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택배업계 1위 CJ대한통운에서 발생한 민주노총 전국택배노조 CJ대한통운본부의 파업이 3주째 이어지며 장기화하고 있다. 설 택배대란에 대한 우려가 커지는 가운데 CJ대한통운과 노조는 여전히 별다른 소통없이 팽팽한 기싸움을 이어가고 있다.
택배노조 CJ대한통운본부 소속 조합원 1650명은 지난달 28일을 기해 총파업에 들어갔으며, 17일로 3주(21일)를 꽉 채웠다. 파업참여자는 CJ대한통운 전체 택배기사 2만명의 8% 가량이다. 이번 파업으로 인한 배송차질은 파업 초창기 일 최대 45만건에서 최근 10만건 후반대로 줄어든 것으로 알려졌다.
CJ대한통운본부는 지난 14일부터 100인 단식농성에 돌입했다. 설 배송대란을 막기 위해 17일 오후 1시까지 ‘72시간 공식대화’를 제안했다. 하지만 CJ대한통운 측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CJ대한통운본부가 교섭해야 할 대상은 자신들이 아닌 대리점이라고 보고 있기 때문이다.
업계는 CJ대한통운과 택배조노가 ▲특수형태근로종사자라는 직역의 특성 ▲택배요금 인상분에 대한 배분 비율 ▲택배 분류작업 투입 여부에 대한 다른 시선을 갖고 있어 파업이 장기화하고 있다고 분석하고 있다.
◆ 한 차례도 교섭 안해…“교섭대상 아냐” vs “책임 회피”
업계와 노조 등에 따르면 CJ대한통운과 전국택배노조 CJ대한통운본부는 파업이 20일을 넘어서는 상황에서도 단 한 차례도 공식 교섭을 갖지 않았다. CJ대한통운이 전국택배노조 CJ대한통운본부를 교섭대상으로 보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택배업계와 택배기사는 직고용 관계가 아니다. CJ대한통운은 택배대리점과 계약을 맺고, 택배대리점은 다시 개인사업자인 택배기사와 계약을 체결해 택배를 소비자들에게 배송한다. 이 때문에 원청인 택배사와 택배기사 사이에는 명시적 고용관계는 물론 계약관계도 없다.
택배기사는 대부분 개인사업자로 ‘특수형태근로종사자’로 분류돼 ‘노동3권’을 보장받는다. 다만 노조는 노동3권을 행사할 ‘사용자’가 누구인지에 대한 입장은 다르다.
CJ대한통운 측은 노동관계법이 정한 틀 안에서 노동조합을 인정하고 있으며, 60년 역사를 가진 ‘CJ대한통운 노동조합’과 매년 임단협을 체결하고 있다는 입장이다. 기존 대법원 판례와 행정 해석에 따르면 단체교섭 대상인 실제 사용자가 되기 위해서는 명시적·묵시적 근로 관계가 있어야 한다. 택배사들은 이를 이유로 택배노조와 교섭할 이유가 없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반면 택배노조는 실질적 사용자인 CJ대한통운이 나서야 한다고 반박한다. 노조 관계자는 “우리 노동자들은 다 CJ옷을 입고, CJ로고를 단 택배차를 몰고 CJ에서 내려오는 물량을 배송하고 있다”며 “실질적으로 전속돼 일하고 있는 것인데, 파업이 이렇게 장기화하는 상황에서서 CJ대한통운은 대화에 나서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전국택배노조가 노동3권을 행사할 사용자가 누구인가에 대해서는 현재 법적 다툼이 진행되고 있다. 지난해 6월 중앙노동위원회는 택배노조가 CJ대한통운을 상대로 제기한 ‘단체교섭 거부’의 부당노동행위 구제신청을 인용하며 “CJ대한통운이 대리점주와 함께 단체교섭에 응할 의무가 있다”고 판정했다. CJ대한통운은 이에 불복하고, 행정소송을 제기한 상태다.
고용부는 지난해 10월 이에 대해 “소송이 진행 중인 상황에서 중노위 판정만으로 원청의 사용자성을 인정하는 것은 신중할 필요가 있다”는 입장을 나타냈다. 이는 판결 전 중앙노동위의 인용만으로 CJ대한통운이 택배기사들과 교섭을 할 사용자라는 것을 인정해서는 안 된다는 뜻으로 해석됐다. 업계 관계자는 “소송 진행이 지지부진한 상태”라며 “소송의 특성상 짧은 기간 내에 마무리되기 힘들 것”이라고 설명했다.
