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S 후일담 4번째 얘기로는 이번 전시회에서 크게 주목받은 로봇과 로보틱스에 대한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메인 전시장인 미국 라스베이거스 컨벤션센터(LVCC)에서 약 10분 거리에 위치한 베네치안 엑스포에는 ‘유레카 파크’라는 전시 공간이 있습니다. CES에 참가한 세계 각국의 스타트업들이 자신들의 기술력과 아이디어를 뽐내는 장소죠.
이곳에서 영국 로봇 전문회사 엔지니어드 아츠가 개발한 휴머노이드 로봇 ‘아메카’를 만날 수 있었습니다. 이 로봇은 아마 CES 2022에서 ‘셔터 세례’를 가장 많이 받은 ‘스타’ 중 하나가 아닐까 합니다. 늘 수십여 명에 둘러싸여 대화를 요청받거나, 카메라 촬영에 응하고 있었습니다. 아메카는 짧은 대화에 응하면서 그에 알맞은 표정을 지었습니다. 찡그리거나, 웃거나, “잘 들리지 않는다”며 손을 귀 쪽에 가져다 대기도 했죠. 사람이 옆에서 조종하고 있는 게 아닌지 의심이 들 정도였습니다.
아메카는 인공지능(AI)과 머신러닝(기계학습)을 이용해 대화를 학습시키고, 챗봇(대화 서비스 로봇) 프로그램을 활용해 사람과 상호작용 하도록 설계됐습니다. 머리 내부에는 17개의 모터가 장착돼 있어 다양한 표정을 만들어냅니다. 손과 얼굴 각도 등도 조절되고요. 대당 3억 원이라고 하는데, CES 기간 동안에만 실제로 4대나 주문을 받았다고 합니다.
같은 전시장에서 한국의 휴머노이드 로봇 ‘토카비’도 관람객들의 흥미를 끌었습니다.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 다이로스 연구실의 박재흥 교수와 석박사 과정 학생들이 만든 로봇입니다. 토카비는 인간의 움직임을 따라 하는 원격 제어 로봇인데요. 조종자가 가상현실(VR) 기기 등을 착용한 뒤 물체를 집는 등의 행동을 하면 로봇이 이를 그대로 따라하는 겁니다. 상용화 시점이 확정되지는 않았지만 가까운 미래에 완성된 토카비를 만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습니다.
CES에서 관심을 끈 로봇은 더 있습니다. 현대자동차가 인수한 미국 로보틱스 전문기업 보스턴다이내믹스의 4족 보행 로봇 ‘스팟’이 그 중 하나죠. 이 로봇은 글로벌 K-팝 그룹 BTS의 음악에 맞춰 칼군무를 선보였습니다. 스팟 3대의 춤판이 펼쳐질 때마다 현대차 전시관은 관람객들로 북새통을 이뤘죠.
근처의 두산그룹 전시관에는 사과를 따고 드럼을 치는 협동로봇이 관람객을 맞이했습니다. 2층에는 사진을 찍어주는 협동로봇이 사람들의 시선을 끌었죠. LVCC 노스 홀에는 미국 로보틱스 회사 ‘마사지 로보틱스’가 회사 이름 그대로 만든 자동 마사지 로봇을 전시했습니다. 사람이 눕기만 하면 인공지능(AI)이 알아서 사람의 체형을 분석하고, 맞춤형 안마 서비스를 제공해주는 기계였죠.
CES에 전시된 수많은 로봇들을 보면서 기업들이 투자하고 현실화시키고 있는 로봇의 범위는 일반 소비자들의 상상을 이미 뛰어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CES 주최 측은 올해 개막을 앞두고 로보틱스를 주요 키워드로 소개하며 똑똑하고 자동화된 기계들이 모빌리티부터 배송, 제조업에 이르기까지 모든 걸 바꾸고 있다고 했습니다. 실제로 기업들은 자동으로 일을 처리하는 제품이나 서비스 콘셉트에 모두 ‘로봇’이라는 개념을 붙이고 있었죠.
다만 몇 가지 의문도 생겼습니다. 그 전에 소비자들이 알고 있었던 로봇들, 가령 로봇청소기와 같은 가전제품과 이번 CES에서 주목 받은 로보틱스 기술 사이에는 무슨 차이가 있다는 걸까요.
우선 로봇과 로보틱스의 개념이 무엇인지 짚어봤습니다. 로봇(Robot)의 어원은 체코어로 노동, 정확히는 강제노동을 의미하는 ‘로보타(robota)’에서 나왔다고 합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로봇은 인간이 하는 일, 특히 고되거나 하기 싫은 일을 대신해주는 기계를 포괄적으로 부른다고 볼 수 있습니다. 공장과 같은 산업 현장에서 로봇을 우선 도입한 것도 그런 이해 때문이었겠죠. 로봇은 사람과 달리 지치지 않으면서도 반복적이고 정교한 작업을 할 수 있다는 의미로 많이 쓰였습니다.
