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달 14일 기준금리 결정을 앞두고 중앙은행인 한국은행의 고민이 커지고 있다. 한은은 그동안 내년 1월 추가 기준금리 인상을 강하게 시사해 왔다. 하지만, 섣불리 인상에 나서다가는 회복세를 보이던 경기가 크게 둔화될 수 있는 만큼 오미크론이 실물경제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가 판단에 주요 변수가 될 전망이다.
21일 금융시장에 따르면 한은이 그동안 내년 1분기 추가금리 인상을 강력하게 시사해 온 만큼 추가 금리 인상은 불가피한 상황이지만 내년 1월이냐, 2월이냐를 놓고 한은의 고심이 깊어졌다. 이에 따라 다음 달 14일 열리는 한은 금융통화위원회(금통위)에서 기준금리 인상에 나설 것으로 전망했던 전문가들 가운데 연속 인상 가능성이 낮아졌다고 보는 시각이 많아졌다.
글로벌 공급병목으로 인플레이션 압력이 커지고 있어 금리를 올려야 할 때지만, 오미크론 출현으로 코로나19가 재확산될 경우 살아나고 있는 경제에 찬물을 끼얹을 수 있기 때문이다. 올 3분기 경제성장률도 0.3%로 꺾인 상황이다. 반면 3%를 넘는 소비자물가와 16년 간 늘려온 가계부채 누증 문제를 억제하기 위해 금리인상이 시급하다고 보는 시각도 여전하다.
소비자물가는 고공행진을 지속하고 있다. 물가 상승이 장기간 이어질 경우 중앙은행으로서 ‘인플레 파이터’로서 역할이 불가피하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달 소비자물가는 3.7%를 기록하면서 2개월 연속 3%를 넘어섰다. 이는 지난 2011년 12월(4.2%) 이후 9년 11개월 만에 가장 높은 상승률이다. 1~11월 소비자물가도 2.3% 상승해 물가안정목표인 2%를 넘었다. 물가 오름세가 크게 확대된 것은 국제유가 등 원자재 가격이 큰 폭으로 오른 데다, 코로나19 충격에서 회복되면서 수요측면의 물가상승 압력이 점차 커졌기 때문이다.
한은은 내년에도 2%대를 넘는 물가 상승세가 지속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이주열 한은 총재는 지난 16일 물가 간담회에서 “소비자물가가 상당기간 목표 수준을 상회하면서 올해에 이어 내년에도 2%대를 나타낼 것으로 보인다”며 “높은 인플레이션이 지속되면 가계의 실질구매력을 떨어뜨릴 뿐 아니라 지속가능한 경제성장에 걸림돌로 작용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가계부채도 줄어들고는 있지만 여전히 심각한 상황이다. 가계부채는 2000년대 초반 카드사태 등에 따른 디레버리징(부채축소) 이후 16년간 상승세를 지속하고 있다.
금융당국의 대출 규제와 대출 금리 상승 등의 영향으로 가계대출 증가액은 줄고 있다. 한은에 따르면 지난 11월 말 기준 은행권 가계대출 잔액은 1060조9000억원으로 전달보다 3조원 증가했다. 전달인 10월 증가액(5조2000억원)과 비교하면 증가세는 크게 둔화됐다. 11월 기준 월 증가액으로는 2013년 11월(1조9000억원) 이후 8년 만에 가장 낮다.
반면 코로나19 이후 국내총생산(GDP) 대비 민간과 정부부채는 역대 최대로 증가했다. 한은에 따르면 GDP 대비 민간·정부부채 비율은 2020년 이후 올해 1분기까지 평균 254%로 집계됐다. 이는 역대 최대로 직전 3개년 2017~2019년 평균보다 29%포인트 상승한 수치다.
물가가 급등하고, 가계부채도 심각한 상황이지만 섣불리 돈줄을 죄기도 어렵다. 물가를 고려해 금리를 인상했다가는 경기가 둔화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금리인상에 가장 큰 걸림돌이 되고 있는 것은 우리 경제의 성장세가 둔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한은에 따르면 올해 3분기 실질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은 0.3%로 나타났다. 지난해 1분기 (-1.3%), 2분기(-3.2%) 역 성장한 뒤 3분기(2.2%)부터 5분기 연속 반등한 것이기는 하지만 올해 1분기와 2분기 각 1.7%, 0.8% 성장했던 점에서 볼 때 성장률이 크게 둔화된 것이다.
