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홍수용]‘벼락거지’에 대한 우아한 변명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10월 1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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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문제 커져도 비현실적 공약 여전
쌓여가는 ‘부동산 난제’ 직시해야

홍수용 산업2부장
홍수용 산업2부장
‘부동산 문제에 관한 한, 하늘에서 떨어지듯 새로운 방법은 없다.’

김수현 전 대통령정책실장이 최근 쓴 책 ‘집에 갇힌 나라, 동아시아와 중국’의 마지막 문단을 3번, 4번 읽었다. 그는 노무현 정부 당시 유례없는 국세 방식의 종합부동산세를 도입했다. 현 정부 들어 횟수를 세기도 힘든 부동산정책을 주도한 것도 김 전 실장이다. 이제 와 집값 상승의 원인을 주택의 금융화에서 찾고, 동아시아 국가에서는 주택이 가족주의의 중심이라는 학자적 해석을 어떻게 봐야 할지 모르겠다.

김 전 실장의 논리가 정책 실패에 대한 변명처럼 들린다는 사람도 있지만 ‘새로운 방법이란 없다’는 결론만큼은 진심이라고 믿고 싶다. 세금으로 집값을 잡는 진보의 단골 메뉴는 더 이상 중요하게 언급하지 않았다.

이게 정책 실패에 대한 반성 끝에 나온 진보의 대안적 결론일까 싶지만 실제 그런 반전이 일어날 것 같지는 않다.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인 이재명 경기도지사의 부동산 공약을 보면 진보는 여전히 ‘새로운 방법’을 찾고 있다. 이 후보의 국토보유세 공약은 토지와 건물에 과세하는 기존 세제와 달리 땅에 세금을 물리는 토지 단일세 체계다. 지주가 땅을 독점하면서 빈부 격차가 커졌으니 모든 지대를 조세로 징수해 기본소득의 재원으로 쓰자는 논리다. 이 후보가 과거 대장동 개발에서 나온 배당금을 지역화폐 정책에 쓴 구조와 비슷해 보인다. 땅에 세금을 매기면 주택 임차인에게 세 부담이 전가되는 부작용을 줄일 수 있다는 이상론이지만 토지 공급이 고정돼 있지 않은 현실에서는 다른 변수가 얼마든지 생길 수 있다.

이 후보의 기본주택 공약은 원가 수준의 임대료로 30년 이상 살 수 있는 집을 역세권에 100만 채 지어 무주택자에게 공급하는 것이다. 복지의 오랜 논쟁거리인 보편주의와 선별주의 가운데 보편주의를 주거 부문에 적용하겠다는 취지다. 보편적 복지의 대표적 사례로 꼽히는 무상급식과는 비교하기 힘든 수준의 돈이 들 것이다. 주택도시기금을 끌어다 쓰면 된다지만 기금 조성에 기여한 청약저축자들이 동의할지 의문이다. 무엇보다 기본주택을 하려면 전체 주택에서 공공임대주택이 차지하는 재고율이 30%는 돼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본다. 정작 우리나라의 재고율은 8%다.

A, B라는 사건이 연속적으로 일어났다고 A가 B의 모든 원인이라고 단언하는 건 또 다른 문제를 낳는다. 현 정부가 부동산정책을 추진하면서 집값이 폭등했지만 과잉유동성, 수요 변화도 가격에 영향을 줬을 수 있다. 그렇다고 책임 있는 진보 인사들이 손에 잡히지 않는 요인 뒤에 숨는 건 비겁하다. 이번 정부의 새로운 정책들이 시장을 망가뜨린 핵심 이유라는 현장의 증언은 차고 넘친다. 부동산에 난제가 쌓여가는데 비현실적인 정책을 고수하는 건 사람들을 또 다른 실험으로 내모는 격이다.

현 정부가 정책을 26번이나 내야 했던 악순환은 ‘공급은 부족하지 않으니 다주택자에게 집을 팔 기회를 드리겠다’는 김 전 실장의 오판에서 시작됐다. 그가 지금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는지는 모르겠다. 다만 그의 책에서 ‘오래된 숙제’가 우리 앞에 있다고 했다. 공정경쟁 질서 확립, 신규 택지 공급과 재개발을 원활히 하는 일, 주거안전망, 과잉유동성 대비를 그 숙제로 꼽았다. ‘벼락거지’라는 비극적 현상에 대한 우아한 변명이라고 해야 하나. 한국은 진작 했어야 할 일을 4년 반 동안 못 했고, 그게 후대에 거대한 숙제로 남겨진 것이다.

#부동산#벼락거지#부동산대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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