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격 인상 전에 원하는 핸드백이 있는지 구하러 왔어요. 날이 더 쌀쌀해지면 더 이상 오픈런도 힘들 것 같아서요.”(서울 성복구 직장인 A씨)
“2달 동안 오픈런을 했는데 원하는 핸드백은 구경도 못했어요. 재고가 있을지 모르지만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연차 내고 오픈런 왔습니다.”(경기도 안양시 직장인 B씨)
2일 오전 9시 50시쯤. 100명 남짓한 사람들이 롯데백화점 외벽을 빼곡히 메웠다. 캠핑 의자나 돗자리에 앉아있는 이들의 모습도 포착됐다. 10여분 후인 10시부터는 매장 직원이 대기 명단을 받기 시작했다. 길었던 줄은 차츰 줄기 시작했다. 이날 오전 롯데백화점 본점 샤넬 매장의 풍경이다.
◇글로벌 가격 인상 소식에 “국내도 오를라”…오픈런 행렬
늦가을 쌀쌀한 날씨를 보인 이날 오전 10시 롯데백화점 본점 입구는 방문객들로 붐볐다. 업계 안팎에서 ‘가격 인상’ 소식이 들리자 샤넬백을 사기 위해 대기행렬에 동참한 이들이다.
명품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샤넬의 가격 인상이 기정사실화 된 분위기다. 이미 미국·유럽 등 글로벌 시장에선 오는 3일 가격 인상이 예고된 상황이어서다.
미국에서는 샤넬 미니백인 WOC가 3100달러(약 364만원)에서 3500달러(약 411만원)로 12.9% 인상될 것으로 보인다. 클래식 플랩백 스몰사이즈는 7100달러(약 834만원)에서 8200달러(약 963만원)로, 미디움 사이즈는 7800달러(약 916만원)에서 8800달러(약 1034만원)로 12.8% 인상될 것으로 알려졌다. 국내 가격 인상폭도 글로벌 시장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란 게으로 전망된다.
이날 대기 줄에 서있던 A씨는 “불과 몇 달 전만 해도 3-4시간만 기다리면 매장 입장이 가능했는데 요즘은 오픈런을 하지 않으면 아예 매장에 들어가는 것 조차 어려워졌다”며 “겨울이 되면 대기하는 것도 힘들어질 것 같아 마지막이란 생각으로 왔다”고 말했다.
B씨는 “매장 오픈 시간보다 30분이나 일찍 왔는데 대기번호 70번대를 받았다”며 “이정도면 초저녁에나 들어갈 수 있을 것 같다. 일부러 연차 내고 왔는데 원하는 물건을 구할 수 있을지도 미지수”라고 토로했다.
이처럼 오픈런으로 대기번호를 받았음에도 뒷번호를 받은 이들은 매장에 입장할 수 있을지 조차 미지수다. 개점 전 대기 명단에 이름을 올린 인원만 100명을 훌쩍 넘기 때문이다.
게다가 일찍 매장에 들어가더라도 원하는 핸드백을 구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예컨대 베스트셀러로 꼽히는 ‘클래식백’은 1000만원을 육박하는 가격에도 재고가 없어서 못 팔 지경이다. 패션업계 관계자는 “샤넬백은 하루 기다린다고 해서 살 수 있는 게 아니다”며 “몇달 오픈런을 뛰어도 구하지 못하는 이들도 수두룩하다”고 설명했다.
◇가격 인상에도 핸드백 ‘품귀’…리셀러들 판쳐
이 같은 오프런 전쟁이 펼쳐지는 이유는 샤넬백의 인기도 있지만, 이른바 ‘피’를 붙여서 되파는 리셀러들이 많아서다. 실제 현장에서 만난 대기 고객들은 주로 30~50대 여성일 것이란 예상과 달리 성별·연령이 다양했다.
앳된 얼굴의 20대 초반 여성부터 편안한 트레이닝복 차림의 2030세대 남성도 심심찮게 찾아볼 수 있었다. 오프런에 익숙한 듯 편안한 옷차림에 캠핑용 의자를 가져와 편하게 자리 잡은 이들의 모습도 포착됐다.
최근 구매 대행 업체를 통해 핸드백을 구매했다는 C씨는 “오프런 현장에 가보면 오프런에 익숙해 보이는 듯한 전문 리셀러로 추측되는 대기자들이 있다”며 “본인도 직장인이다 보니 연차 쓰기가 어려워 오프런을 포기하고 결국 구매 대행 아르바이트를 구해 핸드백을 구매했다”고 말했다.
샤넬은 리셀러가 많아지고 리셀가격이 치솟자 핸드백 구매 수량을 제한하는 등 브랜드 가치 훼손을 막기 위한 자구책을 마련하고 있다. 지난달 1일부터는 샤넬의 베스트셀러로 꼽히는 ‘타임리스 클래식 플랩백’과 ‘코코핸들 핸드백’을 한 사람당 1년에 1개씩만 구매 가능하도록 했다.
한 업계 관계자는 “샤넬에서 1년에 2~3차례 가격을 인상하면 오프런 현상이 더욱 심해진다”면서 “브랜드에서 푸는 핸드백 물량이 제한적이고 2~3년 전 처럼 구매 예약을 받지 않기 때문에 오프런 현상이 심화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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