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1월 5~7일(이하 현지 시간) 사흘 간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는 세계 최대 가전·IT(정보통신) 전시회 CES 2022가 열렸습니다. 눈으로 직접 최신 제품과 기술 동향을 확인할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었습니다. 짧은 일정과 부족한 지면 사정상 기사로 다 풀어내지 못한 CES의 이야기를 몇 가지 해보려고 합니다.
첫 번째는 일본 소니의 전기차 시장 진출을 둘러싼 이야기입니다.
일본 소니는 CES의 터줏대감 중 하나입니다. 지금은 그 위세가 예전만 못하다고 하지만, 여전히 많은 소비자와 팬층을 보유한 브랜드 중 하나죠. CES를 관람하기 위해서는 주최 측이 발행한 ‘뱃지(명찰)’를 받아야 하는데, 이 때 함께 나눠주는 녹색 목걸이에는 ‘소니’ 브랜드 로고가 선명히 새겨져 있기도 했습니다. (참고로, 브랜드 컨설팅업체 인터브랜드가 발표한 2021년 글로벌 100대 브랜드에서 삼성전자는 5위, 소니는 51위입니다.)
기업들마다 충격적이고 이목을 끄는 발표가 이어지는 곳이 CES지만, 올해 CES에서 단연 이슈라고 불릴만한 건 왕년의 가전 황제 소니의 전기차 시장 진출입니다. 소니는 ‘소니 모빌리티’라는 새 회사를 세운다고 발표했습니다. 4일 프레스 콘퍼런스에 요시다 켄이치로 소니 그룹 회장이 직접 나서 “소니는 모빌리티를 다시 정의할 좋은 위치에 있다고 믿는다. 올해 봄 판매 목적의 전기차 시장에 진출하겠다”고 밝혔죠.
외신 평가는 대체로 ‘놀랍다’입니다. 사실 소니는 2020년 CES에서 전기차 콘셉트카 ‘비전 S-01’을 이미 선보였습니다. 하지만 당시에는 전기차 시장 진출 여부를 확실히 밝히지 않았죠. 2년 만에 다시 열린 CES에서 소니는 세단 형태의 비전S-1과 함께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형태의 비전 S-02를 함께 전시하며 전기차 시장 진출을 선언했습니다.
이 발표 덕분인지 소니 전시관은 CES 기간 내내 관람객으로 북적였습니다. 일반 관람객은 물론 기업 관계자, 언론인 할 것 없이 소니가 전시한 두 콘셉트카를 찍으려 몰려들었습니다. 소니 전시관은 개방된 구조에 무채색 배경과 조명을 활용해 공간감을 극대화했는데, 이를 통해 관람객들이 전기차 등 제품에 오롯이 집중할 수 있도록 꾸며놨습니다.
외신과 전문가들이 놀랍다고 평가한 이유는 두 차량이 당장 양산에 나서도 될 만큼 상당한 수준의 완성도를 갖췄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일단 스펙이 상당히 구체적입니다. 소니 홈페이지를 살펴보면 비전S-1의 경우 무게 약 2350kg에 최고 속도 시속 약 240km, 비전S-2는 무게 약 2480kg에 최고 속도 시속 180km 이상으로 소개돼 있습니다. 두 차량 모두 200킬로와트(kW) 용량 모터 2개를 탑재하고 있습니다. 다만 전비, 1회 충전 시 주행거리 정보는 없습니다.
디자인 측면에서도 상당한 완성도를 가지고 있습니다. 소니 콘셉트카를 둘러본 현대차 임원은 “소비자들이 좋아할 만한 최신 디자인을 갖췄다. 무엇보다도 소니 전기차라면 뭔가 특별할 것이란 기대를 품게 만드는 점이 두렵다”고 했습니다. 정의선 현대차 회장도 소니 전시관에서 이 차량들을 한참 바라보기도 했습니다.
무엇이 소니 전기차를 특별하다고 느끼게 할까요.
여러 요소들이 있겠지만, 아무래도 소니가 가진 ‘엔터테인먼트’ 기업으로서의 강점 때문일 겁니다. 소니의 재무제표를 살펴보면 매출 비중이 가장 높은 부문은 바로 게임입니다. 회계연도 2020년 기준(소니는 3월 결산법인으로, 2020년 4월부터 2021년 3월까지 집계입니다) 매출의 29.0%가 게임 및 네트워크에서 나왔습니다. 이어 가전(21.5%), 금융(18.4%), 이미지 및 센싱(10.3%) 등의 순입니다. 가장 최신형 콘솔 게임기 플레이스테이션5는 워낙 잘 만든 제품이기도 하지만, 코로나19로 인한 실내 생활 증가라는 날개까지 달며 사상 최대 매출을 경신하는 중이죠. CES 소니 전시관의 플레이스테이션 앞에도 관람객이 끊임없이 이어졌습니다.
소니의 전기차는 ‘움직이는 플레이스테이션’이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플레이스테이션 같은 최신 콘솔게임기는 대부분 네트워크를 통해 클라우드에 접속해 게임을 즐기는 형태를 띄고 있습니다. 이동통신이 닿는 곳이면 어디서든 게임을 할 수 있다는 겁니다.
레이싱 게임이 있다고 가정해보죠. 캠핑을 위해 세워둔 소니의 운전대는 게임용 운전대로, 넓은 내부 스크린은 게임용 화면으로 곧장 전환될 겁니다. 마치 오락실에 있는 자동차경주 게임기처럼요. 소니가 가진 콘텐츠 역량이 엔터테인먼트 공간으로 각광받고 있는 전기차의 미래와 결합해 커다란 시너지를 낸 겁니다.
