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KB국민은행 신관에 마련된 인공지능(AI) 체험존. 기자가 가상현실(VR) 기기를 쓰자 눈앞에 자동차가 날아다니는 미래의 여의도가 펼쳐졌다. 은행 지점 문을 열고 들어가 투자 상담을 요청하자 ‘VIP라운지’로 안내됐다.
“펀드 비중을 늘려 보는 건 어떨까요?” 테이블 건너편에 아바타의 모습을 한 프라이빗뱅커(PB)가 이렇게 말했다. 눈앞에는 ‘펀드 10%, 예·적금 50%’ 등 자산 비중이 표시된 막대그래프가 공중에 떠 있었다. 아바타가 그래프에 손을 갖다대자 펀드 비중이 늘면서 예상 수익률이 자동으로 계산됐다. 이 아바타는 영등포구의 한 지점에 있는 실제 국민은행 PB였다.
○ “가상 영업점, 이벤트로 끝나지 않을 것”
국민은행은 금융권 최초로 지난달 26일 VR와 메타버스 기술을 접목해 가상 영업점 ‘KB 메타버스 VR브랜치’를 선보였다. VR 기기를 쓰고 가상공간에 구현된 은행 지점에 들어가면 아바타로 나타난 직원과 투자성향 분석, 포트폴리오 설계 등 상담을 할 수 있다. 서울 여의도 신관과 ‘KB인사이트(InsighT) 지점’ 두 곳을 방문하면 직접 체험해볼 수 있다.
가상 영업점은 아직 실험 단계(테스트베드)로, 실제 영업점처럼 금융상품에 가입하거나 대출을 받을 수는 없다. 영업점과 인터넷·모바일뱅킹에서 가능한 금융상품 판매가 가상공간에서도 허용되는지 등에 대한 금융당국의 해석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또 기술적 한계 등으로 각 금융사에 있는 개인의 금융정보를 가상공간에서 한데 열람하는 것도 아직까지는 불가능하다. 가상 영업점이 실생활 속으로 들어오기까지 아직 넘어야 할 산이 많은 셈이다.
하지만 은행들은 이 같은 금융서비스 실험이 미래 금융생활의 한 축으로 자리 잡을 것으로 보고 있다. 윤진수 국민은행 테크그룹총괄 부행장은 “메타버스 실험이 단순 이벤트로 끝나지는 않을 것”이라며 “새로운 경험과 기술을 내재화해 미래 금융 변화에 선제적으로 대응할 것”이라고 말했다.
○ 메타버스에서 소상공인 컨설팅, 금융교육도
다른 은행들도 메타버스를 홍보 채널로만 사용하던 것에서 벗어나 상담, 교육 등에 적용하며 고객 접점을 넓히고 있다. 우리은행은 이달 6일 메타버스 공간에 소상공인들이 맞춤 컨설팅을 받을 수 있는 ‘우리메타브랜치’를 열었다.
홈페이지에 접속하면 실제 은행 지점을 본뜬 가상공간이 나타나고, 아바타를 움직여 상담 창구로 가면 음성·화상 대화를 통해 은행 직원과 일대일 상담을 받을 수 있다. 전담 직원이 오전 9시부터 오후 4시까지 정책금융대출, 상권·입지 분석 등 필요한 컨설팅을 해준다.
신한금융희망재단은 VR 기술을 활용한 금융교육 콘텐츠 ‘신한 금융의 고수’를 개발해 초중고교 학생들의 금융교육에 활용하고 있다. 이용자가 VR 기기를 쓰고 직접 은행원이 돼 가상의 고객과 이야기를 나누며 금융 상식을 배워가는 형식이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디지털 금융 기술이 줄어드는 영업점의 대안이자 고객 접점을 확대할 기회가 될 것”이라며 “메타버스, VR 등의 기술은 모바일 속 ‘터치’ 중심의 소통 방식을 ‘대화’와 ‘몸짓’으로 확장시킨다”고 설명했다. 신석영 하나금융경영연구소 연구원은 “글로벌 금융사들은 메타버스 금융 시대를 대비해 VR 등에 특화된 복합 점포를 도입하고 있다”며 “고객 상담이나 실사 등의 영역에서 오프라인과 온라인의 연계가 더 심화될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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