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험사기의 진화]〈下〉의사 명의 빌려 허위 입원 종용
대부분 요양-한방병원 형태 운영, 환자 인원만 확보되면 수익 발생
요건 느슨해 보험사기 쉽게 노출… “특사경 도입해 보험사기 차단을”
“펜션에 며칠 누워 있다가 가시면 알아서 처리해드릴게요.”
입원 기간에 따라 보험금을 지급하는 실손의료보험에 가입한 A 씨(60)는 “놀면서 큰돈을 벌 수 있다”는 지인의 권유에 경기 가평군의 한 요양병원을 찾았다. 원장 B 씨는 병원에서 1km 넘게 떨어진 펜션 방 하나를 병실로 제공했다. 펜션엔 A 씨 같은 사람이 7명이나 더 있었다.
알고 보니 이 병원은 의료기관을 개설할 수 없는 사람이 의사 명의를 빌려 불법 운영하는 ‘사무장 병원’이었다. B 씨는 임차한 펜션을 허가 받지 않고 병실로 활용해 가짜 환자를 묵게 하고 국민건강보험공단으로부터 요양급여 1억5000만 원을 받았다. A 씨 등 환자들도 입원 치료를 받은 것처럼 속이고 보험사에서 2억6700만 원의 보험금을 타냈다.
이처럼 비(非)의료인이 운영하는 불법 의료기관(사무장 병원)이 올 들어 40곳 넘게 적발됐다. 최근 사무장 병원을 중심으로 건강보험공단의 요양급여와 보험사의 실손보험금을 동시에 부당 청구하는 공·민영보험 연계 사기가 늘고 있다.
○ 보험사기 온상 된 사무장 병원
11일 건강보험공단 등에 따르면 2009년부터 올해 9월 말까지 적발된 불법 의료기관은 모두 1651곳으로 집계됐다. 이 기관들이 부당하게 벌어들인 금액은 3조5499억 원이었다. 이 중 58.6%(2조794억 원)가 요양병원 형태의 사무장 병원에서 발생했다.
요양병원은 개별 치료마다 건보공단에 비용을 청구하는 일반 병원과 달리 환자 1인당 평균 비용을 정해놓고 환자 수, 입원 기간 등에 따라 요양급여를 받는다. 환자 인원만 확보되면 수익이 나는 구조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요양·한방병원은 일반 병원보다 개설이 쉽고 급여 요건도 엄격하지 않아 진료비 부풀리기, 허위 입원 등 보험사기에 더 쉽게 노출된다”고 했다. 실제로 지난해 사무장 병원의 환자 1인당 연평균 입원 기간은 75일로 일반 병원(36일)의 2배를 넘었다.
여기에다 사무장 병원은 실손보험에 가입한 환자들을 대상으로 고액의 비급여 진료를 남발하고 있다. 최근 적발된 한 사무장 병원은 브로커를 통해 실손보험에 가입한 암 환자만을 유치한 뒤 비급여 항목인 고주파 치료 횟수를 부풀려 보험사로부터 52억 원을 받았다.
○ “특사경 제도로 보험사기 차단해야”
공·민영보험 연계 사기는 민간 보험금 누수와 건강보험 재정 악화로 이어진다. 보험연구원은 보험사기로 인한 민간 보험금 누수가 2018년 기준 연간 6조 원이나 됐고 건보공단 재정에도 1조 원가량의 손해를 끼친 것으로 추산했다.
불법 의료기관이 적발되더라도 부당이득을 징수하는 비율이 5.6%에 불과한 점도 문제로 꼽힌다. 경찰 수사, 징수 등의 과정에 최소 1년 이상 시간이 걸려 불법 의료기관들이 폐업, 재산 은닉 등을 통해 번 돈을 빼돌리기 때문이다. 최종윤 생명보험협회 보험심사부장은 “건보공단 특별사법경찰(특사경) 제도를 도입하면 수사 기간을 단축하고 전문성은 높일 수 있어 불법 의료기관의 보험사기를 차단하는 효과가 커질 것”이라고 했다.
보험사기에 대한 경제적 제재를 강화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김선정 동국대 금융·보험법연구센터장은 “보험사기방지특별법을 개정해 보험사기로 지급받은 보험금을 의무적으로 반환하고 보험사가 계약을 해지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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