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 요소 수출규제는 비료난 때문”
베이징무역관 지난달 22일 보고
KOTRA-산업부, 초기대응 실패
지난달 중국의 요소 수출 검사 의무화 고시와 관련해 정부에 전달된 KOTRA의 초기 보고서에 논란이 된 차량용 요소에 대한 언급 없이 농업용 ‘요소 비료’에 대한 내용만 포함된 것으로 확인됐다.
사태 초기 국내에 파장이 큰 핵심 내용이 빠진 ‘중국 요소 수출 규제 보고서’가 KOTRA 본사, 산업통상자원부 등에 전달되면서 정부의 오판과 늑장 대응으로 이어졌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16일 조정훈 시대전환 의원실이 입수한 KOTRA의 ‘중국 비료 및 요소 수출 규제 관련 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KOTRA 베이징무역관은 지난달 22일 KOTRA 한국 본사에 “중국이 비료 공급난 완화를 위해 수출을 억제하고 국내 시장에 우선 공급한다” 등의 내용을 담은 보고서를 제출했다.
KOTRA 베이징무역관은 중국 관세청(해관총서)이 지난달 11일 요소 수출 검사 의무화를 고시한 뒤 열흘간 현지 조사와 관계자 12명의 인터뷰를 진행하고 이 보고서를 작성했다. 인터뷰 대상엔 정부뿐만 아니라 산업계 인사들도 포함됐다. 보고서는 요소 비료 등 농업에만 한정돼 국내에서 수급 불안이 고조된 차량·산업용 요소에 대한 내용이 포함되지 않았다.
KOTRA 한국 본사는 차량용 요소수 문제가 빠진 현지 무역관 보고서를 지난달 22일 산업부에 보고했다. 열흘간 현지에서 정보를 수집하고 분석했는데도 핵심 내용이 빠진 정보가 정부 부처에 보고된 셈이다. 청와대는 요소수 사태를 초기에 요소 비료 문제로 판단한 것으로 전해진다. 정인교 인하대 국제통상학과 교수는 “현재의 산업정보 수집 역량으로는 ‘제2의 요소수’ 사태가 언제든 벌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KOTRA, 요소 비료-중국내 피해에 초점… 국내 요소수 언급 없어
‘요소수 대란’ 키운 정부의 오판
최근 벌어진 ‘요소수 대란’은 중국 현지 수출 규제에 대한 정보를 파악하는 초동 대응 과정에서 해외 시장 진출 중심의 산업 정보 수집 체계가 허점을 드러낸 결과라는 해석이 나온다.
KOTRA의 중국 현지 무역관이 중국 당국의 요소 수출 규제 영향 등을 열흘간 분석했지만 농업용 비료 문제와 중국 내 피해에 초점을 맞추는 바람에 국내 차량용 요소수 수급 문제를 조기에 포착하지 못한 것으로 풀이된다. ‘경제안보 시대’에 맞게 해외 산업정보 수집과 공유 및 분석 체계를 정비해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 ‘중국자동차공업협회’ 접촉하고도 ‘요소 비료’로만 파악
16일 조정훈 시대전환 의원실에 따르면 KOTRA 베이징무역관은 중국의 요소 등 비료 품목의 수출 전 검사 강화 고시가 나온 지난달 11일부터 열흘간 보고서를 준비했다. 이 과정에서 중국자동차공업협회에 요소 수급 동향과 해외 수출에 대한 영향도 문의했다. 중국 현지 사정은 파악했지만 정작 국내 차량·산업용 요소수 수급에 미칠 파장은 보고서에 담질 못했다. 베이징무역관 관계자는 “통관과 관련된 중국 내 무역·물류 수출회사에 미칠 영향에 초점이 맞춰졌다”라며 “중국에 있는 기업들을 접촉하다 보니 국내에 미칠 상황은 파악하기 어려웠다”고 해명했다.
KOTRA 본사는 지난달 22일 베이징무역관에서 보고서를 전달받았다. 본사에서 보고서를 검토하고 산업통상자원부에 보고하는 과정에서도 국내 차량용 요소수 수급에 미칠 영향은 포함되지 않았다. KOTRA 본사 관계자는 “KOTRA는 수출 지원이 중심인 기업이기 때문에 수입 품목에 대한 역할은 사실상 맡지 않고 있다”라며 “수입 업무를 담당하는 부서는 없는 실정”이라고 했다.
산업부는 KOTRA 보고서 외에 국내 산업에 미칠 파급을 인지할 기회가 있었는데도 초기 대응에 실패했다. 산업부 관계자는 “지난달 21일 중국 상하이영사관에서 차량용 요소수 문제를 포함한 내용의 보고서를 전달받았다”고 밝혔다. 산업부는 지난달 27일 처음으로 요소수 관련 업계 간담회를 열었다. 한 정부 관계자는 “해외 공관에서 정부로 들어가는 보고서들이 워낙 많다 보니 요소수 같은 핵심 정보를 선별하기 쉽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청와대도 중국의 요소 관련 고시를 초기엔 비료 문제로만 판단한 것으로 전해졌다.
○ ‘경제안보’ 시대에 맞게 시스템 개편해야
글로벌 공급망 문제가 ‘경제안보’ 현안으로 떠오른 만큼 수출에 초점을 맞춘 KOTRA와 산업부의 해외 산업정보 수집 체계도 개편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경훈 한국무역협회 연구위원은 “글로벌 공급망의 전략 품목을 세세히 추리고, 모니터링 과정에서 현장 전문가가 참여하는 등 사전 경고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고 밝혔다.
국가정보원, 산업부, 외교부 등이 글로벌 공급망 정보를 긴밀하게 공유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최원목 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인도가 9월에 중국의 이상 동향을 파악하고 중국산 요소 82만여 t을 대량 구매했을 때도 한국은 대처하지 못했다”라며 “지난해 미중 패권 다툼이 있을 때부터 관련 기관이 함께 동향을 분석하고 대책을 마련했어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정부는 요소수 이외의 원자재 공급망을 모니터링하는 정부 태스크포스(TF) 가동 방안을 검토하기로 했다. 또 16일부터 한국석유공사 ‘오피넷’ 등에서 주유소의 요소수 재고 현황을 매일 두 차례 공지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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