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황 비껴간 MZ 사장들]〈하〉新상권 이끈 새 소비트렌드
2030 58% “SNS 검색하고 방문”… 10명중 8명은 “가게 일정에 맞춰”
‘한끼 제대로’ 3, 4시간 기다리고, 오픈런 가게 가려 휴가내기도
흔한 프랜차이즈 매장보다… ‘나만 알것 같은’ 콘텐츠 선호
서울 서대문구 대현동의 한 수제과자점. 언뜻 보기엔 여느 가게와 다르다. 인적 드문 골목길에 있는 데다 제대로 된 간판도 없다. 목·금·토요일 사흘만 운영한다. 이마저 토요일엔 딱 3시간만 연다. 그래도 손님이 끊이지 않는다. ‘선물용으로 최고’라는 입소문을 타며 명절용 세트는 일찌감치 품절된다. 지난해 이곳을 차린 최지현 씨(35)는 “손님 절반 이상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검색한 뒤 일부러 찾아오는 젊은층”이라고 전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시기에 오히려 더 잘나간 변두리 MZ세대 사장 뒤에는 온라인에서 유명해진 가게라면 시간과 장소를 불문하고 찾아가는 MZ세대 위주의 신(新)노마드족이 있었다. MZ 사장들은 새로운 경험을 찾아 끊임없이 돌아다니는 이들의 욕구를 읽고 대응해 오프라인 매장의 위기에서도 신흥 소형 상권을 일구고 있었다.
○ MZ세대 “가게 시간에 내 일정을 맞춘다”
24일 동아일보가 SM C&C 설문조사 플랫폼 ‘틸리언 프로’와 20∼60대 남녀 소비자 1060명을 대상으로 가고 싶은 곳을 고르는 방법을 설문 조사한 결과 ‘온라인으로 검색한 뒤 새로운 곳에 간다’는 응답이 전체의 49%로 가장 높았다. ‘아는 곳에 간다’는 31%, ‘길 가다가 보이는 곳에 간다’는 20%에 불과했다. 권강수 한국창업부동산정보원 이사는 “요즘 신흥 상권은 손님들이 SNS를 통해 먼저 알아보고 와서 상가 권리금에 따른 입지 싸움에서 자유로워졌다”며 “장소라는 물리적 요건보다는 온라인 평판이 더 중요해지고 있다”고 했다.
가고 싶은 곳이 접근성이나 편의성이 떨어져도 개의치 않는다는 특성은 MZ 소비자에게 뚜렷하다. 직장인 한선우 씨(30)는 친구들과 소위 뜨는 장소에서 ‘월례 미식회’를 가진다. 서울 용산구 이태원 바비큐 식당 앞에서 4시간, 용산의 고깃집 앞에서 3시간 기다리는 일도 불사한다. 그는 “기다려도 절대로 아무 곳에서나 한 끼를 먹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이번 설문에서도 검색하고 가게를 방문한다는 MZ세대 응답자가 58%로 전체 평균보다 9%포인트 높았다. 김용진 서강대 경영학부 교수는 “깐깐한 취향을 가진 MZ세대는 온라인에서 평점과 후기를 확인하고 소비하는 게 기본 습관이 된 세대”라고 말했다. 실제로 MZ세대 응답자 10명 중 8명은 가고 싶은 가게가 일주일에 사흘만 문 열어도 ‘가겠다’고 답했다. 또 10명 중 9명은 ‘엘리베이터가 없거나 교통이 불편하거나 멀어도 가겠다’고 답했다.
‘베이글 마니아’ 임지은 씨(29)는 최근 서울 종로구 북촌의 ‘신상 베이글 맛집’에 가려고 연차까지 냈다. 런던에 온 듯한 분위기로 ‘오픈런’(개점 전 줄 서 있다가 문 열자마자 뛰어 들어오는 것) 행렬로 뜬 SNS 명소이지만 오후 6시면 문을 닫는다. 주말은 엄두를 못 내고 평일 하루를 ‘투자’하기로 했다. 직장인 김모 씨(28)도 전남 담양에 있는 ‘예약제 책방’에 이틀 휴가를 내고 다녀왔다. 김 씨는 “서울역에서 광주역, 담양터미널을 거쳐 책방까지 가는 길이 멀었지만 잊지 못할 충만함을 느끼고 왔다”고 했다.
○ 멀어도 불편해도 특색 있으면 OK
이들은 접근성이나 편의성에 개의치 않는 대신 흔한 프랜차이즈 매장보다는 차별화된 경험을 주는 가게를 원했다. 가게 유형으로 ‘골목 상권의 특색 있는 개인 매장’(35%)을 가장 많이 꼽았다. 구체적으로는 수제디저트 전문점(27%), 소품숍(21%), 오마카세(차림 메뉴) 식당(13%) 에스프레소바(11%), 내추럴와인바(10%), 독립서점(10%) 등을 들었다. 이승윤 건국대 경영학과 교수는 “경제적으로 풍족한 분위기에서 뚜렷한 개성을 가진 MZ세대는 라이프스타일 전반에서 자신에게 부합하는 브랜드를 소비하고 싶어한다”고 분석했다.
MZ 소비자들은 방문할 가게를 정할 때는 ‘독특한 인테리어’(23%), ‘인스타그래머블’(15.5%) 등을 중시했다. 힙플레이스로 떠오른 한강로동 브런치 가게는 다세대주택가 한복판에 샌프란시스코 스타일의 식당을 재현했다. 알록달록한 영어 포스터와 외국산 식재료로 꾸민 식당에선 ‘미국 셰어하우스(공유주택) 이모님이 해주신 맛의 파스타’ 같은 이야기를 담은 메뉴를 판다.
소비자들은 ‘나만 알 것 같다’(17%)는 항목도 중시했다. 수제아이스크림 전문점을 운영하는 사장 박정수 씨(33)는 재작년 일부러 가게를 서울 익선동에서 염리동으로 옮겼다. 그는 “‘아무나 가는’ 익선동보다는 우리만의 콘텐츠가 더 돋보일 수 있는 곳을 골랐다”며 “이사 후 오히려 단골 고객은 늘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MZ 소비자들의 욕구에 부응하는 콘텐츠를 갖춘 소형 매장이 온라인과의 경쟁으로 위기에 몰린 오프라인 가게들의 미래가 될 수 있을 것으로 진단했다.
이강욱 보스톤컨설팅 그룹 유통소비재 부분 파트너는 “임차료가 높은 대형상권은 대형 프랜차이즈 업체 위주로 단조롭게 구성될 수밖에 없지만 소형상권은 소비자들의 세분화된 취향을 겨냥해 새로운 시도를 해볼 수 있다”며 “비(非)대면 시대일수록 혁신적인 소형 골목 상권이 부상할 것”이라고 말했다.
댓글 0