% 줄었다. 중국 톈진에 진출한 대기업 A사는 현지 지방정부의 예고에 따른 부분 정전 여파로 자체 비상 발전기 가동에 나섰다. 베트남에 진출한 국내 대기업들은 부품 조달 차질로 공장 가동률이 떨어져 미국, 유럽 등에 공급하는 제품 일부를 일정에 맞춰 생산하지 못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중국 전력난은 원자재 및 필수부품 가격 인상을 초래하며 전 세계 공급망에 위협요인이 되고 있다. 이는 세계 경제의 코로나19 회복세에도 악영향을 끼칠 것”이라고 보도했다.

안기현 한국반도체산업협회 전무는 “코로나19 재확산, 원자재 가격 상승, 이상기후에 중국 전력난까지 겹치면서 글로벌 공급망을 흔드는 변수들이 이어지고 있다. 가격 경쟁력과 효율성이 우선시되던 기존 공급망 정책의 재검토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중국發’ 전력난에 글로벌 기업 생산 차질 현실화
뉴시스
글로벌 산업 공급망을 뒤흔들고 있는 최대 불안요소은 ‘세계의 공장’ 중국 전역을 뒤덮은 전력난이다.

중국 전력난은 호주와의 외교갈등으로 인한 석탄 수입 차질, 엄격한 탄소배출 억제책을 담은 중국 정부의 탄소중립 정책 추진이 맞물리면서 시작됐다. 중국은 석탄을 주원료로 하는 화력발전 비율이 전체 발전량의 70% 수준이라 석탄 공급이 전력 상황을 좌우한다. 유럽 가스업계 단체인 가스인프라유럽(GIE)에 따르면 유럽의 천연가스 저장능력 대비 저장비율은 75%로 예년대비 16% 감소하는 등 중국 전력난에서 시작된 글로벌 에너지난과 가격 인상 현실화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재계 관계자는 “글로벌 시장을 무대로 하는 국내 기업들은 코로나19 사태 이후 기존 공급망 시스템을 위협받는 상황에 상시적으로 시달리고 있다. 민관이 얽히고설킨 공급망 문제 해결을 위해 머리를 맞대야 한다”고 말했다.

●“중국 전력난 국내 기업 영향 현실로”

현지에 진출한 한국 기업들은 영향권 내에 있다. 국내 주요그룹 계열사인 B사는 지난달 말 중국 정부로부터 “전력 배급제 시행으로 일부 지역에서 정전이 발생할 수 있다”는 통보를 받은 뒤 전력 중단이 현실화되면 피해가 상대적으로 적은 조립 공정부터 가동을 멈추는 비상 매뉴얼을 마련했다. 포스코, 오리온은 각각 장쑤성 스테인리스 공장과 랴오닝성 제품 공장 가동을 일시 중단하기도 했다.

일본 니혼게이자이신문에 따르면 중국 남부 광둥성에서는 1일부터 시작된 국경절 연휴과 관련한 네온사인 점등을 금지시켰고 이달 중순부터 오전 11~12시, 오후 3~5시 피크타임대에 산업용 전략요금을 최대 25% 올리기로 했다.

재계 관계자는 “장쑤성, 저장성, 광둥성 등 제조업이 밀집한 지역에서 강도 높은 전력제한 조치가 나오고 있어 중국 내 생산기지를 마련한 한국 기업 피해가 클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최악의 경우 일시적 셧다운 만으로 수백억 원의 손실이 발생할 수 있는 삼성전자·SK하이닉스 반도체 공장 등의 피해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전 세계 다양한 산업군에 크고 작은 부품을 공급하는 중국 내 공장들이 전력 부족 사태를 이기지 못한다면 언제든 글로벌 공급망 대란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동남아시아의 코로나19 봉쇄, 원유 등 원자재 가격 오름세에 따른 원가 상승 압박, 이상기후로 인한 물류 차질 등도 불안을 키우는 변수다.

● “원자재 내재화-공급망 재편 나서야”

국내 기업들의 피해는 현실화되고 있다. 차량용 반도체 공급 부족의 직격탄을 맞은 국내 완성차 업체들이 대표적이다. 현대자동차는 9월 국내 및 해외시장에서 28만1196대를 팔았다고 3일 밝혔다.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2.3% 줄었다. 현대차 월간 판매량 30만 대 선이 무너진 건 코로나19 로 소비가 위축됐던 지난해 5월 이후 처음이다. 기아도 국내외 판매량이 22만3593대로 전년 동기 대비 14.1% 줄었고 한국GM은 같은 기간에 66.1% 감소한 1만3750대를 판매하는 데 그쳤다.

문제는 이 같은 생산 차질을 단기간 내 극복할 만한 뚜렷한 해법이 없다는 점이다. 자동차업계 관계자는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등 부품 공장이 위치한 지역들의 코로나19 확산세가 꺾이지 않으면서 공장 가동률의 회복이 예상보다 더디게 진행되고 있다”고 했다. 최근까지는 앞서 생산한 재고를 소진하며 버텨왔으나, 이제는 부품 부족이 곧장 판매량 악화로 이어지고 있다는 뜻이다. 삼성전자 등 동남아시아에 진출한 국내 전자업체들도 부품 수급난에 따른 어려움이 가중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재계에서는 기존 공급망 시스템을 위협하는 ‘변수’들이 이어지고 있어 기업들이 서둘러 대책 마련에 나서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꺼번에 터져 나오고 있는 공급망 불안 변수들은 각각 따로 벌어지는 일들이 아니라 유기적으로 연결돼 국내 기업들의 어려움을 가중시시키고 있다. 따라서 개별 기업 차원의 대응에 의존할 게 아니라 정부가 글로벌 공급망 불안 문제에 대응할 중장기 전략 마련에 나서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조경엽 한국경제연구원 경제연구실장은 “전 세계적으로 분업화된 생산구조 및 공급망 방정식이 급변하고 있다. 필수 부품 및 원자재의 내재화 노력과 더불어 공급망 재편에 나서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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