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를 위한 성장 ‘넷 포지티브’]〈2〉기후변화 해결사로 나선 기업들
1부 기업, 더 나은 세상을 향하다
생산량이 들쭉날쭉한 풍력·태양광 에너지를 바닷속 대형 튜브에 모아뒀다가 필요할 때 댐처럼 전기를 만들어 꺼내 쓴다. 작물 재배시설을 실내에 아파트처럼 쌓아올려 탄소배출 문제를 해결한다.
인류의 생존을 위협하는 기후변화 문제를 기술 혁신으로 해결하려는 기후기술 기업이 주목받고 있다. 첨단기술의 경연장인 세계 최대 전자·정보기술(IT) 전시회 ‘CES 2022’에서도 기후기술은 단연 화두였다. 디지털 기술의 본산인 미국 실리콘밸리에선 ‘기술로 기후 문제를 해결한다’는 야심 찬 프로젝트에 돈이 몰리고 있다.
기후기술 기업들은 생산 활동으로 만들어지는 탄소배출 문제 해결을 경영목표로 한다는 점에서 기존 기업의 친환경 경영과 다른 평가와 관심을 받고 있다.
○ 에너지를 수압으로 저장하고 설치 쉬운 지붕용 태양광 발전 개발
네덜란드 기업 오션그레이저는 7일(이하 현지 시간)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막을 내린 ‘CES 2022’에서 단 21개 기술에만 주어진 최고 혁신상을 받았다. 지속가능성 및 친환경디자인·스마트에너지 분야에선 유일한 수상 기업이다.
풍력·태양광은 친환경 대안 에너지로 꼽히지만 기후 등의 상황에 따라 발전량이 불안정하다. 대용량 에너지저장장치(ESS)에 에너지를 저장할 수 있지만 ESS가 발생시키는 폐기물, 오염 문제는 해결이 어렵다. 오션그레이저는 대용량 ESS 없이도 저렴하고 쉽게 에너지를 저장할 수 있는 혁신적인 기술을 찾아냈다. 해상 풍력·태양광 발전시설의 해저에 ‘오션배터리’로 불리는 장치를 설치했다. 에너지가 많이 생산될 때는 전기로 물을 끌어올려 튜브에 고압으로 저장한다. 바람이 불지 않거나 태양빛이 없을 때 물을 다시 아래로 내려보낸다. 수력발전처럼 위치에너지를 이용해 필요할 때마다 전기를 생산하기 위해서다.
5일 CES 현장에서 만난 막스 더스마 오션그레이저 최고운영책임자(COO)는 “기후 위기는 인류 보편의 문제이기 때문에 광범위한 지역에서 쉽게 적용 가능한 솔루션이 필요하다”며 “신재생에너지를 효율적으로 저장할 수 있는 기술에 투자자들의 관심이 높다”고 말했다.
태양광 발전을 대중화할 수 있는 기업도 주목받았다. ‘모든 지붕에서 에너지(Energy from every roof)’라는 목표를 내건 GAF에너지는 옥상 태양광 발전의 저변을 획기적으로 넓힐 수 있는 기술을 내놓았다. 세계 최초로 못을 박을 수 있는 지붕용 태양광 패널 ‘팀버라인 솔라’가 무기다. 설치를 위해 전문 인력과 장비가 필요했던 기존 시설과 달리 누구나 적은 비용으로 지붕에 손쉽게 설치할 수 있다.
○ 물 사용 95% 줄이는 농업
혁신적인 기후기술은 농업 같은 전통 산업에도 대안을 제시하고 있다. 미국 기업 ‘그로브’의 ‘올림푸스 로보틱 타워’는 실내 수직농장의 생육판에서 동물사료 작물을 길러낸다. 센서를 통해 온도, 습도, 물 흐름, 생장률 등을 측정해 자동으로 조절한다. 훨씬 좁은 면적에서 기존 대비 5%의 물만 사용하면서도 같은 양의 사료를 생산할 수 있다. 스티브 린즐리 그로브 최고경영자(CEO)는 “동물을 먹이기 위해 너무 많은 땅과 물을 사용하고 있다”며 “농업기술 혁신을 통해 기후변화에 대응하고 식량·사료 생산의 지속가능성도 확보할 수 있다”고 밝혔다.
프랑스 스타트업 ‘아그로브’는 도시주민을 위한 수직정원 ‘라 파르셀’을 공개했다. 이 회사의 프로젝트·사회적책임 담당인 셀린 피코트 씨는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최근 기술 업계가 환경제어식 농업에 주목하고 있다”며 “탄소배출을 줄이고 물 낭비를 막는 동시에 가축 사육방식은 간소화하는 방법”이라고 설명했다.
