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최대 인터넷 기업 네이버가 최근 최고경영자(CEO)로 변호사 출신의 최수연 책임리더를 선임하면서 공교롭게도 창업자가 재임한 기간을 제외하고 역대 CEO를 기자와 법조인 출신을 번갈아 기용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각 시대에 부과 및 추구된 수장의 소명과 목표가 다르겠지만 독점적 지위를 지닌 플랫폼 기업으로서 숙명적으로 맞닥뜨려야 하는 정치·정부·여론 등으로부터의 고강도 압력에 노련하게 대응해야 하는 소양이 필요했기에 엔지니어 출신보다는 기자·법조인을 선택했다는 해석이 나온다.
21일 IT 업계에 따르면 1999년 설립된 네이버는 현재까지 5명의 CEO가 취임했으며, 지난 17일에는 CEO로 최수연 글로벌사업지원부 책임리더를 6번째 최고경영자(CEO)에 내정했다.
설립 초기에는 네이버 창업자인 이해진 글로벌투자책임자(GIO)(1999년 6월~2003년 12월)와 카카오 김범수(2001년 11월~2007년 8월) 의장이 기틀을 잡아 국내 최대 인터넷기업이라는 반석에 올려놓는 데 성공했다.
수성과 변화의 시기인 2005년부터는 기자와 법조인이 돌아가면서 맡는 순환 구조가 이뤄지고 있다.
◆비창업자 첫 CEO ‘최휘영 기자’…뉴스 콘텐츠 중심으로 포털 성장기
지난 2005년 1월부터 2009년 3월까지 4년여간 대표를 맡은 최휘영 전 CEO는 이해진·김범수 등 창업자가 아닌 최초의 네이버 CEO다. 서강대 영문과를 졸업한 뒤 연합뉴스, YTN 등에서 일한 기자 출신이다. 2003년 네이버에 기획실장으로 합류했다가 2005년부터 공동대표에 올랐다.
이 시기는 네이버가 국내 대표 포털 사이트로서 언론에서 공급하는 뉴스가 최대 킬러콘텐츠였던 시절임에 따라 기자 출신이 기용됐다는 분석이다.
◆김상헌 판사 출신 CEO…뉴스 공정성 시비·골목상권 침해 논란 등 위기관리 특명
네이버는 2009년 4월부터 2017년 3월까지 법조인 출신의 김상헌 전 CEO를 수장으로 맞이했다.
김상헌 전 CEO는 서울대 법대를 졸업하고 서울중앙지법 판사, LG그룹 법무팀을 거쳐 네이버 대표직에 선임됐다.
당시 네이버는 ‘뉴스 관문’으로 완전히 자리를 잡음에 따라 정치권과 언론의 견제가 고조되던 시기였다. 진보와 보수 양측 모두로부터 특정 정치세력을 편들고 있다는 극렬한 공세에 시달렸다.
여기에 2013년에는 골목상권 침해 비판으로 네이버에 대한 여론이 극도로 악화되던 시기였다. 실제 당시 반발에 부딪혀 부동산 온라인 사업과 여행 플랫폼 사업을 접었고, 공정거래법 위반 논란이 있던 오픈마켓 서비스에서도 철수했다.
이같이 네이버에 수성이 가장 중요했던 시기 김상헌 전 CEO가 8년간 방패 역할을 충실히 이행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성장보다는 리스크 관리에 방점을 둔 이해진 GIO의 기용술이었다는 분석이다. 대신 네이버가 2000년대 후반 PC에서 모바일로 전환하는 시기에 적절히 대응하지 못했다는 아쉬움이 있다.
◆첫 여성 CEO 한성숙, 사업 다각화 본격화…플랫폼 기업에 대한 반감에 성숙 대응
2017년 3월에는 한성숙 CEO가 전면에 나섰다. 네이버의 첫 여성 CEO다. 숙명여대 영문과를 졸업한 뒤 PC라인 기자, 엠파스 검색사업본부장을 거쳐 NHN에 합류했으며 2017년 3월부터 수장으로 진두지휘를 하고 있다.
한 CEO가 사령탑에 오르면서 네이버는 사업 다각화에 본격 시동을 건다. 1위 포털사로서 뉴스와 검색 광고 중심의 사업 구조에 머물렀으나 이커머스, 콘텐츠, 핀테크 등으로 사업을 전방위 확장, 4년여간 명실공히 플랫폼 기업으로의 완성도를 부단히 높여갔다.
기자 출신 경험에서 비롯된 대외 소통 능력과 부드러운 이미지를 바탕으로 플랫폼 기업에 대한 사회적 반감을 포용 및 다독이며 사업을 무리 없이 확장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한 CEO가 입만 열면 중소상공인(SME)과 창작자와의 동반 성장을 강조한 것도 이런 배경에서 비롯됐다는 해석이 나온다.
◆81년생 가장 젊은 CEO 내정…글로벌화·조직문화 쇄신 방점
내년 3월 주주총회 이후 차기 대표에 취임하게 될 1981년생 최수연 내정자는 ‘글로벌 감각’과 ‘젊음’이 특징이다. 서울대 공과대학 지구환경시스템공학부를 졸업한 뒤 2005년 네이버(당시 NHN)의 신입사원으로 업계에 발을 내디뎠다. 당시 네이버가 처음으로 국내 인터넷업계 1위로 올라서며 가파른 성장을 이어나간 4년 동안 커뮤니케이션과 마케팅 조직에서 근무했다.
이후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을 졸업하고 율촌에서 변호사로 재직 중, 하버드 로스쿨을 거쳐 뉴욕주 변호사 자격증을 취득했다. 인수합병(M&A), 자본시장, 기업 지배구조, 회사법 일반 분야에서 변호사로 경력을 이어가던 중 2019년 네이버에 다시 합류, 글로벌사업지원부에서 해외 사업을 맡아왔다.
네이버가 글로벌 사업 가속화, 관료·경직화된 조직문화 쇄신, 정부와 정치권의 정보기술 플랫폼에 대한 규제 강화를 포함한 테크래시(IT 기업에 반발하거나 제재를 강화하는 현상)에 대한 대응이 절실할 때 글로벌과 젊음으로 무장한 최 내정자를 리더로 낙점했다는 분석이다.
실제 최 내정자는 글로벌 주요 사업들이 현지에서 사회적 책임과 법적 의무를 다할 수 있는 체계를 구축하고 사업 간 시너지를 확장할 수 있도록 전략을 짜는 동시에 선제적인 기술·인력 투자를 통해 글로벌로 성장해나갈 신규 사업을 발굴하기 위한 작업에 한창이다. 또 지난 5월 직원 사망 사건을 계기로 드러난 활기를 잃어버린 조직문화에 벤처·혁신의 DNA를 복구하기 위한 인선 및 조직 개편 작업을 서두르고 있다.
IT 업계 관계자는 “엔지니어 출신 창업자 이해진 GIO는 익숙지 않은 외부와의 소통과 세부 사업 등은 경영진에 맡기고 그룹사의 큰 전략과 방향을 짜는 데 집중하는 방식을 취했다”며 “글로벌에 역점을 두고 있는 현 네이버 사업의 방향성 상 이번 CEO 인선은 조직 내외 소통 능력뿐 아니라 글로벌에서의 현지 소통 감각까지 추구한 인선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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