한은은 올해 성장률 전망치인 4% 달성이 가능하다고 보고 있지만 4분기 경제성장률이 전분기 대비 1.03%를 상회해야 하는데, 오미크론 등 코로나19 재확산으로 쉽지 않다고 보는 시각이 많다. 올해 보다 내년 성장률이 더 큰 문제다. 한은은 내년 3% 달성 목표를 내 놨지만, 차량용 반도체 등에서 글로벌 공급 병목이 길어질 것으로 예상되면서 3% 달성 가능성도 낮아진 상황이다.
한은은 차량용 반도체 가격이 내년에 더 오르는 등 차량용 반도체 공급 차질이 내년 하반기에나 개선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어 성장 전망이 밝지 만은 않다. 이 총재도 “글로벌 공급병목 현상도 당초 자동차용 반도체 등 일부 중간재와 내구제에 국한됐으나 이후 원자재와 물류 등 생산단계 전반으로 확산되면서 예상보다 오랜 기간 지속되고 있다”며 “더욱이 최근 오미크론 등 변이 바이러스의 출현으로 공급망 회복이 더 지연될 수 있다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경기가 완전히 회복되지 않은 상황에서 기준금리를 올리면 경기 회복에 찬물을 끼얹을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국책연구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KDI)은 ‘12월 경제동향’에서 “오미크론 변이 바이러스 확산으로 국내외에서 방역 조치가 강화되고 금융시장도 불안정한 모습을 보이는 등 경기 하방 위험이 확대됐다”고 진단했다. KDI에 따르면 민간 부채가 평균 추세치보다 많은 고(高)부채 국면에서 기준금리가 0.25%포인트 인상되면 경제성장률이 3개 분기에 걸쳐 최대 0.15%포인트 하락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은은 금리 정상화 기조를 계속 끌고 가겠다는 기존 입장에는 변화가 없다고 밝히고 있다. 하지만, 그동안 내년 1월 금리인상을 강하게 시사했던 것에 비해서는 유보적인 입장을 보이고 있다. 지난달 열린 금통위에서도 별도 의견을 개진하지 않는 이 총재를 제외한 금통위원 6명 중 5명이 추가 금리 인상 가능성을 언급했다. 이중 3명은 추가 금리 인상 의지를 강하게 언급했고, 나머지 2명도 인상 필요성을 지적하는 등 매파적 입장을 내놨다.
이 총재는 한 발 물러선 유보적 입장을 보이고 있다. 이 총재는 물가간담회에서 “우리가 움직일 수 있을 때 한발 먼저 움직인 것이 앞으로 통화정책을 운용하는 데 상당한 여지를 줬다”며 “1분기 인상 가능성을 배제하지 말자고 말씀드렸지만, 1월이냐 2월이냐 라고 하는 것은 미리 정해 놓은 것도 아니고 이용 가능한 모든 정보를 종합적으로 보고 판단할 일”이라고 말했다. 코로나 확산세가 커진 만큼 이 영향을 좀 더 지켜보고 결정하겠다는 뜻이다.
한은이 경기 회복과 물가 안정 사이에서 고민이 깊어진 가운데 전문가들은 내년 1분기 인상은 불가피할 것으로 내다봤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현재의 물가 상황으로는 근로자들의 실질 소득을 감소시킬 수 있기 때문에 금리 인상이 불가피한 상황”이라며 “반면 금리를 올리게 되면 성장률이 하락할 수 있어 중앙은행으로서는 ‘딜레마’에 빠질 수 있지만 미 연준의 내년 기준금리 인상 시점이 앞당겨진 상황에서 기준금리의 점진적인 조정은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공동락 대신증권 연구원은 “내년 1월 기준금리 인상 가능성이 높다고는 보지만, 최근 오미크론 변수로 방역조치가 강화되면서 경제활동이 어려워 지는 등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어 한은 입장에서도 딜레마가 커지고 있을 것으로 보인다”며 “다만,미 연준도 긴축 모드로 돌입하고 있어 내년 1월에 기준금리를 인상하지 않더라도 2월에는 올릴 가능성이 높고, 1.25%까지 인상한 뒤 속도조절에 나설 것”이라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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