CES 2022 기간 동안 소니 전기차에 기대는 잔뜩 부풀어 올랐습니다. 소니의 전기차 시장 진출이 전해진 5일 일본 도쿄 증시에 상장된 소니 주가는 3.7% 상승했습니다.
하지만 다음날 바로 6.9% 떨어졌습니다. 같은 날 일본 닛케이평균주가 하락률이 2.88%였던 것과 비교하면, 상대적으로 낙폭이 큰 건데요. CES가 끝나고 사람들의 머리가 차가워지면서 현실적인 질문들이 등장한 영향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첫 번째는 정말 소니 브랜드 완성차를 생산할 것이냐는 겁니다.
신설할 소니 모빌리티는 완성차 분야에 진출할지, 아니면 주요 부품 공급사로 남을지 확신하기 이르다는 신중론이 시장에 남아 있습니다. 테슬라처럼 신생 전기차 제조사의 길을 걸을지, 삼성전자나 LG전자가 전장사업을 강화하듯 소니 역시 자사의 강점인 이미지 센서, 오디오, 네트워크 기술을 앞세워 완성차 업체와 협력하는 전략을 택할지 미지수라는 겁니다. 이는 소니가 그 동안 자동차 생산에 대해 모호한 태도를 취해왔기 때문에 나타나는 반응이기도 합니다. 판매 예상 시점도 공개하지 않았죠.
다만 콘셉트카를 두 종류나 내놓은 점, 콘셉트카의 완성도가 상당히 높다는 점을 근거로 소니가 직접 생산할 것으로 보는 의견이 우세한 편입니다. 전기차의 뼈대인 플랫폼을 독자적으로 개발해 보유하고 있다는 점도 이 같은 전망에 힘을 보태고 있죠.
두 번째는 어떻게 양산할 거냐는 겁니다.
미국 뉴욕타임스는 “투자자들은 소니가 전기차 생산을 아웃소싱할지, 아니면 수백 만 달러를 들여 제2의 테슬라가 될지 궁금해한다”고 지적했습니다.
우선 아웃소싱 가능성. 소니가 제조업 강자라고 해도, 자동차 생산에 있어서는 경험이 없습니다. 이 때문에 아웃소싱을 하게 되면 생산라인 확보를 위해 큰 자금을 들이지 않아도 되고, 부품 공급망 관리와 확보 같은 골치 아픈 문제에서도 상대적으로 자유로울 수 있죠. 애플이 아이폰 제조를 대만 폭스콘에 맡기는 것처럼요. 다만 아웃소싱 파트너를 확보할 수 있을지가 관건입니다. 전기차 아웃소싱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후보 1순위로 거론되는 폭스콘의 손을 잡으려는 경쟁은 치열합니다. GM, 현대차 같은 기존 완성차 업체가 강력한 경쟁사인 소니의 제품을 좋은 조건에서 대신 생산해줄 가능성도 낮습니다.
다른 하나는 테슬라처럼 자체 생산라인을 확보하는 길. 테슬라는 모델S 판매를 구상할 때부터 대량 생산을 염두에 두고 미국 캘리포니아주 프리몬트의 GM 생산 공장을 사들여 활용했습니다. 이후 지속적으로 공장을 지으면서 지난해 기준 연간 약 100만 대, 올해는 200만 대까지 늘어날 것으로 예상되고 있죠. 소니가 직접 양산을 결정한다면 공장을 확보하고 가동하는데 적잖은 시간이 소요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로이터통신은 ‘소니의 도박’이라며 수년 간 적자의 늪에서 허덕인 테슬라의 역사를 끄집어냈습니다.
소니의 행보는 애플을 떠올리게 합니다.
전기차 시장에서 초미의 관심사는 애플이 내놓을 애플카죠. 미국 뉴욕타임스는 소니의 전기차 진출 소식을 다루며 “애플은 수년 동안 전기차 시장 진출을 모색해왔지만, 지금까지 구체적인 계획을 내놓지 않고 있다”고 했습니다.
다만 대만 매체에서 올해 9월 애플이 애플카 생산을 발표할 것이란 전망을 내놓는 등 기대감은 여전히 커져가는 상황입니다. 미국 나스닥시장에 상장된 애플은 CES를 앞둔 3일 전세계 기업 최초로 시가총액 3조 달러를 돌파했습니다. (이후 하락세가 이어지며 종가 기준으로 1주일 사이 5.4% 하락했습니다) 여러 원인이 있지만 애플카에 대한 기대감도 적잖이 반영됐다는 분석이 나옵니다. 국내 주식시장에서도 애플카 관련 소식이 전해질 때마다 수혜주로 꼽히는 종목들의 주가가 급등락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소니를 향한 기대와 우려는 여러 부분에서 애플과 겹쳐 보입니다. 물론 두 회사의 구체적인 상황은 다릅니다. 하지만 자동차 산업에 새로 진입하려는 회사들이 공통적으로 마주할 수밖에 없는 고민들이기도 합니다.
과연 우리는 소니카, 애플카를 볼 수 있을까요. 현대차를 포함해 일본 도요타, 미국 GM 등 기존 완성차 업체들의 대응 전략은 어떻게 전개될까요. 그리고 한국의 대표기업 삼성전자와 LG전자는 전기차 시대를 맞아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요. CES 2022는 이를 지켜보는 재미를 더욱 키워놓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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