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양수산부와 공정거래위원회가 해운사들의 불법 공동행위(담합)에 대해 공정위 조사·제재 권한을 현행대로 두는 방안에 잠정 합의했다. 다만 해수부에 신고된 공동행위에 대해선 공정거래법 적용을 배제하기로 했다.
수출입 업계는 그동안 ‘담합으로 운임 상승이 우려된다’며 해운사 공동 행위에 대한 공정거래법 적용 배제에 반대해 왔다. 이 때문에 담합에 대한 공정거래법 적용을 유지하는 쪽으로 해운법이 고쳐지면 운임 상승 우려 및 담합에 따른 불확실성이 줄어들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하지만 해운업계에선 ‘세계 주요국에서 해운 공동행위는 합법적으로 인정되고 있다’며 공정위 권한 유지에 반발하고 있다.
11일 공정위가 국회에 제출한 해운법 개정안 현황 자료에서 공정위는 “해수부에 신고된 공동행위는 공정거래법 적용을 배제하는 한편, 미신고 공동행위 등 불법 공동행위는 공정거래법을 적용하는 방향으로 협의하고 있다”고 밝혔다. 공정위 고위 관계자는 “양 부처가 큰 틀에서 해운법 개정안에 합의했다. 적법하게 진행된 공동행위에 대해서 공정거래법을 적용하지 않기로 했다”라고 했다.
현행 해운법은 해운사들이 운송료, 선박 배치, 화물 적재 등의 계약에 대해 공동행위를 인정하고 있다. 다만 이런 공동행위를 합법으로 인정받으려면 화주 단체와의 사전 협의, 해수부 신고, 자유로운 입·탈퇴 등의 요건을 충족해야 한다. 이 절차가 지켜지지 않으면 불법 담합이 될 수 있다. 두 부처 합의에 따라 향후 공정거래법이 적용되는 요건은 법에 명문화될 가능성이 높다.
해운법 개정안 논란은 공정위가 국내외 선사에 8000억 원 규모의 과징금을 부과하는 심사보고서를 통보하면서 불거졌다. 공정위는 지난해 5월 HMM, SM상선, 팬오션 등 국내 선사 12곳과 해외 선사 11곳 등 총 23개 선사가 2003∼2018년 한국∼동남아시아 노선 운송료를 담합한 것으로 봤다.
과징금 부과가 현실화될 가능성이 커지자 해운업계는 강하게 반발했고, 부산지역 정치권을 중심으로 해운법을 개정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농해수위)는 지난해 9월 법안심사소위원회를 열고 해운사 공동행위에 대해 공정거래법 적용을 완전히 배제하는 해운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9월 농해수위 법사소위를 통과한 개정안대로라면 해운사가 운임 인상을 위해 불법 담합을 해도 공정위 제재가 불가능하다. ‘담합을 봐줄 수 있다’는 논란이 커지자 공정위는 해수부와 협의에 나섰고 ‘불법 담합에 공정위 조사·제재 권한 현행 유지’로 협의 가닥을 잡았다.
공정위 고위 관계자는 “농해수위에 계류 중인 현 개정안 대신 두 부처가 합의한 개정안이 반영될 수 있도록 할 것이다. 일단 23개 선사에 대한 제재 여부를 결정한 뒤 입법 작업을 거칠 것”이라고 했다.
신영호 백석대 경상학부 교수는 “이미 현행법에도 신고 절차를 지킨 해운사 공동행위에 대해선 공정위도 인정하고 있지만, 가격(운임)에 대한 공동행위는 공정위와 해수부, 해운사 등 이해 관계자들 간 해석이 다르다. 공동행위를 어디까지 인정하느냐에 따라 시장에 미치는 영향이 달라질 것”이라고 했다.
한편 해운법 개정안 논란을 촉발한 23개 해운사에 대한 공정위 행정 처분은 12일 전원회의에서 결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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