◆ “140원 인상·절반은 기사몫” vs “170원 인상·60% 이상 사측이”
양측은 CJ대한통운이 택배기사 과로사를 예방하기 위한 사회적 합의를 이행하기 위해 인상한 택배요금의 규모와 배분비율에 대해서도 현격한 시각차를 보이고 있다.
노조는 택배기사 과로사를 예방하기 위해 지난 6월 마련한 사회적 합의에 따라 택배 요금을 170원 인상했으나, 사측이 이중 56원만 합의 이행비용으로 사용하고 나머지 3000억원 가량을 추가 이윤으로 챙겼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CJ대한통운은 합의 체결 전인 지난해 4월 작업환경 개선·첨단기술 및 설비투자·미래투자 재원 확보 등을 이유로 택배비를 인상했으며, 실제로 오른 금액은 140원 정도이고, 이중 절반인 70원 가량이 택배기사 수수료로 배분됐다고 반박했다.
택배요금 가이드라인은 250원 인상됐지만, 택배요금은 공급자가 정하는 것이 아니라 입찰 형태로 정해지기 때문에 실제 인상폭은 140원에 그쳤다는 설명이다.
노조는 “원래 목표액이 250원이었는데, 예전에는 실질 상승분이 170원이라고 했다. 그런데 제대로 안 돼 140원 인상에 그쳤다면 그 근거를 내놓아야 할 것”이라며 “설사 회사측 주장이 맞다고 해도 타 택배사들은 인상분 전액을 사회적합의 이행에 모두 사용했는데, CJ대한통운이 가져간 것은 너무 과도하다”고 주장했다.
업계에 따르면 전국 CJ대한통운 택배기사들이 받는 수수료율은 급지, 택배대리점-택배기사 계약 내용에 따라 차이가 있다.
CJ대한통운은 배송 난이도에 따른 급지와 택배의 종류 등에 따라 택배대리점에 50~55% 수준의 수수료를 지급한다. 택배대리점은 CJ대한통운으로 받은 수수료를 택배기사와 어떻게 나눌지를 놓고 별도의 계약을 맺는다. CJ대한통운으로부터 받은 수수료 중 평균 10~12%를 대리점이 가져가며, 유류비 분담을 누가 하는 지, 차량이 제공되는 지 등에 따라 계약 내용이 달라질 수 있다.
◆ 1월부터 택배기사 분류작업 제외…“이행했다” vs “아니다”
‘사회적 합의 이행’ 여부에 대한 입장차도 크다.
택배노조는 연초 택배기사 1만60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 64%가 개인별 분류작업이 안 되고 있다고 답했다고 밝혔다. 심지어 분류작업 인력비용을 택배기사들이 분담하고 있다는 답변도 나왔다고 밝혔다.
하지만 CJ대한통운은 새해부터 5500명의 분류지원인력을 투입, 사회적 합의를 이행하고 있다고 반박한다. 분류인력 비용도 100% 회사가 지급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CJ대한통운은 이와 관련, 지난 5일 국토교통부에 “사회적 합의 이행과 관련해 택배업계 전반에 대한 현장실사를 실시하고 결과를 투명하게 공표해달라”고 제안한 상태다. 국토부는 이번주 중 불시 점검에 나설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6월 택배사업자·영업점·과로사대책위·정부 등이 서명한 ‘택배기사 과로 방지대책 사회적 합의(2차)는 택배기사 보호를 위해 필요한 택배 원가 상승요인이 개당 170원임을 확인하고, 택배기사에게 부담이 전가되지 않도록 한다는 내용을 담았다.
또 택배기사 작업시간이 주 60시간을 초과하지 않도록 하고, 올해부터 택배기사가 분류작업을 하지 않도록 하는 내용을 담았다. 다만 불가피할 경우 예외적으로 택배기사를 분류인력에 참여시키고 대가를 지급할 수 있도록 했다.
한편, 정부는 이날부터 연례적인 택배 특별관리를 시작한다. 국토교통부는 이번 특별관리기간에 추가 인력 1만명을 투입해 설 배송 대란이 발생하지 않도록 하겠다는 방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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