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서 9억원을 넘는 ‘고가 전세’가 4년 전에 비해 2배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금융당국이 고가 전세에 대한 전세자금대출 보증 제한을 검토 중인 가운데, 설익은 규제로 임대차 시장에 혼란을 가져올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8일 업계에 따르면 현재 정부는 고가전세에 대해서는 SGI서울보증의 보증을 제공하지 않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주택도시보증공사(HUG)·주택금융공사와 달리, 서울보증은 보증을 받을 수 있는 전세 기준 상한이 없어 강남권을 비롯한 고가주택 세입자가 주로 이용해왔다.
하지만 주거 취약계층 등 서민들을 위해 쓰여야 할 보증 제도가 값비싼 전세대출에 활용되는 것은 부적절하다는 지적이 꾸준히 나오며 제한 필요성이 제기됐다. 고소득자들이 고액의 전세대출을 갭투자에 활용하고, 이 때문에 집값 상승이 촉발되고 있다는 비판까지 나왔다.
아직 구체적인 제한선은 나오지 않았지만, 고가 주택 기준인 9억원이나 주택담보대출 금지선인 15억원이 유력하게 거론된다.
◇9억 초과 ‘고가 전세’ 2배로 ‘훌쩍’…임대차법 부작용에 확대 전망
시장에서는 우려의 목소리가 크다. 전셋값 상승과 임대차3법 부작용까지 겹치며 고가 전세가 나날이 늘고 있는데,
부동산 프롭테크 기업 직방에 따르면 지난해 서울에서 이뤄진 보증금 9억원 초과 전세 거래는 총 9628건으로,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2017년 3790건에 비해 2.6배 늘었다. 전체에서 전셋값 9억이 넘는 거래가 차지하는 비중도 2017년 3.43%에서 지난해 7.17%로 2배 넘게 늘었다.
올해 거래량은 지난 4일 기준 8751건으로, 거래 기간이 두달여 남아 해가 마무리되면 지난해 수치와 비슷하거나 높을 것으로 전망된다.
전셋값이 전반적으로 상승하면서 덩달아 고가 전세도 늘었다. 특히 지난해 계약갱신청구권제를 포함한 임대차보호법이 시행되면서 증가 폭이 가팔랐다. Δ2017년 3648건 Δ2018년 5188건 Δ2019년 5660건이었던 거래 건수는 임대차법이 시행된 2020년 9628건으로 전년 대비 70% 급증했다.
고가 전세는 더욱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내년 7월 임대차법 시행 2년을 맞아 계약갱신청구권 계약이 다수 만료되면서다. 신규 계약 땐 5% 상한도 풀리기 때문에, 집주인들이 시세를 반영해 전셋값을 크게 올릴 것으로 예상된다. 향후 4년(2+2) 상승분까지 선반영될 것이란 관측까지 나온다.
이러한 이유로 한국건설산업연구원은 내년 전국 전셋값이 6.5% 오를 것이라고 전망했다.
◇대치동·목동 등 학군지 ‘날벼락’…대출 규제에 전세의 월세화 가속 우려도
보증기관 보증 없이는 시중 은행에서 전세자금대출을 받기 어려운 탓에, 대출 보증 제한이 시행되면 실수요자 부담과 시장 혼란이 가중될 수밖에 없다고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전셋값이 높은 강남권 임대차 시장을 중심으로 혼란이 가중될 것으로 보인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지난 9월 기준 강남3구를 포함한 서울 동남권 중위전세가격은 8억4000만원에 달한다.
강남의 한 부동산 중개업소 관계자는 “강남이나 목동 같은 학군지는 자녀 교육 때문에 비싼 전셋값을 감수하고 들어오는 사람들이 많고, 대부분 실수요자”라며 “학교 문제로 집을 옮기기도 어려워 대출이 막히면 패닉에 빠지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라고 말했다.
강남구 은마아파트 전용면적 84㎡ 전세 매물은 지난달 5억4600만원~9억5000만원 사이에서 거래됐다. 낮은 가격대는 계약갱신권을 사용한 재계약으로, 높은 가격대는 신규 계약으로 추정된다. 전셋값 9억원이 고가 전세로 분류될 경우, 계약갱신권 만료 후 재계약에 나서는 실수요자들이 날벼락을 맞게 되는 셈이다.
실수요자들이 울며 겨자먹기로 ‘반전세’를 택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보증금은 고가 전세 가격 아래로 맞추고, 그 이상은 월세를 끼는 방식으로 집주인과 타협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함영진 직방 데이터랩장은 “전세가격이 꾸준히 오른다고 가정했을 때, 보증보험 제한으로 인해 월세화 현상이 가속화될 수 있다고 본다”며 “대출이 나오지 않으면, 보증금 증액분은 월세로 충당하는 수밖에 없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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