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 미국 주식에 투자하고 있는 ‘직장인 개미’ 김모 씨(40)는 요즘 아침에 눈 뜨기가 무섭다. 뉴욕 증시가 연일 출렁이면서 국내 증시가 동반 추락하는 일이 반복되고 있어서다. 김 씨는 “지난해 이맘때는 설 상여금으로 어느 종목에 투자할까 행복한 고민을 했는데 지금은 언제 발을 빼야 손실을 줄일 수 있을지 걱정뿐”이라고 했다.
새해 들어 국내외 증시가 연일 추락하면서 개미투자자들의 시름이 깊어지고 있다. 미국발 긴축 공포가 세계 금융시장을 짓누르는 가운데 국내 증시는 그동안 유동성을 기반으로 많이 올랐던 기술기업들이 대형주에 포진해 있어 하락 폭이 두드러진다는 평가가 나온다.
● 겹겹 악재에 갇힌 국내 증시
24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코스피는 올 들어 단 6거래일을 제외하고 줄곧 하락하며 6% 넘게 주저앉았다. 이날도 개인과 외국인이 동반 매도에 나서 코스피를 1.5% 가까이 끌어내렸다. ‘공포지수’로 불리는 코스피200 변동성지수도 2개월 만에 최고치로 올랐다.
증시의 발목을 잡은 것은 예상보다 빠르고 강력한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긴축 행보 때문이다. 25, 26일 열리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정례회의에서 긴축 행보가 본격화할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면서 뉴욕 증시는 연일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올 들어 21일(현지 시간)까지 기술주 중심의 나스닥지수는 11.99% 급락했다. 같은 기간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지수(―7.73%), 다우존스산업평균지수(―5.70%) 등 주요 지수도 일제히 하락했다. 김형렬 교보증권 리서치센터장은 “최근 미국 기술주가 폭락하면서 위험자산에 대한 회피 심리가 뚜렷해졌다. 이 같은 공포가 글로벌 증시를 짓누르고 있다”고 했다.
이 여파로 국내 증시는 일본, 중국 등 다른 아시아 증시에 비해 눈에 띄는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시가총액 상위 종목에 금리 인상에 취약한 기술주·성장주들이 상대적으로 많기 때문이다. 실제로 올 들어 크래프톤(―38.9%) 카카오뱅크(―28.8%) 카카오(―20.0%), 카카오페이(―16.0%) 셀트리온(―15.9%) 등 테크·게임·바이오 종목들이 큰 폭으로 떨어졌다.
● “코스피 2,500 선까지 밀릴 수도”
글로벌 공급망 쇼크 여파로 국제유가 등 원자재 가격 상승이 계속되는 가운데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우려까지 겹치면서 수출 의존도가 높은 한국 증시에 악영향을 주고 있다. 여기에다 기업공개(IPO) 최대어인 LG에너지솔루션이 27일 상장을 앞둔 상황도 부담이다. LG에너지솔루션을 편입하려는 기관이나 외국인이 다른 대형주를 팔면서 증시 하락세를 부추길 수 있다는 우려가 많다.
윤석모 삼성증권 리서치센터장은 “지난해 11월 이후 개인투자자들이 매수세가 약화됐다”며 “고객 예탁금이나 대출 현황을 보면 개인 자금이 추가로 유입되기는 어려워 보인다”고 분석했다. 김영익 서강대 경제대학원 교수는 “경기 선행지표들도 모두 꺾이고 있다”며 “경기 둔화가 현실화할 경우 코스피가 2,500 선까지 밀릴 수 있다”고 내다봤다.
다만 시장이 긴축 우려를 상당 부분 반영한 만큼 이번 주 FOMC의 결과가 확인되면 변동성이 잦아들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오태동 NH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은 “코스피가 2,800 선이 붕괴되며 단기적으로 하락 폭이 컸다”며 “설 연휴가 지난 다음 주 후반 정도 하락세가 어느 정도 안정화될 수 있다”고 내다봤다. 김학균 신영증권 리서치센터장은 “물가 상승 압력이 시장의 기대치를 밑돌아야 주가 하락세가 멈출 것”이라며 “중앙은행의 정책 효과에 달려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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