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탄소중립 목표’ 현실 외면”… 中企, 비용 부담에 비상 상황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11월 30일 03시 00분


[규제에 쪼그라든 ‘中企 운동장’]〈2〉中企에 강요되는 ‘탄소중립’ 정책
친환경 보일러 사용시 단가 30%↑… 中企, 온실가스 감축목표에 ‘고민’
비용증가-제품 경쟁력 약화 우려… “투자세액공제 확대 등 지원책 시급”

부산 사하구 한 공단의 염색 가공업체들은 최근 정부가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발표한 이후 비상이 걸렸다. 이 업체들은 석탄 보일러로 공단 내 열병합발전소를 운영하며 전기와 열을 얻고 있다. 정부 정책에 따라 온실가스를 줄이려면 화석 연료를 사용하는 공장 가동을 줄여야만 한다.

50여 곳의 대표들이 모여 논의한 끝에 액화천연가스(LNG) 등 친환경 연료를 사용하는 보일러로 바꿔야 한다는 결론을 냈다. 하지만 교체 비용만 최소 350억 원에 이르렀다. 업체당 약 7억 원씩은 부담해야 하는 셈이어서 계획은 무기한 보류됐다.

○ 탄소중립 목표에 비상 걸린 中企


부산 사하구 공단에 입주한 동진다이닝 김병수 대표는 “친환경 보일러를 사용하면 생산 단가가 30%가량 증가하고 가격 경쟁력을 잃게 된다”며 “정부가 이상적인 정책 목표만 내세울 때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탄소중립 과제는 문재인 정부가 강하게 추진하고 있는 정책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이달 초 영국 글래스고에서 열린 제26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6) 기조연설에서 한국의 국가온실가스감축목표(NDC) 상향안을 공식 발표했다. 2030년 온실가스 배출량을 2018년 배출량보다 40% 줄이겠다는 목표다. 기존 목표치는 26.3%였다. 중소기업 다수가 포진해 있는 산업 부문에서는 기존 6.4%에서 14.5%로 감축 목표를 높였다.

탄소중립 정책 실현을 위한 작업은 법제화 작업을 포함해 전방위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올해 9월 24일에는 ‘탄소중립기본법’이 제정됐다. 중소기업계는 이후 순차적인 법 개정을 통해 구체적인 규제 가이드라인이 제시될 것으로 보고 있다.

○ 비용 걱정에 현황 파악도 못해


문제는 국내 사업체 수의 99%를 차지하는 중소기업들이 관련 정책에 발맞추기 어렵다는 점이다. 중소벤처기업연구원에 따르면 탄소배출과 밀접한 제조중소기업 144곳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94.4%가 대응전략을 수립하지 못하고 있었다. 추가적인 비용 증가(54%)와 이에 따른 주력 제품 경쟁력 약화(11%) 등에 대한 우려 때문이었다.

중소기업이 처한 현실을 감안한 지원책 마련도 늦어지고 있다. 지원 근거를 마련하기 위한 개별 중소기업의 탄소배출 현황 파악조차 이뤄지지 않고 있다. 경기 안산의 한 폴리염화비닐(PVC) 업체 대표는 “지방자체단체에서 탄소배출량 파악을 위한 진단을 받으라는 공문을 받은 적이 있지만 비용이 걱정돼 신청하지 않았다”고 했다.

중소기업들은 탄소중립을 위한 시설 지원 및 투자세액공제 확대, 중소기업 전용 전기요금제 등 지원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석회석, 유리 등 탄소가 포함된 원료를 사용하는 비금속 업종은 대체원료 개발 없이는 탄소배출이 불가피하다는 점 등을 감안한 ‘업종별 맞춤형 정책’도 필요하다. 김기문 중소기업중앙회장은 “전통 제조업 위주인 중기 현실을 감안한 기업규모별 단계적인 정책 시행이 필수”라며 “중기 탈탄소경영을 촉진하기 위한 관련 법의 국회 통과도 시급하다”고 했다.

#탄소중립#친환경#온실가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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