오충현 동국대 바이오환경과학과 교수는 “탄소저감의 필요성이 커지고 새로운 첨단 기술이 빠르게 등장하고 있어 기술 혁신으로 기후 문제를 풀어내려는 시도는 자연스레 더 많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기후기술’ 벤처에 유입 투자금, 8년새 1조 →19조원
기후기술 기업 우르살레오 CEO, “에너지 소비 30%가 빌딩… 줄여야”
“넷제로(Net Zero·탄소중립)라는 시대적 흐름 속에서 무엇을 기여할 수 있을지 생각하면서 창업에 나섰다.”
실리콘밸리의 기후기술 기업인 우르살레오의 존 버튼 최고경영자(CEO)는 지난해 12월 21일 동아일보와의 화상인터뷰에서 이같이 말했다. 우르살레오는 ‘디지털 트윈’(현실세계와 똑같은 가상세계) 기술로 창업한 스타트업이다. 현실세계와 똑같은 빌딩, 대학, 공장 등을 가상공간에 구축한다. 이를 통해 현실공간에서 에너지가 어떻게 소비, 활용되는지 측정한다. 디지털 기반으로 실시간 에너지 소비량을 시각화해 효율적인 에너지 관리를 돕는 것이다.
버튼 CEO는 소형 반도체 등 하드웨어 업계에서 30년 동안 일하다 기후기술의 미래 가능성을 보고 2017년 창업에 나섰다고 했다. 이 회사에 관심을 가진 투자자들로부터 최근 200만 달러의 투자금을 유치했다. 버튼 CEO는 “전 세계 에너지 소비의 30% 이상이 빌딩 부문에서 발생하기 때문에 건물의 에너지 사용을 줄이는 것은 필수적이다.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결합하는 방식으로 ‘넷제로’ 실현에 나서는 중”이라며 “기후변화는 우리 삶을 크게 변화시키고 있고 어떻게 대응하느냐에 미래가 달려 있다”고 강조했다.
글로벌 혁신의 상징인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기후기술 스타트업이 주목받고 있다. 기후예측, 탄소배출 관리, 정밀농업 등 다양한 비즈니스 모델을 통해 기후변화에 대한 해법을 제시하며 벤처캐피털(VC) 자금을 끌어 모으고 있다.
벤처캐피털 관련 전문기관 피치북에 따르면 세계적으로 기후기술과 관련된 벤처기업에 유입된 투자금은 2012년 10억 달러(약 1조2000억 원)에서 2020년 161억 달러(약 19조4000억 원)로 증가했다. 지난해엔 상반기(1∼6월) 투자액만 142억 달러(약 17조1000억 원)에 이를 것으로 추산된다.
실리콘밸리에서는 다양한 기후기술 분야에서 수천억 달러의 투자를 유치해 ‘유니콘 기업(기업가치 1조 원 이상의 비상장기업)’ 수준의 평가를 받는 스타트업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미국 샌프란시스코에 있는 내추럴캐피털거래소(NCX)는 ‘산림탄소 거래시장’이라는 새로운 개념을 제시해 마이크로소프트(MS) 등으로부터 2200만 달러(약 264억 원)의 투자를 유치했다. 기업이 나무를 심거나 보호하는 사업에 투자해 자신의 탄소배출량을 상쇄하는 시스템이다. NCX는 산림의 탄소흡수 능력을 측정하기 위해 인공지능(AI) 프로그램과 위성 이미지를 활용한다. 월스트리트저널에 따르면 MS는 NCX를 통해 340만 달러 규모의 상쇄권을 구입했다.
스타트업 케레스 이미징은 항공사진과 AI 기반의 이미지 처리 기술을 적용해 농작물의 영양과 수분 상태를 살펴볼 수 있는 기술을 갖고 있다. 농작물을 키우는 데 투입되는 자원을 최적화해 탄소배출을 줄이는 정밀농업 기술이다. 지난해 말에만 2300만 달러(약 276억 원)의 신규 투자를 유치했다.
켈리 벨처 실리콘밸리뱅크 에너지·자원 혁신 담당은 “신재생에너지와 에너지 저장 기술이 성숙기에 도달해 규모의 경제를 달성한 상황”이라며 “이런 기술에 유동성을 공급하는 흐름도 커지고 있기 때문에 기후기술의 지속적인 성장과 혁신을 낙관적으로 보고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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