이후 로봇은 한 발을 더 딛게 됩니다. 로봇청소기를 예로 들어보죠. 초창기 로봇청소기는 멍청했습니다. 흡입력과 같은 하드웨어적 성능은 둘째 치고, 일단 길을 헤매기 일쑤였습니다. 식탁이나 의자 다리 사이에 갇혀 빠져나오지 못하는 일이 다반사였죠. 하지만 전후방을 스캔할 수 있는 카메라가 달리고, 소프트웨어(SW)를 통해 청소를 마친 공간과 해야야 할 공간을 구분하게 되면서 성능이 진일보합니다. 여기에 센서까지 추가되면서 로봇청소기는 멍청하다는 평가를 벗어던지게 됩니다.
이번 CES에서 기업들이 소개한 로봇과 로보틱스는 거기서 더 한 걸음 나가려는 시도로 판단됩니다. 로봇을 활용해 인간과의 상호작용, 개인 맞춤형 서비스, 메타버스를 활용한 시공간의 초월까지 도전하려는 것이죠. 삼정KPMG 경제연구원은 로봇산업과 관련해 “산업 및 인간의 라이프스타일 전반을 유기적으로 연결하는 경험을 제공하는 방향으로 발전하고 있다”고 평가했습니다. 로봇과 로보틱스가 인간의 삶을 조금 편하게 해주는 것을 뛰어넘어, 인간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던 영역까지 바꿀 수 있다는 의미로 풀이됩니다.
아메카 같은 챗봇 로봇이 보편화되면 커뮤니케이션의 개념을 바꿔놓을 겁니다. (사실 한국은 지난해 AI 챗봇 ‘이루다’ 사태를 통해 AI 로봇과의 대화가 보편화될 경우 발생할 수 있는 문제를 앞서 경험했다고 볼 수 있죠.) 사람의 손길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여겨졌던 음식 조리와 배달, 마사지 같은 서비스에서 인간의 영역은 점점 줄어들게 될 겁니다. 로보틱스 기술은 개인의 취향에 맞춘 서비스를 제공할 만큼 섬세해질 테니까요. 현대차가 제시한 ‘메타모빌리티’의 경우 로보틱스 기술을 활용해 소비자가 현실세계와 가상세계에서 동일한 이동 경험을 할 수 있도록 한다는 게 핵심입니다. 현장에 직접 가지 않고도 많은 걸 할 수 있게 하겠다는 개념으로 풀이됩니다.
로보틱스 산업은 앞으로 어떻게 흘러갈까요. 현동진 현대차 로보틱스랩 상무는 “로보틱스는 반이 하드웨어이고, 반이 소프트웨어”라고 소개했습니다. 현 상무의 말대로 전자 회사, 자동차 회사들은 로보틱스 산업 주도권을 잡기 위해 소프트웨어 역량 강화에 보다 적극적으로 나서게 될 겁니다. 로보틱스 사업의 경쟁력은 이제 AI와 머신러닝, 센서, 빅데이터 분석 등과 같은 정보통신기술(ICT) 분야에서 판가름 날 테니까요. 기업들은 자체적으로 ICT 역량을 키우기 위해 대규모 투자를 하거나, IT 업체들과 보다 적극적으로 협업하게 될 겁니다. 제조업과 IT 기업들과의 경쟁은 더욱 격렬해지겠죠.
물론 상용화와 대량 생산의 벽을 넘어야 합니다. 최신 로보틱스 기술이 적용된 제품을 소비자들이 받아들일 수 있는 가격으로 낮추는 것은 물론, 내구성을 검증하고 고장 시 수리할 수 있는 체계를 구축하는 것도 커다란 숙제입니다. AI와 머신러닝이 적용된 제품들의 경우 어마어마한 전기 소비를 줄여야하는 과제도 있습니다. 예년의 CES에서 소개됐던 로보틱스 활용 신기술과 신제품들 중 상품화되지 못한 사례를 찾는 건 어렵지 않은 일입니다.
미국 IT 전문매체 테크크런치는 CES 2022를 정리하며 “로봇은 그 동안 공상과학을 시각적으로 보여주는 수단에 불과했다. 이제 기업들은 현실과 공상과학 사이의 갭을 메우기 시작했다”고 평가했습니다. 갈 길은 여전히 멉니다. 그래도 기업들이 로보틱스를 손에 쥠으로써 상상을 현실화로 만들어내는 가능성이 커졌음은 분명한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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