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구나 이 부회장은 삼성물산-제일모직 부당합병 및 삼성바이오로직스 회계부정 의혹과 관련한 재판을 받고 있는 등 삼성은 총수를 둘러싼 ‘사법리스크’가 여전한 상황이다.
때문에 삼성이 올해 인사에서는 변화보다는 안정에 무게를 두되, 향후 이어질 임원인사에서 젊은 인재를 대거 발탁해 미래를 대비할 가능성이 높다는 전망에 힘이 실려 왔다.
그러나 이 부회장은 관측을 깨는 과감한 변화를 택했다.
이 부회장이 이번 인사에서 CE와 IM부문을 9년 만에 다시 통합하고, 반도체 사업부문 수장을 교체하는 승부수를 던진 것은, 시장의 냉정한 평가, 자신이 5년 만의 미국 출장에서 직접 보고 느낀 냉혹한 현실 등을 감안한 승부수라는 해석이 나온다.
사장이었던 정현호 사업지원TF 장을 부회장으로 승진시키고 힘을 실어준 것도 ‘미래 먹거리’를 고민한 이 부회장의 의중이 반영된 것으로 해석된다. 사업지원TF는 전략, 인사 등 2개 기능을 중심으로 삼성전자 및 관계사의 공통 이슈 협의, 시너지 및 미래사업 발굴 등의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에 정 부회장이 삼성의 ‘미래 설계’라는 중책을 맡은 것으로 볼 수 있다.
비록 삼성전자가 역대 최대 규모 매출을 기록, 코로나19 팬데믹에도 변함없이 견고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지만, 성장이 한계에 다다랐다는 견해가 만만치 않았다.
삼성전자는 D램(휘발성 메모리)과 낸드플래시(비휘발성 메모리) 등 메모리반도체는 글로벌 1위이지만, SK하이닉스, 미국 마이크론 등을 비롯한 경쟁업체의 추격이 거세다.
이 부회장이 2019년 ‘시스템반도체 비전 2030’을 발표하면서 역량을 집중하고 있는 시스템 반도체는 경쟁사들보다 기술력이나 시장점유율에서 한참 뒤처져 있는 후발주자이지만, 좀처럼 가격을 좁히지 못하고 있다. 특히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의 경우 올해 2분기 기준 글로벌 시장 점유율 1위인 대만의 TSMC가 52.9%(트렌드포스 조사)로 앞서 있고, 삼성전자는 17.3%로 한참 못 미친다. 두 기업 간 점유율 격차가 35.6%P로, 1년 전인 2020년의 2분기의 33.1%P보다 격차가 오히려 벌어졌다.
더군다나 파운드리 사업을 포기했던 인텔이 미국의 공급망 재편 계획에 힘입은 듯 파운드리 사업을 재개를 발표하고, 지난 2월 총 200억달러를 투자해 미국 애리조나주에 2개의 파운드리 공장을 짓겠다고 밝히는 등 경쟁사들이 발빠른 행보를 보였다. 반면, 삼성전자는 170억달러 규모의 미국 제2파운드리 공장 건설 계획을 지난달 이 부회장의 미국 출장에서야 확정하는 등 상대적으로 더딘 모습을 면치 못해왔다.
스마트폰의 경우 비록 폴드와 플립의 흥행이 이어지고 있지만, 시장이 성장 정체기에 접어든 데다 미국 애플과 중국 업체 간 경쟁이 날로 치열해지면서 점유율이 하향 추세를 보이고 있다.
◇글로벌 경쟁 격화 대비 조직 재정비…후속 임원인사도 큰 폭 변화 전망
삼성전자의 주가만 하더라도 반도체 슈퍼사이클 기대감으로 올해 1월 한때 10만원에 근접했지만, 이후 하향 추세를 보여 현재 7만원 중후반대에 있다.
이와 관련해 삼성전자 안팎에서는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를 비롯한 시스템 반도체 영역에서 괄목할 만한 변화나 성과를 보여주지 않는 이상 삼성전자를 바라보는 시장의 시선이 바뀌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도 나왔다.
‘제2의 반도체’라고 불리는 전기차 배터리 사업도 삼성은 경쟁사인 LG나 SK에 비해 상대적으로 소극적인 모습을 보여왔다. 이번에 삼성SDI 대표이사에 최윤호 삼성전자 경영지원실장(CFO)이 내정된 것도 삼성이 2차전지 사업의 성장지원을 본격화하려는 채비를 갖추기 위한 포석으로 해석된다.
이 부회장의 위기의식은 전날 언론에 배포한 인사 자료에도 잘 드러난다.
삼성전자는 인사 자료에서 “미래를 대비한 도전과 혁신을 이끌 인물을 세트사업, 반도체 사업의 부문장으로 각각 내정하는 인사를 통해 격화되는 글로벌 경쟁구도 하에 진용을 새롭게 갖춰 변화를 선도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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