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00만 명 이상이 가입해 ‘제2의 국민건강보험’으로 불리는 실손 의료보험료가 오르면서 새해 벽두부터 소비자 물가에 빨간 등이 켜졌다.
보험업계와 금융당국은 일부 가입자들의 과잉 진료와 백내장 등 비급여 진료비 급증으로 실손보험 적자 규모가 3조5000억 원에 달해 보험료 인상이 불가피하다고 설명하고 있다. 하지만 농축수산물, 공산품, 유가 등 실생활과 밀접한 품목들의 가격이 지난해 크게 오른 상황에서 실손보험료까지 오르면서 물가 압박이 커지게 됐다. 여기에 4월 전기·가스요금 인상이 겹치고 글로벌 공급망 및 물류 문제가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어 고물가 추세가 당분간 꺾이기 어려울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 새해 심상찮은 물가 고공행진
31일 생명·손해보험협회에 따르면 보험업계는 올해 ‘구 실손보험’(2009년 9월까지 판매)과 ‘표준화 실손보험’(2009년 10월∼2017년 3월 판매) 보험료를 평균 16% 인상하기로 했다. ‘신 실손보험’(2017년 4월∼2021년 6월)은 2020년부터 적용했던 한시적 보험료 할인 혜택을 종료해 할인율(8.9%)만큼 인상된다. 지난해 7월 출시된 4세대 실손보험은 보험료 변화가 없다.
전체 실손보험 가입자 3500만여 명 중 2017년 3월 이전에 가입한 사람이 2700만 명이라 오름 폭을 크게 적용받는 가입자가 많다. 가입자별 인상 시기와 인상 폭은 갱신이 도래하면 보험사가 보내주는 안내장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2017년 3월 이전 가입자는 3∼5년 치 인상률이 한꺼번에 적용돼 고령층의 경우 배 이상 보험료가 오르는 경우도 나올 수 있다.
공공요금도 들썩이고 있다. 전기·가스 등 공공요금은 4월부터 줄줄이 인상된다. 전기요금은 5.6%(4인 가구 기준 월 1950원), 가스요금은 16.9%(월 4600원) 오른다.
어운선 통계청 경제동향통계심의관은 “곡물·원자재 가격, 글로벌 공급망 등의 상황이 크게 완화되고 있다고 보이지 않는다. 완화된다고 해도 (실제 물가 반영까지) 시차가 있어 당분간 상당히 높은 오름세가 지속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 달걀부터 휘발유까지 ‘안 오른 게 없다’
지난해 물가는 정부가 사실상 직접 가격을 통제하는 전기·가스·수도 등을 제외한 대부분의 품목이 올랐다. 농축수산물이 8.7% 올라 2011년 이후 가장 큰 폭으로 올랐다. 달걀(41.3%), 파(38.4%), 사과(18.5%), 돼지고기(11.1%) 등 밥상에 올라가는 품목 가격이 일제히 상승했다.
기름값은 지난해 15.2% 오르며 2008년(19.1%) 이후 최고 상승률을 보였다. 공업제품도 2.3% 올라 2012년(2.8%) 이후 가장 큰 폭의 상승세를 보였다. 서민 가계에 큰 영향을 끼치는 집세도 1.4% 올랐다.
물가 움직임이 심상치 않으면서 정부는 올해 초 최우선 국정 과제로 물가 안정을 꼽고 있다. 2022년 설 민생안정대책을 예년보다 한 주 빠른 설 명절 4주 전에 발표할 계획이다. 한국은행은 새해 추가 금리 인상 시기를 물가 오름세 등을 보며 결정하겠다고 밝혔다. 인플레이션 압력을 막기 위해선 금리를 올려야 하지만 이럴 경우 대출자들의 원리금 부담이 커지는 딜레마가 있어 통화당국의 고민이 크다. 이주열 한은 총재는 “물가 오름세가 예상보다 길어질 가능성은 없는지 잘 살펴보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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