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업장 없어도 매출액 기준 넘으면
초과이익의 25% 세금으로 내야
넷플릭스 등 국내 과세 늘어날듯
구글, 페이스북, 넷플릭스 등 매출액과 영업이익률이 일정 수준을 넘는 다국적 기업은 2023년부터 초과이익의 25%에 대한 세금을 매출이 발생한 국가들에 나눠 내야 한다. 한국에서 매출을 올리면서도 사업장이 없다는 이유로 세금을 제대로 내지 않던 글로벌 기업에 정부가 세금을 더 물릴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국내 기업 중에는 삼성전자가 마찬가지로 매출을 낸 해외 국가에 세금을 내게 된다.
8일(현지 시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와 주요 20개국(G20)의 포괄적 이행체계(IF)는 제13차 총회를 열고 이러한 내용을 담은 글로벌 법인세 최종 합의문을 발표했다. 합의안은 이달 30일부터 이탈리아 로마에서 열리는 G20 정상회의에서 채택될 예정이다.
우선 다국적 기업이 고정 사업장 없이 매출을 올리는 국가들에 나눠주는 세금의 비율은 25%로 확정됐다. 적용 대상은 연결매출액이 200억 유로(약 27조 원) 이상이면서 영업이익률이 10% 이상인 다국적 기업이다. 대상 기업은 앞으로 글로벌 이익 중 통상이익(10%)을 넘는 초과이익의 25%에 대한 세금을 매출 발생국에 나눠서 내야 한다. 특정 기업의 매출이 100만 유로 이상인 국가만 세금을 나눠 받을 수 있다. 다만 국내총생산(GDP) 규모가 400억 유로 이하인 나라는 국내 매출이 25만 유로만 넘어도 세금을 받을 수 있다.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과세권 배분 비율을 놓고 20∼30% 사이에서 논의가 이뤄졌는데 한국을 포함한 소규모 선진국이 20%를 주장해 25%에서 절충됐다”고 설명했다.
국내기업, 해외 세금만큼 법인세 공제
2023년부터 글로벌 법인세
글로벌 법인세 논의는 당초 글로벌 정보통신기술(ICT) 기업을 겨냥해 ‘디지털세’라는 이름으로 출발했지만 논의 과정에서 금융업과 채굴업을 제외한 대부분의 업종으로 대상이 확대됐다.
이번 합의로 한국에서 큰돈을 벌고도 제대로 세금을 내지 않던 구글, 넷플릭스 등 글로벌 기업들에 대해 정부가 세금을 추가로 걷을 수 있게 됐다. 기본소득당 용혜인 의원이 국세청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아마존, 페이스북, 애플 등 19개 글로벌 기업이 지난해 국내에서 낸 법인세는 1539억 원에 불과했다. 이는 국내 빅테크(대형 기술 기업) 네이버 한 곳이 지난해 국내에서 낸 법인세의 36%가량이다.
국내 기업 가운데는 삼성전자가 글로벌 법인세를 적용받을 것으로 보인다. 삼성전자의 지난해 매출은 237조 원, 영업이익률 15.1%였다. 이를 토대로 추산하면 지난해 매출의 10%(약 23조7000억 원)를 초과한 이익은 12조3132억 원이다. 초과이익의 25%인 3조783억 원에 대한 과세권을 한국을 포함한 국가들이 나눠 갖는다. SK하이닉스도 연매출 기준을 충족하지만 연도별 영업이익률 변동 폭이 커 적용 여부는 불확실하다. 참여국들은 7년간 이대로 운영한 뒤 매출액 기준을 100억 유로로 낮추기로 해 영향을 받는 한국 기업은 더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기업으로선 자국에 내던 세금을 해외에 나눠 내기 때문에 전체 세 부담은 큰 차이가 없다는 것이 정부의 설명이다. 기업이 이중으로 세금을 부담하지 않게 정부는 해외에 낸 세금만큼 국내 법인세에서 공제해줄 방침이다. 그 대신 기업들이 여러 국가에 세금을 납부하는 과정에서 납세협력비용은 발생할 수 있다. 재계 관계자는 “글로벌 법인세 개편이 어떤 영향을 미칠지 예의주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글로벌 법인세 최저세율도 15%로 확정했다. 특정 국가가 기업에 물리는 세율이 15%보다 낮으면 그 차이만큼 다른 국가에서 세금을 더 거둘 수 있는 제도다. 각국이 다국적 기업을 유치하려 법인세율을 낮추는 경쟁이 잦아들 것으로 기대된다. 최저세율 적용 대상은 연결매출액 7억5000만 유로(약 1조 원) 이상인 다국적기업이다. 국제해운업은 제외된다.
한국은 법인세율(지방세 포함 최고 27.5%)이 높은 편이라 최저한세 도입으로 큰 영향을 받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상호 한국경제연구원 경제정책팀장은 “글로벌 최저세율인 15%를 하회하는 헝가리 아일랜드 등에 진출한 국내 기업들이 추가로 세금 부담을 질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기재부는 세부 사항이 확정되지 않아 이번 합의에 따른 세수 효과를 추계하기는 어렵지만 과세권 배분과 최저한세를 모두 고려하면 국내 세수에 긍정적이라고 판단했다.
국제조세의 큰 틀이 바뀐 만큼 정부가 수출 기업 지원책과 다국적 기업 유치 전략을 다시 짜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경상 대한상공회의소 경제조사본부장은 “정부가 디지털세 도입 영향을 면밀히 분석해 수출 기업들의 세금 부담을 정확히 파악하고 해외 진출 전략에 반영할 수 있도록 적극 도와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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