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역 항암제는 3세대 암 치료법이다. 인체의 면역체계를 활성화해 면역세포가 암세포를 공격하는 방식으로 작동한다. 1세대 치료법인 화학 항암제나 2세대 표적 항암제와 달리 항암제의 부작용을 줄이고 치료 효과를 극대화할 것으로 기대를 모았지만 암 정복은 아직 갈 길이 멀다. 면역 항암제로 면역체계가 과도하게 활성화할 경우 면역세포가 암세포뿐만 아니라 정상세포도 공격하는 면역질환 증상이 나타나는 부작용이 있기 때문이다.
과학자들은 면역세포 활성화 효과를 극대화하는 동시에 정상세포를 공격하지 않는 면역 항암제 연구를 이어가고 있다.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 연구진은 면역 항암제를 투여할 때 나타나는 면역질환 증상을 억제하면서 면역세포를 효율적으로 자극하는 단백질을 표적인 암세포에 직접 전달하는 방법을 개발했다고 국제 학술지 ‘네이처 바이오메디컬 엔지니어링’에 10일(현지 시간) 공개했다. 국내에서도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연구진이 면역세포를 효과적으로 활성화시키는 나노 입자를 개발하는 등 면역 항암제 부작용을 줄이고 효과를 높이기 위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 ‘사이토카인’ 제어해 부작용 줄이고 효과 높여
면역체계를 자극하는 약물을 활용하면 면역세포를 활성화시킬 수 있지만 면역세포 과활성으로 발생하는 염증성 ‘사이토카인’ 같은 치명적인 부작용이 생길 수 있다.
사이토카인은 신체의 면역체계를 제어하고 자극하는 신호물질로 사용되는 당단백질이다. 면역세포인 대식세포와 백혈구의 일종인 T림프구 등에서 분비돼 암세포를 공격하는 T세포를 활성화하는 역할을 한다. 인터류킨과 인터페론이 대표적인 사이토카인 단백질이다.
대럴 어바인 MIT 코크통합암연구소 부소장 연구팀은 사이토카인인 ‘인터류킨-12(IL-12)’를 제어해 부작용을 줄이는 방법을 연구하고 있다. 2019년 연구에서 콜라겐 결합 단백질에 IL-12 단백질을 붙여 종양으로 직접 전달하는 데 성공했다. 종양 표면에서 흔히 발견되는 콜라겐에 콜라겐 결합 단백질이 붙으면서 IL-12도 종양에 결합하게 되는 원리다. 이 같은 방식으로 면역세포 과활성에 따른 염증 반응을 줄이고 종양 표면의 T세포만 집중적으로 활성화해 항암 치료 효과를 높이는 것이다.
연구진은 이번 연구에서 사이토카인이 종양에 훨씬 더 강하게 결합하도록 콜라겐 결합 단백질을 수산화알루미늄으로 대체하는 방법을 개발했다. 수산화알루미늄은 백신의 면역반응을 높이는 보조제로 종종 활용되는데 마이크로미터(μm·100만분의 1m) 수준으로 제어가 가능한 게 장점이다. 이 방법을 이용한 면역 항암제를 암에 걸린 실험 쥐에 투여한 결과 종양이 50∼90% 제거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어바인 부소장은 “사이토카인인 IL-12를 종양에 직접 전달하는 것은 면역 항암제뿐만 아니라 면역체계를 자극하는 백신이나 치료제 등 모든 약물에 적용될 수 있다”며 “이번에 개발한 기술에 대한 특허를 출원했으며 올해 안에 임상시험을 시작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 면역세포 피하지 못하게 하는 기술도 속속 나와
종양은 발달 정도에 따라 대표적인 면역세포인 T세포를 비롯해 주변 면역세포를 무력화시키는 물질을 분비한다. 면역세포 뒤로 자신의 정체를 숨기는 것처럼 면역체계를 약화시키면서 성장하는 것이다. 이 같은 이유로 면역 항암제는 일부 암 환자에게만 효능을 보이는 한계가 있다.
김인산 KIST 책임연구원은 2020년 여러 암 종류에서 면역세포를 효과적으로 활성화시키는 나노 입자를 개발했다. 연구팀은 일부 암 환자에게만 효능을 보이는 면역 항암제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엑소좀에 주목했다. 엑소좀은 세포가 방출하는 나노미터 크기의 입자로 혈액 응고나 세포 간 신호 전달, 폐기물 관리 같은 과정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연구팀은 엑소좀을 이용해 면역세포가 암을 적(敵)으로 인지하도록 만들었다. 엑소좀 나노입자를 이용한 실험에서 유방암과 대장암 등 여러 종양 모델에 항암 효과가 확인됐다. 연구팀은 “엑소좀은 산성을 띠는 암세포와 특이적으로 융합해 암세포 표면에 표적 신호를 만든다”며 “표적 신호가 만들어진 암세포는 면역세포로부터 더 이상 숨지 못한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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