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승범 금융위원장이 14일 전세대출을 대출 총량관리 규제 대상에서 제외하겠다고 밝혔다. 금융당국의 규제 강화로 대출로 전셋값이나 분양 아파트 잔금 등을 마련하려던 실수요자들의 어려움이 커지자 한발 물러선 것이다. 연말까지 은행권의 전세대출 여력이 약 8조 원 정도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문재인 대통령도 “서민 실수요자에 대한 전세대출을 차질 없이 공급되게 해달라”고 주문했다.
고 위원장은 이날 금융투자협회에서 열린 투자자 교육 플랫폼 ‘알투플러스’ 오픈 행사의 축사를 마친 뒤 기자들과 만나 “가계대출이 전세대출 증가로 6%대 이상으로 증가하더라도 용인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앞서 금융당국은 올해 전세자금대츨을 포함한 전체 가계대출 증가율을 6%대로 묶고, 내년에는 4%대까지 낮추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하지만 한발 물러서 전세자금대출 증가액은 가계대출 증가율 관리 목표에서 제외하겠다는 뜻이다.
금융당국이 ‘유연한 대응’을 강조하고 나선 데는 이 같은 조치 없이는 은행들의 연쇄 대출 중단을 막을 수 없다는 현실적인 판단이 깔려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KB국민, 신한, 우리, 하나, NH농협은행 등 5대 시중은행의 전세자금대출 잔액은 9월 말 현재 121조4308억 원으로 지난해 말에 비해 15.4% 급증했다. 고 위원장은 “주택 관련 대출이 크게 줄지 않고 전세대출 등에서도 기존 추세가 어느 정도 이어진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은행권 전세자금대출이 7월부터 9월까지 매달 2조5000억~2조8000억 원 늘어난 것을 감안하면 이번 조치로 연말까지 대출 여력이 8조 원가량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당장 전셋값이나 분양받은 아파트 잔금 등을 빌리기 위해 은행을 찾는 실수요자들의 숨통도 트일 것으로 전망된다.
고 위원장은 “집단대출의 경우 연말까지 잔금 대출이 공급되는 데 크게 문제가 없을 것으로 본다”며 “그렇더라도 일부 사업장의 경우 애로가 있을 수 있기 때문에 그 부분에 대해서는 모니터링하고 문제가 발생하지 않도록 관리하겠다”고 말했다. 최근 일부 은행들이 집단대출을 중단한 뒤 한 제2금융권 금융사가 진행한 선착순 집단잔금대출 모집에서 1분도 채 안돼 한도가 다 찬 것으로 전해졌다.
문 대통령도 이날 “서민 실수요자에 대한 전세 대출과 잔금 대출이 일선 은행지점에서 차질 없이 공급되도록 금융당국은 세심하게 관리하라”고 지시했다. 문 대통령은 오전 청와대 참모회의에서 ‘서민 실수요자 전세 대출이 중단되지 않도록 하겠다’는 금융위의 입장과 관련해 이같이 말했다고 박경미 청와대 대변인이 전했다. 문 대통령은 6일에도 “가계부채 관리는 불가피한 상황이지만 전세대출 등 실수요자가 어려움을 겪지 않도록 정책 노력을 기울여 주기 바란다”고 당부한 바 있다.
이에 따라 다음 주 금융당국이 발표할 예정인 가계부채 보완 대책에도 실수요자 피해를 줄이기 위한 방안이 포함될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전세자금대출의 경우 전세대출 한도를 ‘임차보증금(전셋값) 증액 범위 내’로 제한하는 방안이 유력하다는 관측이 나온다. 전셋값이 2억 원 올랐다면 2억 원 내에서만 대출을 받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미 KB국민은행과 하나은행은 이러한 조치를 시행하고 있다. 또 이자와 원금을 함께 갚아나가는 ‘부분 분할 상환 방식’도 포함될 수 있다. 이인호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총량 관리를 한다고 해도 실수요자들이 예상 가능하도록 해 혼란이 없도록 않도록 해야 한다”며 “‘임대차 3법’ 이후 대출 수요가 전세자금 대출로 전이되는 형태가 많은 만큼 그 부분을 개정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박희창 기자 ramblas@donga.com 신지환 기자 jhshin93@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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