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랜저-쏘나타-아반떼 등
차량 설명서에 “순정 써야 안전”… 해외 판매 차량엔 표시 달라
공정위 “성능 저하 입증 안돼”… 사측 “공정위 조치 적극 수용”
현대자동차와 기아가 자사가 제작한 순정부품을 쓰지 않으면 고장이 날 수 있다는 식으로 거짓·과장 광고를 한 사실이 공정거래위원회에 적발됐다. 공정위는 현대차·기아에 경고 처분을 내렸다.
공정위는 현대차·기아가 자동차부품 품질이나 성능을 부당하게 표시한 행위에 대해 경고 조치하기로 했다고 12일 밝혔다. 공정위에 따르면 현대차·기아는 2012년 9월부터 2020년 6월까지 제작·판매한 차량 취급설명서에 ‘차량에 최적인 자사 순정부품을 사용해야만 안전하고 최상의 성능을 유지할 수 있다’, ‘비(非)순정부품 사용은 차량 성능 저하와 고장을 유발할 수 있다’고 표시했다. 해당 차종은 그랜저, 쏘나타, 아반떼, G70 등 현대차 23종과 레이, 모닝, K3 등 기아 17종이다.
순정부품은 완성차를 제작할 때 사용하는 부품과 동일한 부품이다. 현대차와 기아가 쓰는 순정부품은 계열사인 현대모비스가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 방식으로 하청업체에서 납품받아 공급하고 있다. 국토교통부가 지정한 인증기관에서 OEM 부품과 품질이 유사한 것으로 인증받은 인증대체 부품, 규격품 등은 비순정부품으로 불린다.
공정위 조사 결과 비순정부품은 안전·성능 시험이나 기준을 통과해 품질이나 성능이 순정부품에 비해 떨어진다고 보기 어려운 것으로 나타났다. 더욱이 현대차·기아는 비순정부품을 사용했을 때 성능이 떨어진다는 사실을 객관적으로 실증하지 못한 것으로 조사됐다. 표시광고법에 따르면 사업자는 자기가 한 표시·광고 중 사실과 관련한 내용은 실증할 수 있어야 한다.
공정위는 객관적인 실증 없이 비순정부품의 품질이나 성능이 떨어지거나 위험하다고 알린 현대차·기아의 행위가 거짓·과장으로 인정된다고 판단했다. 공정위 관계자는 “소비자의 선택권을 방해하고 합리적인 부품 구매 결정을 제한한 것”이라고 했다.
현대차와 기아는 미국 등 해외에서 판매하는 차량에는 이런 표시를 하지 않아 국내 소비자만 호구로 삼은 것 아니냐는 비판도 나온다. 해외 차량에는 ‘모조품이나 위조품, 불량품을 쓰면 성능이 떨어지거나 고장 날 수 있다’는 정도만 표시됐다.
이번 조치로 소비자들의 부품 수리비 부담이 줄 것으로 예상된다. 통상 규격 시험을 통과한 비순정부품 가격은 순정부품 대비 절반가량 저렴하다. 공정위에 따르면 아우디나 BMW 등 수입차 대표 차종 범퍼의 경우 비순정부품이 순정보다 59% 저렴하다.
현대차그룹은 공정위의 조치를 적극 수용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2018년 11월 이후에 나온 신차에 취급 설명서부터 해당 문구를 수정 중이었는데 일부 수정이 완료되지 못했다는 설명이다.
다만 소비자들이 당초 설계와 맞지 않는 부품으로 튜닝했다가 차의 성능이 저하되면 책임 소재를 명확히 밝히기 어렵다는 우려도 나온다. 업계 관계자는 “각사 서비스 수리센터에서 자사 순정 제품을 쓰도록 추천하는 게 현실”이며 “개선 방향이 현실과 너무 동떨어지면 오히려 혼란이 가중될 수 있다”고 했다.
세종=김형민 기자 kalssam35@donga.com
김재형 기자 monam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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