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30일 전북 완주군 봉동읍에 있는 배터리 개발업체 ‘에너지11’의 기술연구소. 연구실 작업용 책상 위에는 못으로 구멍을 낸 배터리셀 20여 개가 쌓여 있었다. 조금만 구멍을 내거나 망가져도 불타거나 폭발해 원형을 잃는 리튬이온 배터리와 달리 이 배터리셀들은 은색 포장과 양쪽에 튀어나온 전극 등 원래 모양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었다. 임두현 에너지11 연구소장은 “하이브리드 고체 전해질을 사용해 화재와 폭발 위험이 없는 나트륨이온 배터리”라고 말했다.
리튬이온 배터리가 점령한 배터리 시장에 차세대 배터리들이 하나씩 도전장을 내밀고 있다. 리튬을 나트륨이나 칼륨 같은 다른 금속으로 대체하거나 폭발성이 큰 리튬이온 배터리의 단점을 극복하기 위해 안전성이 떨어지는 액체 전해질을 다른 물질로 대체하려는 시도가 활발하다.
○ 원자재 확보 걱정 적은 나트륨 배터리
최근 주목받는 것은 나트륨이온 배터리다. 원자재 가격 상승으로 타격을 받은 리튬과 달리 바다에 흔한 물질인 나트륨은 가격 면에서 특히 유리하다. 한국자원정보서비스에 따르면 리튬탄산 가격은 올해 1월 4일 kg당 48.5위안(약 8960원)에서 이달 1일 187.5위안(약 3만4660원)으로 387% 올랐다. 반면 나트륨이온 배터리는 희토류 금속을 양극재에 쓰는 리튬이온 배터리와 달리 양극재 소재 가격도 낮아 완제품이 30∼40% 저렴할 것으로 기대된다.
에너지11은 나트륨이온 전지 상용화를 위해 인터파크 공동 창업자인 이상규 대표가 인터파크비즈마켓 에너지사업본부에서 분사해 창업한 기업이다. 배터리의 양극과 음극을 분리하는 분리막을 난연성 필름으로 활용하고 여기에 액체와 고체 전해질을 섞은 겔 형태의 전해질을 바르는 나트륨 반고체 배터리를 개발했다. 하영균 에너지11 기술대표는 “3.2V 출력에 에너지 밀도는 kg당 150Wh로 값싼 리튬인산철 배터리와 성능이 비슷하고 작동 온도도 0도에서 150도까지 가능할 정도로 안정적”이라고 말했다.
세계 최대 배터리 업체인 중국 CATL은 올해 7월 나트륨이온 배터리 신제품을 공개하고 내년 양산을 시작하겠다고 밝혔다. 업계에서는 나트륨이온 배터리의 시장 가능성을 확인한 선언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프랑스 티아마트, 영국 파라디온, 미국 나트론 등도 나트륨이온 배터리를 개발하고 있다. 다만 나트륨은 리튬보다 이온 크기가 커 에너지 밀도가 떨어지는 게 단점이다. 에너지 밀도가 최대 kg당 500Wh인 리튬이온 배터리의 3분의 1 수준이다. 리튬이온 배터리와 같은 전해질을 사용하면 화재와 폭발 문제에서도 자유롭지 못하다.
안전 측면에서는 ‘전고체 배터리’가 차세대 배터리로 주목받는다. 화재 위험이 큰 액체 전해질을 불에 타지 않는 고체로 대체한 배터리로 국내 배터리 3사도 연구와 투자를 진행 중이다. 다만 전고체 배터리는 양산을 위해 넘어야 할 산이 많아 2025년 이후에나 상용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김태호 한국화학연구원 에너지소재연구센터장은 “고체 전해질이 두 극에 정확히 맞닿게 해야 하는데 고체와 고체를 정확히 붙여 접촉 면적을 넓혀주는 게 쉽지 않다”고 말했다.
○ 전고체로 가는 징검다리, ‘반고체’ 배터리
학계와 산업체는 액체와 고체를 섞어 장점을 결합한 ‘반고체 배터리’를 전고체 배터리로 넘어가는 과정을 이어줄 중간 징검다리로 주목하고 있다. 액체에 고체를 섞어 겔 형태로 만들거나 전극에 닿는 부분이라도 말랑한 물질을 도입해 접촉력을 높인다. 김 센터장은 “반고체는 전극하고 맞닿은 곳이 부드러워 전고체 전해질과 극 소재의 접촉을 좋게 만들어준다”며 “액체와 고체를 특정 비율로 잘 섞어 성능과 안정성 사이 균형을 잘 맞추는 게 핵심”이라고 말했다.
나트륨이온 배터리와 반고체 배터리 기술을 적용한 배터리들은 부피가 커도 되거나 고출력을 내지 않아도 되는 에너지저장장치(ESS), 공정용 기계, 통신기지국 등에 활용될 것으로 기대된다. 특히 잦은 화재로 안전성 문제가 큰 ESS 시장을 키울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하 대표는 “전북테크노파크 기술거래촉진네트워크사업을 통해 세종대 전남대 기술을 이전받아 기술을 고도화하고 있다“며 “새만금 일대 태양광 ESS 시장을 공략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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